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아버지

할머니는 항상 집에 가고 싶어 하신다

by 이이구

최근 들어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는 일이 많아졌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둘이서 집에 있었을 때 어머니가 많이 힘드셨는지 이번에는 같이 있어달라는 말을 하셨다.

그렇게 나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을 먹고 아버지가 출근하시면 무한 반복의 시간이 찾아온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할머니 그리고 그걸 막는 나와 어머니.

우리의 이야기는 항상 같은 패턴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집에 가야지.”



할머니가 일어서려고 하면 나와 어머니는 이야기한다.



“어디 가세요.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는 거예요.”

“할머니, 저랑 좀 더 있으면 안 될까요?”



그래도 계속 집에 가야 한다고 하는 할머니.

내가 어째서 집에 가야 하냐고 여쭈어보면 집에 밥 먹는 사람이 있으니 밥을 하러 가야 한다.

약속이 있다.

집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 등 다양한 이유를 이야기하신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할머니와 대화를 이어나간다.



“할머니 왜 밥을 하러 집에 가요?”

“집에 밥을 먹을 사람이 있으니까.”

“할머니 큰아빠는 큰아빠 집에 있죠? 큰고모도 큰고모 집에 있죠? 둘째 고모도 둘째 고모집에 있죠? 막내 고모도 막내 고모집에 있죠? 그리고 아빠는 출근했죠? 그러면 집에 아무도 없는데요?”

“그러네… 너 똑똑하다야.”



이 대화를 20번도 넘게 했던 거 같다.

이렇게 대화를 하고 다시 몇 분이 지나면 할머니는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나는 할머니를 말렸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할머니의 기억은 불안정해져 갔다.

계속해서 대화를 하고 생각을 하시다 보니 머릿속에서 기억이 꼬이는 거 같았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할머니는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좀처럼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어 나는 어머니에게 옛날에 찍은 사진들을 가져와달라고 했다.

천장은 넘어 보이는 필름카메라 사진들이 장롱에서 나왔다.

나도 오랜만에 보는 사진들이었다.

십 년 만에 꺼낸 사진을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보기 시작했다.

사진들이 최소 20년에서 30년은 되어 보였다.

할머니가 옛날 사진을 보면 조금이라도 뭔가 기억을 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이걸 보고 있으면 할머니가 집에 가겠다는 소리를 안 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시작했던 사진 보기였다.


사진을 보며 이게 누구고 이게 누구예요 라는 설명과 함께 옛날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도 같이 사진을 보며 이 사진이 언제 찍은 사진인지 어디에서 찍은 사진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그렇게 집중해서 사진을 보니까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점심을 먹고 두 시간이 넘게 사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사진을 다 보니 할머니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말을 또 하셨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찐 고구마를 가져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구마를 다 먹으면 귤을 먹었고 귤을 다 먹으면 과자를 먹었다.

당연하게도 고구마를 다 먹으면 할머니는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셨고 귤을 다 먹으면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셨다.

그래도 어떤 것을 보고 먹는 것은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방법들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출근부터 시작해서 집으로 돌아가시려는 할머니의 행동을 막는 10시간이 넘는 디펜스 게임이 끝날 때쯤이면 아버지가 돌아오신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할머니는 역시 이제 집에 가자라는 말을 하신다.



“이제 집에 돌아가자.”

“엄마, 하루는 우리 집에서 자자.”



이 대화 한 번에 할머니는 알겠다고 하신 후 집에 가자는 말을 잘 꺼내시지 않게 된다.

낮에 수천번을 반복한 할머니의 귀가를 막는 디펜스는 아버지의 한마디면 클리어되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머니와 나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을지 아는 아버지는 헛웃음을 짓는다.



“둘 다 고생했어.”



아버지의 말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담겨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아버지의 말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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