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 헤르만 헤세
슬픔은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까, 아니면 슬퍼해야 한다는 의무감일까.
오빠가 떠난 이후, 하루도 눈물 없이 보낸 날이 없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오빠의 얼굴이 떠오르면, 숨이 턱 막힌다. 그렇게 예고 없이 슬픔이 밀려오고, 눈물이 흐른다.
오빠의 흔적을 따라 유품을 정리하고, 사망 신고를 하고, 남겨진 것들을 하나씩 마주했다. 오빠의 휴대폰을 열어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하루도 빠짐없이 통화했던 친구들의 목록이었다. 연인은 아니었지만, 연인처럼 다정했던 사람들. 매일 같이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고민을 들어주던 존재들. 우리 가족보다 더 오빠에 대해 잘 아는 친구들. 그들도 지금 나처럼 오빠를 잃고 매일 슬퍼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들은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을까.
갑작스러운 이별 후, 오빠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사실에 남은 우리는 애통해했다. 쏟아지는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오직 엄마만이 오빠의 흔적들을 조용히 기록하고 보관해 두었기에, 우리는 엄마의 기억을 의지해 오빠를 찾아 나섰다.
오빠의 휴대폰에는 여전히 빼곡한 일정들이 남아 있었다. 그가 떠나고도 한 달이 넘게 일정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일정들은 아직도 진행 중일까. 오빠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이제야 그가 오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어디선가 누군가는 오빠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까.
사람들은 내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오빠가 떠난 뒤,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있고, 작은 일에도 울컥하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어떤 이는 진심 어린 조언으로, 어떤 이는 나의 슬픔이 이제는 지치는 듯 약물치료를 권했다. 이제 나의 슬픔은 전염병이 된 듯 어떤 독립된 공간에 고립되어 있는 기분이다.
예전에는 술을 마시면 슬픈 일도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을 때도 저 세상 끝까지 기분이 좋아지기에 와인 한잔으로도 금방 행복해지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술 생각도 별로 나지 않을뿐더러 마셔봐도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술잔을 기울일수록 슬픔이 더 깊이 스며들고, 그리움이 더 사무친다. 술에 기대어 아픔을 잊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또다시 새벽 3시에 깨 오빠를 떠올린다. 오빠. 나의 삶. 부질없음. 먼지 같은 인생. 엄마의 떨리던 목소리. 영안실에서 마주한 오빠 모습. 마지막 얼굴. 당장 다음 주에 해야 할 일들. 결국엔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여러 가지 뒤엉킨 감정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오빠는 날 보고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이 모습이 오빠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오빠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하면 함께 슬퍼하겠지?
그렇다면, 다시 힘을 내야지. 언젠가는 이 깊은 슬픔이 조금은 옅어지는 날이 오겠지. 엄마 아빠와 함께 씩씩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모습 보여줘야지.
상실을 겪고 나니 누군가의 아픔을 허투루 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표현은 서투를지라도 더 깊이 더 진심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오빠의 상실의 경험을 통해 오빠처럼 다른 이들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게 아닐지. 작은 것들에서 긍정의 의미를 찾아본다.
다시 웃어도 될까?
그에게 시간은 조용히, 몸서리쳐지도록 조용하면서도 천천히 흐른다. 그 시간은 마치 종이 울린 한 시간과 다음 시간 사이에 참기 어려울 만큼 한없이 깊고 시커먼 균열이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를 부드럽게 감싸 주고 배려해 주는 것은 스스로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며, 정신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취약점을 감싸 주는 것은 참담한 고요 속에서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행복과 고통은 우리의 삶을 함께 지탱해 주는 것이며 우리 삶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잘 이겨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이라는 말과 같다.
그렇게 밤이 되어서야 우리 앞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비록 어떤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지만, 밖에서 보아도 우리 안에 변하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우리가 속수무책이었던 것에 대해 내면의 목소리가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잠 못 이루는 밤 그 시간만이 외적인 충격 없이도 우리의 영혼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충분히 놀라거나, 솔직한 감정을 의식하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술가들 사이에도 일고 있는 금주와의 전쟁에서 성공적으로 술과 맞서 싸우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술을 찾아 나선다.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 깊은 공감을 느낀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위로해 주며, 꿈을 꾸게 만들어주는 포도주가 오히려 그것을 적대시하도록 만드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근사하고 멋지게 느껴진다.
잠 못 이루는 한밤중에 우물물 소리를 엿듣다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감탄을 멈추지 못하고, 베일에 가려진 삶의 마지막 진실을 공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 길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며 인내심을 발휘하게 된다.
낮 시간을 살아가면서 하늘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하루 동안 기분 좋고 생기 넘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 일터로 향하면서 좋은 글귀를 읊조리거나 콧로리로 아름다운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죄수는 도처에 널린 화려한 아름다움과 달콤한 유혹에 심신이 지쳐 있는 사람보다 마음속 깊이 아름다운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면적이고 실질적이며 우연이 아닌 운명을 감당하는 것
나는 문득 우리가 우리의 삶을 너무나 사소하게 여기고, 시원찮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그 거장처럼 심오한 뜻을 가지고 거대한 틀을 만들며 신에게 간청하고 감사의 표현을 하겠는가?
잠시 멈춰 서서 이 외로운 꽃에 눈길을 준다면 슬픔과 절망이 겹친 우울함이 너무나 커져서 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영혼은 의미도 없고 망상만 가득한 이 참담한 곳에 영원히 사로잡히게 될지도 모른다.
네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나는 고통스럽다. 고통은 네가 막아 내려고만 하기 때문에 아픔을 주고 네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하기 때문에 너를 쫓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변명하지 말며,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라. 너는 네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네 마음속에 구원과 행복이라는 마법 같은 단 하나의 힘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의 이름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고통을 사랑하라. 거부하지 말고 도망가지 말라! 마지못해 억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의 은밀한 내면에 있는 달콤함을 맛보아라
하늘이 있는 풍경으로 더 자주 시선을 옮기고, 나무가 있는 자연으로 더 자주 발걸음을 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더 확보하며, 아름다움과 거대함의 비밀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말이다
이제 내 나이 40이 넘었으니 인생으로 보자면 한낮에 이른 시간이다. 지난 수년 동안 조짐을 보이던 나의 새로운 시각과 생각, 혹은 견해가 이제 비로소 그 형태를 드러내려 하고 있으며, 더불어 내 삶 전체가 지난 시간과 전혀 다르고 새로운 결정체를 만들고자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딱 한 번이라도 시도해 보라! 한 그루의 나무와 한 뼘의 하늘은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굳이 파란 하늘일 필요도 없다. 햇살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을 가지면 어느 날 문득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를 느끼고, 잠에서 깨어나 일터로 향하는 도중에도 신선한 아침의 숨결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그러한 언어에서 듣는 사람은 기쁨과 지혜, 재미와 감동을 얻는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언제든지 극복할 수 있으며 감각 덕분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감각'이라는 것은 바로 당연한 것의 일치, 혹은 세상의 혼란을 통일과 조화로 예감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슬픔에 잠긴 채 혼자 멀리 떨어져 있다면 가끔은 아름다운 시의 구절을 읽고, 즐거운 음악을 들으며, 수려한 풍경을 둘러보고, 당신 생애에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라! 당신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렇게 했다면 곧 기분 좋은 시간이 찾아올 것이며, 미래는 든든하게 여겨지고, 삶은 어느 때보다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