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잘하는 거 없다고 느끼는 그대에게
20년째 같은 기도를 하고 있다. 다른 건 다 들어주셔도 아직 이것만큼은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 건지, 아님 더 헤매보라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다. 바로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찾기다.
중학교 때부터였다. 뭐든지 다 평범했던 나에게도 뭔가 하나정도 남들보다 잘하는 게 있겠지 했다. 그게 아니면 좋아하는 거라도 찾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20대가 됐다. 극 I면서 해외 나가고 싶다고 해외영업만 주야장천 지원하다 면접이란 면접은 다 떨어졌다. (이때의 별의별 면접 경험은 다른 글에서 썰 풀도록 하겠다. 장담하건대 나보다 더 쪽팔린 면접 경험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모르는 사람과 말 한마디 못 섞으면서, 해외를 공짜(?)로 갈 수 있단 생각에 참 적성도 모르고 지원했다. 그리고 공짜가 어딨던가. 돈 받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건데.
그러다 정한 나의 마지노선이 서른 살이었다. 서른 살엔 반드시 내가 좋아하는 일 또는 잘하는 일을 하고 있으리라! 그런데 서른이 됐는데도, 마흔이 됐는데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은 너무 많지만 그렇다고 뭐 하나 뛰어나게 좋아하는 분야도 없다.
와인 좋아한다고 하도 떠들고 다녀서 남들은 나를 소믈리에로 안다. 회사에선 나를 '와인전문가'로 부른다. 와인선택 할 일이 있으면 꼭 내게 묻는다. 그러다 회사 취미특강으로 소믈리에 코스가 있어 신청했다. 동기 3명이서 같이 들었는데 한 명은 실기까지 합격하고, 제일 공부 안 한 친구가 필기시험 1위를 했다. 나는 그중 꼴등이었다. 여간 창피한 게 아니었다. 그 뒤로 나는 '와인애호가'로 불린다.
꽃꽂이도 6개월 수업 들었다. 다양한 미적감각이 뛰어나신 분들 사이에서 나의 소질 없음을 빠르게 깨달았다. 그래도 꽃을 좋아하니 '씨앗모종 사업'을 하겠다고 잘 다니던 회사 휴직을 하고 비닐하우스를 알아보러 다녔다. 우선 베란다에서 모종으로 키워 비닐하우스로 옮겨심으려고 했다. 해외에서 두꺼운 전문서적도 여럿 사고, 고귀한 수입품종들 구매해 베란다 화단을 만들었다. 흙 속에 묻혀있는 씨앗들에게 예쁘다 말도 해주고 클래식도 틀어주고 촉촉하게 물관리도 하며 애정을 듬뿍 쏟았다. 하지만 동네사람들한테 '무순'키우냐는 소리만 듣고 막을 내렸다. (모종으로 키우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못 믿겠으면 상추 씨앗이라도 심어보시길!!)
결국 회사에 복직했다. 비록 몇 번의 이직을 했지만 회사 하나만큼은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쭉 다니고 있으니 최소한 '직장인'은 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나는 성격은 내향형이지만 남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하나만큼은 잘했다. 대학생 때도 교수님께서 Talking machine이라고 불러주셨다. 내 프레젠테이션 하는 모습 보고 반해 고백한 연하도 있었다.(TMI 죄송..ㅋㅋ). 면접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말을 잘해서 의심스러울 정도로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자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꾸 칭찬받게 되니 이제는 부담스러워졌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떨렸고, 내 말은 빨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발표할 때 랩 하냐는 소리 종종 듣는다.
"자네, 쇼미더머니 나갈 생각 없나?" 이런 소리 듣는 날은 이불이 찢어지도록 발차기하느라 밤샌다. 그래서 요즘은 발표하기 전에 친한 동료가 손짓으로 알려준다. 그가 손가락 중지・약지를 접거나, "Drop the beat' 입모양 하면 비트 탔다는 신호다. 그럴 때는 우선 하던 말을 멈추고 심호흡 크게 한번 해야 한다.
어쩐지 발표만 끝나면 그렇게 숨이 차더라니.
누군가가 나같이 침착한 사람에겐 '골프'가 어울린다고 했다. 잘할 것 같다고 미리 칭찬도 해주었다. 그래서 '아, 나도 잘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 최근에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과 병행하느라 자주 레슨 받지는 못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먼저 골프 배운 남편이 시도 때도 없이 엉덩이 흔들고 손 휘젓고 할 때는 그게 그렇게 꼴 보기 싫더니, 막상 내가 배우게 되니 머리 감으면서도 어깨 돌리고 있고, 횡단보도 기다릴 땐 꼭 스윙 한번 휘두르게 된다. 일단 내가 '잘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하니 열의를 갖고 열심히 노력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늘었을 거라 생각한 남편이 새해 첫날 인도어를 가자고 했다. 겉으로는 "안돼~ 나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했지만 속으로는 '훗, 스윙이 뭔지 보여주지' 그동안의 연습의 결과를 자랑하고 싶었다. 인스타에 올리게 영상 찍어달라고도 부탁했다.
결과적으로 남편이 골프를 때려치우거나 골프연습장을 바꾸라고 했다. 새해 첫날부터 기분 아주 잡쳤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도 좋아하고, 매일 같이 산책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오지여행 전문가라거나, '회사 때려치우고 떠나는 세계일주' 이런 거는 자신 없다.
결론은 마흔이 됐는데도 여전히 '나의 잘하는 일 ' ‘나의 적성’은 모르겠다는 거다.
브런치를 쓰려니 '작가 소개'도 해야 하고 '뭐 하는 사람'인지 증명도 해야 하는데 글쓰기보다 작가소개가 더 어려웠다.
시중 자기 계발서들은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도해 보라고 제안한다. 평소 관심 있는 일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다양한 시도도 해봤고, 평소 관심 있는 일도 살펴봤는데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서 우선 이것저것 브런치에 적어가며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려고 한다.
일단은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찾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바로 삽질전문, 아니 그러니까 일단 '경험은 해보는 DNA'가 내게 있다는 사실말이다. :)
저 근데 진짜 #골프 때려치워야 할까요? ㅠㅠ
・ 아마 우리는 진실한 자아를 가리키는 내적인 나침반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따라가든 따라가지 않든 그것은 언제나 우리를 본향으로 향하는 바른 길을 가르쳐준다.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삶을 산다.
・어떤 일을 다르게 하거나 새로운 일을 찾아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같은 일을 새로운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일을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스승을 따름으로써가 아니라 스승이 가리켜주는 길을 따라 우리 스스로 걸어감으로써 알아내야 한다.
・Clear라는 낱말에는 60가지도 넘는 뜻이 있다. '장애로부터의 자유', '죄의식으로부터의 자유', '비난으로부터의 자유' '혼란으로부터의 자유', '덫으로부터의 자유', '제약으로부터의 자유', '혼란으로부터의 자유', '빚으로부터의 자유', '흠집으로부터의 자유', '의심으로부터의 자유', '환상으로부터의 자유', '불확실로부터의 자유', '애매모호함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어떤 것이 clear 해지기까지, 다시 말해 말해 '빛의 인도를 받아 온전히 남을 섬길 수 있을 때까지는' 일생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할아버지의기도 #위로 #공감 #골린이 #삽질 #N잡러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