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집 팬은 이렇게 덕질한다

덕질과 팬덤 규모의 상관관계

by 최윤주

덕질의 형태는 팬덤 규모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저러 불만이 있어도 결국 돌고 돌아 아이유로 돌아오는 나지만, 그 돌고 도는 과정에서 숱한 차애(2+@번째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스쳐갔고 사실 지금도 마음속엔 여러 ‘애들이 자리를 나눠 가진 상태다. 작은 게스트하우스보다는 방이 많다, 내 마음에.


아무튼간에 하려는 말은 고해성사가 아니고, 그렇게 여러 차애들과 최애를 오가며 깨달은 것이 팬덤의 규모가 덕질의 형태와 질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팬덤마다 콘텐츠의 접근성이 현저히 다른 것을 보며 실감했다. 특히 팬들이 직접 제공하는 콘텐츠가 그랬다. 팬덤의 규모가 크면 양이 많아지고 인재가 모이니 퀄리티도 상당해지는 반면, 작은 규모의 팬덤은 귀여운 수준으로 만족해야 할 때가 많고, 더 작아지면… 그냥 놀거리가 없었다.


절친한 친구는 아이돌 ‘세븐틴’의 팬인데, 그 친구의 덕질을 보며 이것이 바로 대감집 덕질이구나 감탄했던 적이 있다. 세븐틴을 설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내게는 공연 때마다 5만 명 규모의 스타디움을 매진시키고, 티켓팅 대기 순서가 200만 번을 기록했던 무시무시한 그룹이란 인상이 있다. (200만 번이라니, 쓰면서도 너무 허무맹랑한 숫자라 내가 꿈을 꾼 건가 싶어 친구한테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친구의 티켓팅을 돕기 위해 시도했다 처참히 실패한 흔적. 이제는 동시 접속이 불가해 무운만 빌어주고 있다. (이선좌는 '이미 선택된 좌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거대한 팬덤이라, 팬들이 직접 제작하는 굿즈 인형도 세븐틴 팬들이 하면 남다르다. 13명이나 되는 멤버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해석해 인형화하는 것은 물론,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한 멤버를 해석하는 파벌(?)도 다양하다. 제주도 출신의 부승관 씨를 예로 들면, 그의 출신지를 살린 한라봉 컨셉의 ‘뿌라봉’, 곰처럼 순하고 귀여운 모습을 담은 ‘부베어’, 동그란 눈 속 사랑스러움을 재현한 고양이 인형 ‘뿌띠캣' 모두가 그를 상징한다. 틱톡에 멤버별 인형 종류를 총정리한 영상도 있는 모양이다.


이제 잘 쓰이는 표현은 아니지만 소위 ‘팬픽이라 불리던 2차 창작물들 역시 활발하게 오고 간다. 언젠가 트위터에서 너무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표지의 신예 문예지를 발견해 감탄했는데, 알고 보니 세븐틴 팬들의 정기 회지인 걸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세븐틴의 팬덤 이름은 ‘캐럿이고, 팬미팅 이름은 ‘캐럿 랜드인데, 보고 있으면 과연 ‘랜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마치 에버랜드나 디즈니랜드 같달까. 크고 화려하고 놀거리가 넘치는 놀이공원을 연상시킬 만큼, 남다른 풍성함에 마주칠 때마다 놀란다.


반면 이제 막 데뷔한 비인기 그룹이나, 국내 인기가 엄청나지는 않은 해외 아티스트, 인디 아티스트 등을 좋아하면 고달파진다. 나만 아는 아티스트라는 사실에서 충족되는 알량한 독점욕도 잠시, 음원 말고는 즐길 게 없다. 좋아하는 멤버가 나온 하이라이트만 보고 싶어도 재편집된 영상이 없고, 해외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보고 싶어도 번역이 안 돼 있고, 인디 가수의 못 간 공연은 직캠 하나 없어 영원히 미궁 속에 잠긴다. 외로워지는 것이다.


팬덤의 존재라는 것이 이렇게나 덕질을 좌우한다. 그렇다면 대감집 하면 또 빠질 수 없는 아이유의 경우는 어떨까. 아이유의 팬덤 ‘유애나를 생각하면 가끔은 대중 전체가 그녀의 팬덤 같기도 하고, (뭔가 좀 낡은 표현 같지만) 남녀노소가 공존하는 여러모로 좀 특이한 집단이란 느낌인데,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두어 개 있다.


최애의 대중성을 판단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노래방에 가서 가수 검색을 해보면 된다. 대중의 기준에서 이름 정도는 들어 본 가수라면 대표곡과 타이틀곡 정도는 실려 있을 것이고, 그보다 더 유명하다면 수록곡 몇 개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인기가 없다면, 기대하지 말고 검색하시라. ‘어? 이게 있어?’ 싶은 게 실망해 흥이 식는 것보다야 낫다.


그렇담 국민 가수 아이유는?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있을 것이다. 거의 없는 곡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이 올라와 있다. 앨범 전곡으로 차트를 올킬하기 시작한 <Palette>부터의 모든 곡들은 물론이고, <너랑 나>의 2집과 <분홍신>의 3집 역시 <기다려>를 제외하고 모든 곡들이 올라와 있다. 흥행에 실패한 1집은 아직 몇 개가 빠져 있지만, <기다려>의 가창 시간이 50초도 안 된다는 사실과 1집의 낮은 인지도를 생각하면 이보다 뭘 더 어쩔 수 있나 싶다.


심지어 올라오지 말아야 하는 곡들도 있다. 작년 콘서트에서 선공개된 후 올해 여름에야 발매된 <바이, 썸머>는 정식 발매 한참 전부터 노래방에 올라왔었다. 얼씨구? 이제는 발매가 됐으니 괜찮은가 싶지만, 여전히 노래방엔 <호텔 델루나>의 비발매 삽입곡 <Our Happy Ending>이 남아 있다. 얼마 전 박보검과 아이유가 홍보용으로 부른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도 두 배우의 이름으로 올라와 있어 날 당황스럽게 했다. 아니, 그건 그냥 예민 님의 노래잖아요…. 정말 문제없는 게 맞는지 의문이지만, 이 글로 인해 그 곡들이 내려가는 건 바라지 않으니 모쪼록 원만한 합의가 이뤄진 것이길 바란다. 아무튼간에 아이유의 팬으로 산다면 노래방에서 섭섭할 일은 없다.


유튜브로 눈을 돌려 봐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2차 콘텐츠들이 호화롭다. 밤에 듣기 좋은 노래,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 한 편의 편지 같은 노래, 2024년 콘서트 셋 리스트 등 온갖 조합의 플레이리스트들이 있어서, 바쁠 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필요도 없이 들을 수 있다. 다양한 톤과 언어로 부른 커버곡들도 많고, 타 언어로 번역된 커버곡을 듣는 것도 풍요롭기에 즐길 수 있는 재미다. 심지어 한 소절 공개된 티저를 한 시간 이어붙인 영상까지 본 적 있으니, 우리 집 곳간이 얼마나 풍족한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러나 있는 집의 곱게 자란 자식이야말로 배부른 소리를 잘도 하는 법이다. 파생콘텐츠를 원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많아서인데, 사람이 많다는 건 내 몫의 최애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팬덤이 아무리 인격처럼 지칭되어도 그 안엔 다양한 개인들이 있다. 팬의 니즈라는 것이 결코 단일할 수 없다. 말하자면 최애는, 공유지인 것이다. 나와 절대 다른 취향의 누군가와도 나눠 누려야 하는… 그래서 나는 연기하는 아이유, 춤추는 아이유, 랩 하는 아이유, 장만월처럼 차려입은 <Celebrity> 아이유에게 차분히 작사하고 수수히 발라드 부르던 아이유를 잔뜩 뺏겨 한 줌만 겨우 남은 상태다. 지난해 3월 콘서트 셋리스트에서 발라드가 죄다 사라진 공연을 보며 공포에 질린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아이유를 쪼개 가져야 할까. 난 정말 두렵고 슬프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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