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학교 서울 May 31. 2018

서양철학이 주는 6가지 아이디어

Six ideas from Western Philosophy 

철학은 우리를 더 지혜롭게 하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학문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때론 우리를 위로하기도 하는 서양 철학의 6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1.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걸! 

세네카는 음울하고 유머러스한 이 문장을 친구들과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사용하곤 했습니다. 이 문장은 스토아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었고, 스토아 철학은 약 200년간 서양 철학 사상을 지배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우리가 세워놓은 계획이 실패했을 때뿐만 아니라,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기대했는데 결국 실패해버렸을 때 우리는 울고 화를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네카는 철학의 과제는 삶이 폭력적으로 우리를 실망시키기 전에 먼저 온화한 방식으로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덜 기대할 때, 우리는 덜 고통 받습니다. 위로하는 비관주의의 도움을 통해, 우리는 분노와 눈물을 덜 불안정한 것, 즉 슬픔으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세네카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희망을 나누어서 가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2. 원죄(Peccatum Originale)

4세기 후반, 거대한 로마제국이 무너져갈 때즘, 그 시대를 이끌었던 철학자인 생 어거스틴은 세상의 비극적인 무질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핵심적인 생각은 원죄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인 이브가 지식의 나무에서 열매를 먹어 신에 대해 죄를 저질렀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훼손된 존재가 되었다고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이브의 죄는 그녀의 후손들에게 전해 내려갔고 현재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노력들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가 타락하고 실패한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상한 생각은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왜 어수선한지에 대한 은유로서, 이는 유신론자에게든 무신론자에게든 묘하게 매력 있는 시적 진실입니다. 우리는 태초부터 불행한 운명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생각은 어떤 순간에 우리를 구해낼 수도 있으니 마음에 새겨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3. 왕도 똥을 누고, 철학자들도 똥을 누고, 숙녀들도 그렇다.

16세기 프랑스 철학가인 미셸 드 몽테뉴는 그의 글에 이 직설적인 문장을 썼습니다. 몽테뉴는 심술궃게 굴려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사람들이 멀게만 느끼만 공인들을 더 친근하게 느끼고 그들을 대할 때 겁을 먹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몽테뉴는 아마 이렇게 덧붙이고 싶었을 겁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고, 거절을 두려워할 것이고, 때론 연인과의 데이트를 망치기도 한다는 것을요. 우리 주위에도 큰 기업의 CEO, 사업가, 대학시절 잘 나갔던 친구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과장하여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신감이 낮아지고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몽테뉴는 낮은 자존감과 부끄러움 같은 감정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기를 바랐습니다. 중요한 스피치나, 고대하던 데이트를 앞둔 때 같은 패닉 상황에서 우리는 몽테뉴의 문장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열병이 난 것 같고 자신감이 떨어진 우리를 위해서요. 겉으로 보기에 침착해 보이는 사람들도 취약한 순간들이 있고 생각보다 평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4. 인간의 모든 불행흔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의 주장입니다. 문자 그대로 진실은 아니지만, 다른 훌륭한 철학적 격언들처럼 이 문장 역시 통찰을 주는 뾰족한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내 방'을 벗어나 신나고 재미있는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만 도움을 주는 데에 실패하고, 명성을 얻고자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해 버리기도 합니다. '혼자 있음'은 문자 그대로 침대 위에 혼자 앉아있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하고, 작은 일에 감사하며 내면에 있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 속 아주 조용한 (그러나 매우 중요한) 부분이 드러나게끔 하는 것이며,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반대 방향으로 외칩니다.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고, 세상의 주목을 바당야 한다고, 더 많은 콘텐츠를 찾아봐야 한다고 우리를 못살게 굽니다. 창문 밖, 하늘 높이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시간 따위는 없다고 말하죠. 우리는 파스칼의 응원을 들으며 우리 스스로와 더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5. 영원의 관점에서(Sub specie aeternitatis)

라틴어로 된 이 문장은 1677년 네덜란드 철학자인 스피노자가 쓴 <윤리학>에서 등장합니다. 스피노자에게 철학의 과제는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고통과 실망들을 바라보도록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아주 머나먼 곳에서 지구를 내려다 보는 것처럼요.(스피노자는 갈릴레오에게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은 더 이상 그렇게 충격적이거나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달 표면에서 찬찬히 바라보면 해고나 이혼은 어떻게 느껴질까요? 45억년 지구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사랑을 거절당한 일은 어떻게 느껴질까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금, 여기를 과장하여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성은 독특하고 대안적인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게 합니다. 스피노자가 말한 '영원한 전체성'속에 들어가면 현재를 비난하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대신 맑고 고요한 시선으로 사건들의 흐름을 바라 볼 수 있게 됩니다.


6. Aus so Krummem Hoize, als woraus der Mensch gemacht lst, kann nichts ganz Gerades gezlmmert werden. 

이 위압적이고 긴 독일어 문장을 우리를 살짝 겁먹게 합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서양 철학 정신의 중심에 있습니다. '어떤 인간도 곧고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비뚤어진 나무와 같다.' 18세기 독일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가 쓴 문장으로, 그는 어떤 인간도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조언합니다. 인간이라는 창조물에게는 이성과 고귀한 지성만큼이나 열정과 잘못된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 어두운 현실을 직면하기 때문에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부를 고안할 때도 합리성이 승리할 거라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류와 어리석음이 항상 존재할 것을 가정하고 그것들을 방지하기 위한 체계를 만들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어떤 사람도 자신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우자가 내 생각과 다르다고 열변을 토하지도 않죠. 우리가 비뚤어진 본성을 가졌음을 인정하는 것은 우릴 낙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그럽게 하고, 어두운 유머를 할 수 있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칸트가 덧붙이기를, 구부러진 나무는 재능 있는 목수의 손에서 아름다운 건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번역 조해민

편집 손꼽힌


매거진의 이전글 대화의 기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