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디스코그래피와 나이 들어가는 일(2)
일을 막 시작한 20대 중반, 일터에서 사람들 만나는 일을 좋아하면서 싫어했다. 함께 있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짙은 피로감이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도 없는 일로 맴돌던 고민들이 쉬이 해소되지 못하고 집요하게 신경을 괴롭혀서, 현관에 도착할 때쯤 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너무 오래 있지 않았는지. 너무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농담이 과했는지. 무례한 실수를 했거나 표정이 어색하진 않았는지. 충분히 프로처럼 보였을지. 혹시 바보 같지는 않았을지…. 지나간 장면들을 눈짓 하나 호흡 하나 괴로운 마음으로 되풀이해 재생하고,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불안한 질문들을 거듭하고는 했다. 끝내 확인할 길 없이 여기저기 부유하고 있을 내 평판들을 상상하면서 무방비하게 길을 잃는 기분이 됐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게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 다 이런 건가? 관찰 예능에 노출된 채로 자라서 그런가? 엉뚱한 추측을 하면서도 연기는 계속됐다. 어떤 날엔 완전히 망쳤고 다른 어떤 날엔 그럭저럭 성공하는 것도 같았지만, 이런 것들을 일일이 의식한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한없이 미숙하게만 보였다.
아이유의 곡들이 다른 형태로 들리기 시작한 건 이런 날들 속에서였다. 업이란 것이 생기고 학생이었던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나가기 시작한 뒤부터, 익숙하던 노래가 다른 형태로 읽혔고 전에는 지나쳤던 선율과 가사가 반갑게 다가왔다. 유난히 날 선 곡들만이 줄 수 있는 위로를 알게 됐다.
무엇보다 새롭게 들린 곡은 <스물셋>이었다. 정작 <스물셋>이 발매된 스물하나엔 같은 앨범에 수록된 <무릎>을 더 많이 들었다. 그때 인생은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아슬아슬한 수수께끼라기보다 이미 시작부터 틀려먹어 절대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난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버겁게 길었다. <무릎>의 가사를 따라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다고 되뇌며 가까스로 지나왔고, 막상 스물셋이 되어서는 <Palette>를 듣느라 바빴다.
스물여섯이 돼서야 <스물셋>이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 성장기의 파열음처럼 느껴지던 노래가 깊이 피로에 전 사회인의 목소리로 들려온 것이다. 진심을 파악할 수 없는 호의와 은근한 무시, 가벼운 추근댐이 뒤섞인 날들 속에서 나는 열여섯부터 스물셋까지의 아이유가 견뎠을 고단한 하루하루를 상상했다. 대체 그걸 어떻게 다 견뎌냈을까.
미안하고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그 시간을 무사히 통과한 그가 남긴 미래로부터의 노래들이 있었다. <삐삐>, <잼잼>, <안경> 같은 노래들이 시차를 두고 도착해 도움을 건넸다. 팬과 아이유, 혹은 팬과 대중 사이의 지킬 선을 말하며 ‘옐로카드’를 날리던 <삐삐>는, 도무지 선이란 것을 알 수 없어 혼란한 와중에 안전지대가 되어 주었다. 경솔하게 내비친 진심이 약점처럼 생각되던 때에는 <잼잼>과 <안경>이 도움이 됐다. 진심 따위 별것 아니며 서로의 거짓말에 적당히 속아주자고 말하는 <잼잼>과, 상대가 숨기는 바를 애써 추궁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안경>의 무심함이 그 어떤 다정보다 안심이 될 때가 있었다.
<어푸>도 좋았다. 스물아홉에 낸 그 노래에서 아이유는 무심하고 가벼운 목소리로 부른다. 이제는 파도가 겁나기보다는 재밌으며, 여전히 지는 건 참을 수가 없고, 부서질 타이밍은 스스로 정하겠다고 말이다. ‘당돌하고’ ‘영악하다’는 말을 들으며 스스로도 혼란해하던 이가, 여유를 넘어 관록마저 느껴지는 선율로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바다의 풍경을 들려주었다. 사회라는 파도에 홀딱 젖어 의심하고 저항할 힘조차 없는 날엔, 차라리 그 말에 속아 대담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30대가 되어선 아이유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인력을 발휘할 정도까지 연약하지 않고, 우리가 그렇게 닮은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일치하기에 의지 가능한 면도 있다. 이제야 사회 초년생을 벗어난 나와 달리, 나이는 거의 또래이면서도 일한 지는 20년이 되어가는 이 특수한 사람에게서 친구도 어른도 줄 수 없던 조언을 얻는다. 최근 몇 년간 가장 의지가 됐던 건 2021년 <엘르>에 실린 인터뷰에서의 한 마디다.
그럼에도 함께 자라온 특정 세대에게 아이유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아이유보다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그러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게 있다면?
남들 마음에 들기 위해 너무 애쓰는 일이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어느 기점으로 확 시니컬해지거나 터프해지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내가 그토록 얻기 위해 애썼던 남들의 호의와 관심이라는 게 사실 내 인생에서 크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죠. 창피해지는 걸 너무 겁내지 말라는 말도 해줄래요. 저는 그래서 꽤 많은 재미를 놓쳤던 것 같거든요.
4년 전 그의 말대로 요즘 나는 '확 터프해지고' 있다. 아이유의 말과 노래들이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나의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나대로, 실수를 하지 않았나 전전긍긍하던 마음을 조금씩 내려 놓는 중이다. 연출된 나로 얻어내는 다정한 오해보다 솔직한 나로 얻는 갈등이 더 편하고 안전하단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일이 즐겁다.
<스물셋>의 가사에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넨 여자가 모퉁이를 돌고도 여전히 웃고 있을지 늘 불안하다던 아이유는 더는 그 여부가 궁금하지 않다고 했다(2023년, 전시 <순간,>). 아직은 불안해질 때도 있지만 언젠가 나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 함께 혼란해하던 이가 훌쩍 가버린 것이 야속하기보다 든든해지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