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쓰러져가는 사람들 뺨 위로 하얀 눈이 쌓인다. 볼에도 사람 얼굴에도 녹지 않는 수북한 눈이 쌓여간다.
왜 이별대신 ‘작별’이란 단어를 썼을까? 읽기 전에 먼저 난 작별과 이별에 대한 의미 차이에 대해 찾아봤다.
이별은 영영 끝나는 것. 작별은 헤어지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기약이 있는 것. 두 단어 차이는 이러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작별이란 단어를 고집한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머릿속의 고통, 잔상, 해결하지 못한 억울함, 사무치는 그리움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이별할 수도 없고 헤어 나올 수도 없다. 그럼에도 기어코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을 지은건 아무리 주인공 경하가 검은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하고 싶지 않는다고 해도 끝끝내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인선처럼, 죽어간 사람들을 결코 잊을 수 없고 기억해야 하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인선이 키우던 새가 그림자로 펄럭일 때마다 인선의 엄마가 떠오른다. 이불 밑 낡은 실톱을 숨겨놓고 하염없이 바느질 품삯만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줄 알았던 나약한 엄마. 그녀의 자그마한 체구는 어쩌면 새처럼 하루라도 물을 안 먹으면 죽고 마는 돌봐줘야 하는 연약한 존재이나, 그녀의 영혼의 그림자는 타들어가는 얕은 촛불 하나만 비춰도 벽면을 가득 채운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처럼 활짝 펴있다. 곧 꺼질 것 같은 불씨에도 그녀의 날개는 온 벽을 감쌀 만큼 위협적이고도 따뜻했으며, 그녀의 날갯짓은 홰홰 불씨를 꺼트릴 듯 강인하게 펄럭였다.
책을 읽은 며칠간 나 또한 경하처럼 계속해서 악몽을 꿨다. 잔잔하게 그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예고도 없이 너무나 끔찍한 잔상의 사진들이 내 머릿속에도 또렷이 기억에 새겨지고 만다.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경하처럼 나도 책을 덮고 싶었다. 사진 속에, 인터뷰 속에서 잔잔하지만 끈질기게, 차분하지만 잔인하게 파고드는 고통이 느껴진다.
꿈속에서 나는 사람을 구했는데도 손가락질당했고, 내가 구해준 사람은 오히려 내가 구해주는 바람에 다쳤고, 괴로워했다. 이게 꿈이 아니길, 난 손을 잡고 싶어서 계속 손을 뻗었지만 기다렸던 따뜻함은 없었다. 내 손은 허공에서 공기라도 잡겠다는 듯 세차게 허우적거렸다.
'손 잡아줘'
'손 잡아줘'
'손 잡아줘'
악몽의 원인이 그녀의 책 때문인지 정신 사나운 기사를 읽어서인지 아니면 요새의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인선은 엄마의 모든 것이 싫었다. 그녀의 말투, 그녀의 눈빛 그녀가 살고 있는 집. 모든 것들이 지겨워진 어느 날 그녀는 가출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발을 헛디뎌 추락했고 크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 눈을 뜨니 엄마는 다시 그녀의 곁에 있었다.
경하는 폭풍같이 눈이 내리는 어느 날 인선의 집을 찾아 헤매다가 눈 속에 발을 헛디뎌 크게 다쳤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기를 바라는 그녀지만 인선이 부탁한 새 아마 때문에라도 그녀는 끝끝내 인선의 집에 도착하지만, 아마는 이미 죽고 난 이후였다.
경하가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더라면 아마는 살릴 수 있었을까? 허상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마를, 인선을 그리고 경하를 살고 죽게 하는 건 결국 나의 몫이었다. 내가 그녀들과 작별하지 않는다면 산 것이겠지.
검은 나무 우듬지에 쌓여있는 깊은 눈에서 경하와 인선은 가만히 누워있다. 그녀들의 뺨 위로 소복한 눈이 쌓여간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손을 뻗었다.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거리에서 잡고 싶은 지 잡고 싶지 않은지 모르겠는 그녀들의 손은 과연 서로에게 닿았을까. 아니면 차가운 눈을 움켜쥐었을까.
"작별 인사만 하지 않은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은 거야.?"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