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을 두 번 살았다

아이유의 디스코그래피와 나이 들어가는 일(1)

by 최윤주

2010년대에 대한 기억은 꽤나 정확한 편이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곧잘 연도로 대답할 수 있다. 그 셈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억과 사유의 중심에 눈금처럼 자리 잡은 그녀의 디스코그래피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대학교 2학년 때? 2015년에 <CHAT-SHIRE>가 나왔고 그때 아이유가 스물셋이었으니 두 살 빼면 스물하나였네’, 같은 식의 징그러운 셈법. 매년 새해가 되면 전국의 스물셋들이 <스물셋>을 찾아 듣는다며 반가워했던 아이유조차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 소름 돋아할 것 같다. 전에 했던 ‘최애가 내 인격의 씨실과 날실이 되어주었다’는 말은 거의 이 지경을 의미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풀어보려 한다.


많이들 기억하듯 2015년에 아이유는 타이틀곡 <스물셋>이 포함된 <CHAT-SHIRE> 앨범을 들고 나와 세상과 크게 겨뤘다. 정답을 정해두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노래를 통해 여우와 곰으로, 소녀와 성인 여성으로, 꼭두각시와 아티스트로 이분하며 자신을 재단하던 대중의 시선에 정면으로 반문을 던졌다. (그 시절 아이유의 전투력은 가수 본인도 인정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마침 며칠 전이 이 앨범의 10주년이었는데, 10년 만에 새로 공개된 퍼포먼스 버전 뮤비를 보니 여전히 기세가 남달라 신기했다. 10년이 지나도 화면을 뚫고 느껴지는, 주변 댄서들은 보이지도 않게 하는 그 위력과 존재감은 대체 뭘까?)


2017년에는 <Palette>였다. 가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 빼곡하던 <스물셋>과 달리 음절이 확 줄었다. 뮤직비디오의 색도 어딘가 혼란하던 짙은 보라색에서 공백이 많은 흰색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보라색을 좋아한다 말하는 여유와 함께 ‘스물다섯이 되니 이제 나를 알 것 같고 괜찮은 것 같다’고 전했다. 조금 이를 수도 있는 그 고백을 나는 완벽히 믿었다. 스물셋의 날 선 눈빛과는 완전히 달라진 초연한 눈빛과 그때까지 입은 것을 본 적 없던 정장 재킷이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스물셋의 질문이 너무도 진솔했기 때문에 헤맴 끝에 찾아들고 온 스물다섯의 대답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물셋의 질문을 진솔하다 받아들일 수 있던 것이 그가 던진 질문이 당돌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아이유의 반문을 배신이나 반전으로 받아들였겠으나, 나는 <스물셋> 속 혼란과 질문들이 낯선 적이 없었다. 내가 더 어렸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이유를 귀여운 소녀로 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스스로를 아이유의 팬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꽤 나중의 일인데, 돌이켜보면 이미 10대 때부터 그를 바라보는 일에 꽤나 몰입했던 것 같다.


유약한 사람은 곧잘 인력을 발휘한다. 학교 같은 삭막하고 폐쇄된 공간 안에서도, 용케 동일시하며 마음 터놓을 상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좋았고, <삼촌>이 아닌 <Teacher>를 들었다. 세상 가진 고민이라고는 사랑 문제밖에 없어 보이는 오빠 찾는 소녀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면 자신만 빼놓고 웃고 있는 사람들에게 심술을 부리고 차라리 봄이 오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나'의 이야기는 계속 듣고 싶었다. 자작곡으로 하필 그런 노래를 만들고, 콕 집어 가장 사랑받은 노래의 반대말로 이름 붙이는 비뚤어진 성격에 이입이 됐다.


주식 대박을 꿈꾸는, 집안의 골칫덩어리인 삼촌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디가 귀여운지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불쾌하지조차 않았다. 이야기 속 소녀와 같은 나이인 입장에서, 당장 내 인생부터가 풀리지 않는 숙제인데 친인척을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 없었다. <Teacher> 속 성년을 앞둔 ‘나'처럼 행복에 대해 풀리지 않는 불안과 질문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묻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10대를 지나서일까. <CHAT-SHIRE>가 발매된 2015년은 완전히 내 것이었던 적이 없는 시간 같다. ‘스물셋’이란 말 역시 마찬가지다. 떠올리기만 해도 고유명사와 보통명사의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때 나는 스물하나였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아이돌도 스물셋도 아니었지만 내내 그의 이야기 안에 거주했다. 20대 초반도 사실상 10대의 연장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타인의 서사에 나를 투영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유약하고도 간절했다. 물론 그때부터도, 매번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며 또렷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부러움과 조바심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겨우 두 걸음쯤 앞선 이를 대하듯 지지하고 동조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니 2017년에 그녀를 보며 느꼈던 선명하고 긴밀한 연결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때는 10대 후반부터 이어져 온 혼란과 결핍들이 일단락되던 참이었다. 마주한 해방감에 기뻐하던 차, 때마침 아이유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신기하고 반가웠다. 스물셋의 그녀가 건넨 질문들은 곧 내게도 유효한 질문이었으니,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연동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시기 아이유가 건네는 가사와 말들을 빠짐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가사와 말들이 나를 설명해 준다고도 느꼈다.


한 시절을 너무 선명히 연동되어 산 탓인지, 세상 모든 사람이 아이유를 중심으로 살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놀란다. 의외로 세상엔 그녀의 본명도 모르고, 데뷔일이나 생일도 모르고, 그러니 <스물셋>이 수록된 <CHAT-SHIRE>가 몇 년도 몇 월 며칠에 발매되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걸 요즘도 가끔 잊어버린다. 그러니까 체신머리 없이 이런 글을 연재하는 거겠지.


그렇지만 나의 지난 세월을 떠올릴 때, 내게는 언제나 나보다 몇 발 앞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한 시절 통째로 내 인적사항보다 우선해 각인된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기묘하고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눈금이 흐릿해져 가는 이제야 들지만… 불평불만으로 가득해도, 그라는 눈금을 가진 게 결국 싫지만은 않으니 그거야말로 참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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