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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학교 서울 May 31. 2018

좋은 취향, 나쁜 취향

On Good and Bad Taste

디자인이나 실내장식 분야에서 누가 ‘나쁜 취향’을 지녔다고 비난하거나, ‘좋은 취향’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뭐든 괜찮다’라고 말해야 하며,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나면 왠지 너무 안일하고 야망도 없어 보인다. 사실 이 중요한 문제에도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처음부터 어떠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취향의 문제를 지배하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지금의 취향을 가지게 되었을까? 왜 특정 스타일에 끌리거나 반감을 느낄까? 가장 그럴듯한 해석 방법은 ‘보상의 이론’이다. 우리는 모두 내면이 약간은 불균형하므로, 내면의 결핍을 보상해줄 것 같은 스타일에 끌리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규율 없이 혼란스럽고 내면이 어수선한 사람은 차분하고 순수하며 안정적인 실내장식에 끌리기 쉽다.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잔인하고 정밀함을 요구하며 기술을 숭배하는 현대의 초고속 생활에 지나치게 노출되었거나 억눌린 사람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며 편안하게 허름한 스타일에 매혹 당한다.

이렇게 취향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쁜’ 취향은 어떨까?


‘나쁜 취향’의 예로 드는 것들은 어느 면으로 봐도 과잉이다. 다시 말해 나쁜 취향이란 어떤 면이 심각하게 부족해서 생긴 거대한 과잉보상이다. 역시 심리적이나 신체적인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지나치게 번지르르한 나쁜 취향을 길러왔다는 평판을 듣는다. 리야드나 모스크바의 유물을 보면 베르사유 양식을 지나치게 과장해 놓은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이 역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러시아가 공산주의 아래서 극도로 빈곤한 한 세기를 보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척박한 사막에서 영원토록 근근이 살아가야 했던 사실은 보상을 향한 절박한 욕구를 키워냈을 것이고, 어느 순간 그 정도가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이제 감상적으로 ‘나쁜’ 취향에 대해 생각해보자. 앞뜰에 땅속 요정 인형 장식을 늘어놓고 그 속에 속이 느글거릴 정도로 화려하고 조악한 장신구를 줄줄이 매달아놓는 그런 식의 취향 말이다. 

주로 사회적으로 덜 부유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인데, 그들의 직장생활은 굴욕적이고 허리가 휘도록 힘들며 따뜻함이나 다정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불행한 이들이 가정에서나마 달콤한 것들을 섭취해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도 당연하다.


나쁜 취향의 예를 볼 때마다 우리는 한때 공급이 매우 적었던 달콤함이나 자유, 재미, 번영과 같은 좋은 것들을 다소 지나치게 탐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나쁜 취향을 보면 반감이 들기 쉽지만, 일단 그 기원을 이해하면 반감을 품는 게 오히려 가혹하게 느껴진다.


어떤 사람이 굶고 있다면 상황이 조금만 나아도 분명히 먹지 않았을 음식을 열심히 먹어대고 예절도 잠시 뒷전으로 미뤄놓을 수 있다고 우리는 이해한다. 전혀 예쁜 모습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가 그토록 허겁지겁 먹어대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관해 불운한 취향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 전략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쁜 취향에서 ‘나쁜’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가 실내장식을 통해 보상하고자 하는 과거의 트라우마다. 그들을 조롱하거나 미술사에 대해 설교를 늘어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보가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심각하게 망가지고 균형을 잃어버린 이 세계의 트라우마다.

그러므로 나쁜 취향의 해결책은 정치적이다. 좋은 취향은 사람들이 감사함을 느낄 때, 충분히 돌아갈 시간이 있을 때, 일상적으로 노동자가 굴욕감을 느끼거나 비하 당하지 않는 경제가 이루어질 때 찾아온다.


좋은 취향을 널리 전파하려면 무엇보다 취향의 실수와 잘못을 일으키는 원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절박한 삶을 줄여야 한다.




번역 이주혜

편집 손꼽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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