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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Jan 22. 2024

할머니와 개그콘서트

사랑받고 싶은 그대에게

 남자친구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도, 중요한 일정이 있어도 안 통했다. 일요일 저녁 6시면 우리 가족은 모두 모여서 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저녁을 먹어야 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소화시키시기 편한 음식들을 정성껏 준비해 주시고, 우리는 먹기 싫어도 모여 앉아 밥을 먹고, 꼭 다 같이 1박 2일을 보고 개그콘서트까지 보아야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 주라도 빼먹다간 아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한없이 딸바보 아빠였지만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우리 집 철칙이었다.


 할머니는 우리 집 옆 1분 거리에 사시는 이웃사촌이시기도 했다. 여러모로 고려한 아빠의 배려였다. 할머니는 새벽이든 밤이든 언제든지 우리 집에 오셨고, 오빠가 밥을 잘 먹고 있는지 잘 잤는지 등을 엄마보다 더 세밀하게 관찰하셨다. 밥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한 살 많은 오빠 뭐가 이쁘다고 맨날 반찬이란 반찬은 다 오빠 앞에 가있었다. 집안일은 나한테만 시키고 오빠만 더 이뻐하는  그런 할머니에게 나는 쉽게 정이 가지 않았다.


 한 달에 한번 할머니는 시장에 세숫대야를 들고 가서 미꾸라지를 한 바가지 사 오셨다. 난 그 날뛰는 녀석들이 너무나 꼴도 보기 싫은데 세숫대야 반대쪽은 꼭 내 차지였다. 그러다 바닥으로 탈출하는 녀석이라도 생기면 기회다 싶어 줄행랑을 쳤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애타게 불러도 보고 야단도 치셨지만 나는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숨어 할머니의 눈을 피했다.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세숫대야를 끙끙 들고 오셨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시장에 다니셨다.

난 할머니가 혼자 계셔서 적적하실까 봐 미꾸라지를 댁에서 키운다고 생각했다. 세숫대야 그대로 물 넣고 화장실에서 키우는 거겠지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댁 문을 열었는데 믹서기에 미꾸라지들이 갈갈갈갈 갈리고 있었다.  그 순간의 소름 돋는 공포란 곡성에 비할 바 못 된다. 내가 맛있다고 먹었던 우거짓국이 저 미꾸라지들이었다니! 어찌나 곱게 갈으셨는지 맛도 좋아 정말 깜빡 속고 먹고 있었다. 물론 갈갈갈 그 뒤로 성인이 될 때까지 입에 대지도 않았다.   

 추어탕 말고도 할머니의 시그니처는 또 있다. 바로 된장찌개다. 그 구수함과 감칠맛은 어린 내 입맛에 매일 먹어도 맛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할머니가 영 어색하고 불편해도 된장찌개 얻어먹으러 할머니 집 문을 드나들었다. 할머니는 그런 내게 당신이 드시는 게 남아있어도 꼭 새 된장찌개를 끓여주시곤 했다.


 난 그런 할머니와 두 번의 이별 준비를 했다. 한 번은 급성 패혈증으로, 한 번은 폐렴으로 임종이 머지않았다는 소식에 일하다 말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할머니께 달려갔다. 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는 정말 곧 돌아가실 것 같은 얼굴이었다. 사랑하는 아빠도, 오빠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나는 맨뒤에서 도대체 작별인사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기도를 해야 하는 건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를 보시더니 내 이름을 부르셨다. 할머니 목소리가 잘 안 들려 입술에 귀를 바짝 갖다 댔다. 할머니께서는 내 이름을 부르며 꼭 결혼하고 잘 살라고 하셨다.

"할머니, 저 이미 결혼했어요!"

나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할머니는 옅은 미소와 함께

"했어?,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못난 손녀딸 결혼도 못 하고 외로울까 봐 걱정하신 건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할머니는 '임종의 위기'를 잘 극복하셨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전만큼 건강을 회복하진 못 하셨지만 기억이 돌아올 때도 있었다. 할머니의 삶은 솔직히 말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할머니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가만히 누워서 누군가를 혹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아빠는 2시간 거리 요양병원에 할머니를  한 달에 두세 번씩은 꼭 찾아뵈러 갔다. '일요일 저녁 6시 약속'처럼 한결같으셨다. 아빠는 지쳐 보이셨지만, 아빠 얼굴도 못 알아보는 할머니 얼굴을 예쁘게 닦아드리고 우리에게 꼭 사진도 보내주셨다. 난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할머니를 위해, 아빠를 위해 할머니가 빨리 편안하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최근엔 부모님 연말정산을 도와드리다 알게 되었다. 아빠가 1년에 1600만 원이나 할머니 요양병원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칠순의 나이에 아빠 생활비 버시는 것도 빠듯하실 텐데 묵묵히 부담하고 계셨다. '누워만 계시는 양반이 얼마나 버티시겠어'라는 사람들의 말에 반증이라도 하듯 할머니는 벌써 2년 누워서 잘 버티고 계신다. 올해로 98세시다.

  아빠가 힘드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과, 혹시라도 어느 순간 내게 그런 부담이 올까 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점점 지쳐가는 아빠를 보면, 누워만 계시는 할머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누군가의 삶을 원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의 이기심을 어떻게 반성해야 할지도 몰라 혼란스럽다.  그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만 흐르고 있을 뿐이다.

 

 지난 주말 부모님과 함께 새해 인사 겸 할머니께 다녀왔다. 난 이제 더 이상 할머니를 어색해하지도 어수룩하게 뒤에 서있지도 않는다.  혹시나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그 순간 최선을 다해 할머니를 사랑하고 할머니께 고백한다. 아빠가 항상 할머니를 뵙는 그날이 제일 예쁘다고 할머니를 쓰다듬어 주시며 사랑을 쏟으셨던 그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병원을 떠나며 한번 더 할머니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누워 계신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속삭였다.

할머니의 된장찌개가 지금도 내겐 제일 최고라고.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고.


 


<할아버지의 기도>


- 레치얌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삶은 거룩한 것이며 서로 축하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남기는 법이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모든 사람의 삶에는 저마다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우리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도토리는 상수리나무로 자란다는 그 가능성에 의해 도토리로써의 존재가치를 지닌다.


- 진정으로 생명을 축복하려면 먼저 자신의 삶을 축복으로 채워야 한다


- 우리가 누군가에게 한 번 축복을 받았다면 그 축복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 상처를 입은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한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다.


- 우리가 진심으로 생명을 축복할 수 있어야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 우리가 누군가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순간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할머니 #된장찌개 #삶 #존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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