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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제 Feb 02. 2024

담백한 맛의 극치, 내 인생 최고의 일본 정식을 먹다

자극적인 맛에 중독된 어느 날 먹은 담백한 일본식 아침 정식

먹었던 것들을 글로 적고 사진을 찍다 보니 내가 그동안 어떤 음식들을 먹었는지 눈에 잘 보였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내 입맛 때문일까 내 글과 사진들은 대부분 자극적인 음식으로 덮여갔다.

맛있지만 자극적인 음식은 꽤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전보다 더 자극적이지 않다면 그 맛을 느끼기가 힘들다는 것.

그래서 더욱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

그걸 알게 된 건 일본식 정식을 먹었을 때였다.


새해가 오고 오랜만에 생선 정식이 먹고 싶었다.

일본의 흔한 아침밥.

밥과 미소시루, 간단한 반찬과 절임요리 그리고 생선요리 하나.

동네 주변에서 일본 정식집을 찾아보았는데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게가 없었다.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몇 개 있었는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고 개인가게들 중에서 평가가 좋은 가게를 찾는 게 힘들었다.

그렇게 포기하려는 순간 잘 가지 않아 찾아보지 않았던 이케부쿠로 남쪽 출구 쪽에 평가가 괜찮은 가게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저장을 하고 며칠 뒤 나는 정식집을 방문해 볼 수 있었다.


정식집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아주 작은 가게.

오니기리와 정식을 같이 판매하는 가게로 카운터 7석 정도가 내부의 전부였다.

가게 문을 열자 굉장히 밝게 맞이해 주시는 나이가 좀 있으신 남성분이 계셨다.

마침 딱 한자리 남아있어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여러 가지 점심 메뉴들을 보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생선정식으로 할지 튀김정식으로 할지 고민이 계속되었다.

고민을 계속하다가는 메뉴를 도저히 정하지 못할 거 같아서 그냥 가장 비싼 정식을 주문해 보았다.


가격은 3000엔.

간단한 아침식사치 고는 꽤나 비싼 가격.

킨키라는 생선의 간장조림이 메인인 정식이었는데 이 킨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아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홍살치라는 생선이었다.

홋카이도에서 잡히는 꽤나 비싼 식재료로 일본 내에서는 유명한 생선인 거 같았다.

그렇게 잠시의 기다림을 가지고 정식을 받을 수 있었다.


킨키조림


버섯볶음과 당근과 오이의 츠케모노, 조개가 들어간 미소시루, 밥과 킨키간장조림이 쟁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

기대를 품고 킨키를 한 조각 발라 먹어보았다.

천천히 생선의 맛을 느끼려고 했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메뉴를 잘못 주문했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정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더 생선을 먹어보았지만 부드러운 식감이 조금 느껴질 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버섯조림을 한입 먹어보았다.

적당한 간과 식감이 좋은 버섯들.

이 버섯조림만 먹어보아도 이 가게가 요리를 얼마나 잘하는 가게인지 알 수 있었다.

근데 어째서 메인요리인 이 킨키조림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걸까.


나는 절임 요리인 츠케모노로 입을 가볍게 한 뒤 다시 킨키조림을 한입 먹어보았다.

그러자 아주 약간의 단맛과 간장의 맛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극적인 음식들에 익숙해져 있었던 건지.

조금씩 먹으면 먹을수록 이 킨키간장조림도 결코 간이 약한 요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밥과 먹기 딱 좋을 정도의 간이었는데 이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꽤나 놀라웠다.

그동안 얼마나 자극적인 요리에 중독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버섯조림과 츠케모노가 입맛을 되돌리는데 도움을 주웠다.

두 반찬을 먹으면서 킨키간장조림을 먹자 맛이 더 잘 느껴지기 시작했다.

킨키는 어떻게 조리했는지 모르겠지만 뼈가 굉장히 잘 발라져 먹기가 편했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단맛과 맛있는 간장의 짭짤함.

그리고 부드러운 몸살과 쫄깃함이 느껴지는 볼살.

이 생선이 어째서 유명하고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는지 알 수 있는 맛이었다.


킨키조림


보통 음식은 먹으면 먹을수록 물리고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배가 점점 차는 것도 있고 음식이 식는 것도 있고 그 맛이 익숙해지기도 하기 때문인데 이 킨키조림은 처음에 먹었을 때보다 식사가 마무리될 때가 수십 배는 더 맛있었다.

담백한 맛에 조금 익숙해지니 킨키조림의 맛이 꽤나 진하게 다가왔다.


미소시루와 츠케모노, 버섯조림 그리고 킨키간장조림.

메뉴가 많지는 않지만 모든 메뉴가 적절히 어우러지는 게 완벽한 식사였다.

마지막 남은 킨키의 꼬리까지 발라먹고 식사를 마무리하자 아주 기분 좋은 여운이 입안에 맴돌기 시작했다.

일본에 와서 먹었던 식사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무조건 드는 식사였다.

그동안 자극적인 음식에 찌들어 있다가 먹은 담백한 정식이라 그런 걸까.

그 맛이 더 담백하게 그리고 잔잔하지만 길게 다가왔다.

내 인생 최고의 아침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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