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를 포기하다
오늘 나는 MBA의 등록을 포기했다. 분명 의욕도 있었고 해야만 한다고 느껴졌는데 막상 한 학기의 1300만 원가량의 등록금을 내려는 순간 내 손이 멈칫했다. 이게 맞나? 나 정말 회사생활 오래 하고 싶은가?
내가 MBA를 가야겠다고 느낀 이유는 이직도 아니고 승진도 아니었다. 나이 마흔에 더 이상 이직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혹시나 회사 내에 포지션 변경이 필요할 경우 MBA가 있다면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나 스스로 떳떳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학벌로 채울 수 없는 자격지심도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막상 1300만 원을 입금하려는 순간 내 손은 멈췄다. 약 5천만 원의 돈이 들어갈 거라고는 당연히 예상했고 준비도 해두었다. 그런데 입금하려는 순간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나 같은 직장인의 MBA의 경우 도전하는 이유는 1) 이직하기 위하거나 2) 승진하기 위해서 3) 네트워크를 쌓아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4) 혹은 학벌 세탁이나 자기만족 등 기타 등등의 이유로 MBA를 지원하게 된다.
그런데 내 상황을 돌아보니 나는 1) 이직한 지 아직 5개월 밖에 안되었고 2) 지금도 나이에 비해 직급이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드라마틱하게 승진한다고 해도 투입금 5천만 원을 뽑아내기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 등의 상황들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돈 버는데 지장 없고 회사생활에 문제없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얼마나 더 회사생활을 해야 할지에 대한 자신도 욕심도 없다. MBA를 하게 되면 최소 10년의 회사생활을 해야 소위말해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물론 이런 생각으로 15년을 버텼지만) 1년의 회사생활도 자신이 없다.
5천만 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행복한 일들이 떠올렸다. 1년에 한 번은 딸과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돈과 시간이면 다른 걸 해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에 3번 최소 3시간 이상 업무종료 후에도 투자해야 하는 시간들. 이 시간들을 내가 좀 더 값지게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사실 등록금을 내지 않게 된 이유는 회사 업무처리를 정신없이 하던 중 번뜩 깨닫게 되었다. 여러 부서와 나라가 함께하는 미팅하는 자리에서 훌륭하게 의견을 내고, 미팅을 이끄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작아졌다. 그리고 당장 내가 필요한 건 솔직히 MBA보다 영어 한 마디, 회의를 잘 이끄는 능력, 필드에 대한 경험이었다. 그게 내가 승진하는 길이었고 성장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5천만 원 들여 MBA 가는 것보단 현재 필요한 것부터 챙기는 게 맞다고 느꼈다. 물론 평생 회사생활에 목표한 바가 없기에 퇴근 후 3시간을 영어공부에 할애할 것 같진 않지만 최소한 그 2년의 시간이 가치 있도록 무엇이라도 하는 게 내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즐거운 방향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MBA를 등록해서 치열한 2년을 살았어도 분명 후회 없이 잘 한 선택이라고 나는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만큼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했을 테니까. 그런데 그걸 포기한 지금도 후회는 없다. 덕분에 아주 진지하게 오래도록 고민했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래서 정말 후회 없는 도전과 고민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는 3월에는 MBA 대신에 다른 새로운 걸 시작해 보려고 한다. 실전 MBA처럼 일주일에 3번은 무리겠지만,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도록 혼자만의 의미 있는 시간을 가꿔나가고자 한다.
엄청나게 고민했지만 선택한 순간 모든 것이 심플해졌다.
결론은 내 인생의 가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