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할머니가 단 둘이 있는 날
며느리와 시어머님.
단어들만 놓고 보면 둘의 관계가 딱히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는 그 단어들은 조금 다른 분위기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많은 도움을 주셨고 어머니도 그걸 알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살고 있었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뭔가를 요구하지도 선을 넘지도 않는 이상적인 관계였다.
그런데 이 단어에 조금의 부연설명이 붙는다면 어떨까.
며느리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님.
아버지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할머니 집에 있어도 나머지 평일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다른 친척들도 종종 방문하기도 했지만 그날이 절대적으로 많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혼자 있으면 아버지는 불안해하셨고 친척들은 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 결과 평일에 가끔씩 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어머니는 집에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신다.
매일같이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장을 보는 어머니에게 집은 깔끔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였던 거 같다.
그래서 집에는 가족 이외의 사람을 불러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 할머니가 처음 오신 날은 마침 내가 집을 비우는 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할머니와 단둘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함께해야 했다.
아침에 아버지가 출근하시고 할머니와 어머니 둘이 집에 있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그 하루는 정말이지 길었다.
어떤 대화를 하더라도 그 끝에 할머니는 치매의 영향인지 계속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셨다.
저번에 새벽에 집에서 나가 전철역에 가신 것도 집에 가야 한다는 이유였던 걸 생각하면 할머니에게 시골집의 의미가 남다르신 거 같았다.
“어머니, 저희 집에서 며칠 동안만 있어요.”
“아니야, 나 이제 가야 해.”
“어머니, 그러면 오늘만 있어요.”
“아니야. 이제 슬슬 가야지.”
“어머니, 여기서 어떻게 집에 가시게요.”
“알아서 갈 수 있으니까. 걱정 말어.”
어머니와 할머니의 똑같은 레퍼토리의 이야기가 수백 번이고 반복되었다.
똑같은 대화에도 어머니는 할머니와 같이 나가서 산책도 하고 밥도 드시면서 할머니의 관심을 돌렸다.
그러면 좀 괜찮아지셨다가 대화의 틈이 발생하면 다시 집에 가시겠다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출근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신다고 한다.
아버지의 와이프인 것을 까먹기도 하고 재혼을 했다고 생각하시기도 한다.
할머니의 집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를 기억 못 하시는 상황은 아버지가 와야지 겨우 종료된다.
온순하신 성격의 할머니 덕분에 크게 힘든 건 아니었지만 지침이 있었다.
우리 가족과 할머니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