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있는 그대에게
어릴 적 친구들은 나를 소지섭 혹은 퇴계 이황 선생이라고 불렀다. 나의 생김새가 왠지 그 둘을 닮았다 했다.
친구들은 나를 놀려대면서 아주 즐거워했고 난 친구들이 웃는 게 좋았다. 내가 봐도 천 원짜리 꺼내 들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닮은 듯했고, 친구들에게 "밥 먹을래? 나랑 살래!" 꽥꽥 외쳐 되며 더 따라 하곤 했다. 이황 선생님보단 그래도 지섭오빠가 더 나으니까ㅠ
그 뒤로 나는 여자 소지섭으로 불렸다. 소띠이기도 해서 소간지 별명까지 나랑 찰떡이었다.
선생님이 아프셔서 결근하신 어느 날이었다.
심심한 우리들은 반장의 주도아래 인기투표를 하기로 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각각 18명인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참여했고 난 그중 남자아이들의 17표를 받아 1등의 영예를 누렸다.
나머지 1표는 아주 예쁜 내 친구가 받았다.
인기투표가 끝나고 난 후 나는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예쁘지도 않은 게 어떻게 인기투표 1등을 했지? 친구들은 저마다 앞다퉈 의견을 냈다. 나의 바보 같은 모습(착하다고 해주면 안 되겠니?)이 남자애들에게 먹혔을 거라는 둥, 맨날 100원짜리 사탕 사 와 돌리더니 성공했다는 둥(그건 여자애들한테도 전부 돌렸다. 친구들한테 나눠주는 게 좋아서 나는 먹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럴듯한 의견들이 모여졌지만 뾰족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나 역시 어리둥절했다. 뭐 하나 특별한 거 없었고 그저 착하게 살아온 게 다였는데 무엇이 나를 '인기녀'로 만들었을까?
그때 나랑 제일 친하고 예쁜 내 친구가 말했다.
"쟤는 얼굴은 안 이쁜데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이뻐"
얼굴도 이쁜 내 친구는 역시 마음도 이쁘다. 역시 예쁜 애들 눈에는 예쁜 것만 보인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위기가 예쁜 건 뭐지?;; ㅋㅋ
그리고 내가 찾은 '분위기 미녀'의 답은 바로 소간지를 닮은 눈빛이었다. 그렇다. 소간지하면 눈빛 아니던가.
부반장이었던 내가 수업 마지막 인사로 "차렷, 경례"를 외치자마자 난장판은 시작되었다.
쉬는 시간이면 180도 돌변해서 책상 위로 올라가는 녀석, 앞에 나가서 춤추는 녀석, 고작 5분 축구하겠다고 운동장으로 우다다다 뛰쳐나가는 녀석들까지 난 그들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대체 언제까지 저렇게 미쳐 날뛰려나 생각하며 난 그들을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들도 느꼈으리라 나의 촉촉한 시선을. 내 머릿속이야 어찌 됐든 '소간지 눈빛'에 그들은 소위 내가 '추파'를 던졌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뭐 하나 내세울 거 없는 내가 인기투표 1등이 될 수 없다. (하. 역시 남자들의 착각이란...! )
어쨌거나 인기투표로 인해 나는 '소간지'란 별명을 버리고 '분위기 미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분위기라도 미녀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다행인지 모른다.
눈빛 전략은 사회생활에도 유용하다.
상무님 말씀하실 때 우리 모두는 마음속으로 열심히 삼겹살을 굽는다. 그런데 애꿎은 노트북 바라보며 아무리 삼겹살 열 근을 구어도 상무님 훈화말씀은 끝나지가 않는다. 오히려 상무님의 노여움은 커지고 '이 새끼들이 다 딴생각을 해?' 말씀은 길어진다.
이럴 때는 차라리 상무님 눈을 바라보고 이해했다는 듯 끄덕이는 게 훈화시간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눈으로 너무 째려봤다간 '이 자식이 나랑 맞짱 까려고?' 생각하실 수 있으니 광 눈으로 치켜떠도 고개는 꼭 3초에 한 번씩 끄덕이는 게 포인트다. 가끔 틱으로 오해받아도 욕먹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이건 나 혼자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 혼자만 눈빛 쏘고 있으면 상무님 신나셔서 그 뒤로도 내 앞에만 앉고 나만 쳐다보며 말씀하신다. 당연한 듯 다른 사람들은 고개 숙이고 지 할 일들하고 있고, 나만 눈 빠져라 쳐다보고 고개 끄덕이느라 안구건조증에 목디스크 오기 일쑤다.
다 같이 집중하고(1. 상무님 쏘아보고), 공감하고(2. 보블헤드처럼 쉬지 않고 끄덕거리고), 포인트만(3. 중요한 말씀실 때 재빠르게 대답하고 마무리 의견내기!) 잡아서 빨리 끝내는 게 모두를 위한 일이니 팀원들과 배신 때리기 없기 꼭꼭 약속하고 들어가는 것이 현명하겠다. (하지만 어딜 가나 배신자는 꼭 있지..)
'효율적인 회의문화'를 위해 회의 때는 노트북을 갖고 들어오지 않기 캠페인을 팀 내에 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른데 쳐다볼 구실을 줄이고, 서로 아이컨택하고 집중하며 이야기하면 상무님의 엿가락 같던 잔소리도 가위 치기 할 수 있는 마법이 일어난다.
다만 이건 언제까지나 회의 때만 유용한 작전이다. 회식 때는 다 같이 눈빛쏘며 끄덕거리고 있으면 상무님 신나셔서 집에 안 들어가신다. 회식 때는 빠른 퇴근을 위해 진짜 삼겹살 굽기에 집중하고 상무님께 안주 하나라도 빨리 드리는 게 (입을 틀어막..) 상책이니 Time of Place 따라 써먹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눈빛전략은 어두울 때 내 마음을 밝혀주었다.
출퇴근길 나는 팟캐스트를 듣는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할 틈조차 없어서기도 하지만, 지하철 너머로 매일 같이 지나가는 한강의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 기도 하다.
창밖을 구경하고,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 어느 하루도, 그 어떤 사람도 같은 게 없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다르게 생겼고, 패션부터 향하는 목적지까지 소위 다 제각각이다.
이렇게 눈, 코, 입 어디 하나 닮은 게 없는 사람들인데, 심지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같을 리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맨날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고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랐을까.
나와 같은 마음이라 생각하고 조언하고 위로했을까.
나와 같지 않은데 왜 자꾸 내 것이었으면 했을까. 내 마음대로 생각했을까.
여러 가지 일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고개를 들어 5초만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곤 한다.
'다름 투성'인 세상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서운할 일도, 이해 안 되는 일들도 조금은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에는 스마트폰도 아이팟도 모두 가방 속 깊은 곳에 처박아 두고 그저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다녀본다. 해 질 녘 붉게 물든 노을이, 돌담에 핀 민들레 꽃이 온몸으로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밝을 때는 모든 것이 똑같이 보여도 어둠 속에선 작은 촛불 하나가 비추는 그곳이 무대가 되고 주인공이 된다.
삶이 어둡다고 느낄 땐 조용히 나의 시선으로 한 곳 한 곳 촛불을 밝혀보자.
어두웠던 공간이 소원을 빌기 전의 순간과 같이 변화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실컷 태양을 쳐다보다가 소경이 되어버리고 싶은 때가 왜 없겠는가
그대를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였다
이웃을 사랑한다며
세상을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고 말았다
시궁창 미나리밭 밭머리 개구리들이 울고 있다
*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둣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
어린 토끼 주둥이 봐
개꼬리 봐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천 개의 물방울
비가 괜히 온 게 아니었다
*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
거짓말을 할 수 없구나
그믐밤
그믐달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