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킥이 쌓이면 그게 바로 지속성장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질문하는가>, 이시한

by 맴맴

사시사철 나는 이불을 덮고 잔다. 무더운 한여름에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꼭꼭 덮어야 잠자리에 들 준비가 끝난다. 기껏 한 겹의 천이지만 이불을 다 덮어야 비로소 보호받는 느낌이 들고 안심이 된다.

내게 이불은 단순히 잠을 자기 위한 도구가 아닌, 세상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방어막이자 나의 안전지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토록 따뜻한 방어막을 내가 걷어찰 때가 있다. 그것도 여러 번. 나의 안전지대가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려고 해도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서는 안심이 되지 않을 때 말이다.

바로 며칠 전에도 그랬다. 이불을 아무리 꽁꽁 덮어도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하루 종일 비난받은 기분이 들 때 나는 발버둥 치며 이불이 찢어질 듯 걷어찼다.


어느 날의 평범한 워크숍이었다.
주제는 ‘지속성장’.
우리 회사의 전략과 제품을 바탕으로 어떻게 고객에게 지속성장의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다.

내게 이 워크숍은 마치 하늘 속에 공기를 잡아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는데, 그나마도 한국 하늘이 아닌 미국 하늘의 공기를 잡아야 했다. 그렇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내게 그 워크숍은 수십 명이 모여 서로 영어로 떠들며, 서로 의견까지 내야 하는 자리였다. 시작 전부터도 울렁증이 밀려왔다.


문제는 프랑스에서 온 교육 트레이너였다.
이 친구는 나와 몇 번 미팅도 함께 다녔기에 내게 친근함을 느꼈는지, 계속해서 워크숍 중간중간 내 의견을 물어봤다.(Why Me? ㅠㅠ) 의견은 질문에 대답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이 친구는 꼭 내게 물었다.
"OO야, 질문 없어?"
처음 한 번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매번 물어보다 보니, 어느덧 그 질문은 다섯 번째가 되었고, 그는 장난스럽게 내가 질문을 할 때까지 이 워크숍을 끝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같이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은 "Please!"를 외치며 질문을 하라고 아우성이었다. 모든 팀 매니저들이 통찰력 있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을 한 터였다. 하다 못해 "How are you doing?"이라도 하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얼굴만 빨개졌다.

나도 매니저였고, 나의 팀원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컨설팅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인터뷰하고 미팅을 이끌어본 나지만, 그 워크숍에서는 정말 뭘 질문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른다고 해도, 이걸 어떻게 영어로 설명해야 하지? 하다 보니 시간만 흘렀다.


결국, 무겁고 조용한 정적 속에서 내 얼굴만 혼자 후끈후끈 익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금요일 6시까지 꽉 채워서 워크숍을 진행했다. 프랑스 친구는 내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질문 없어? 없으면 워크숍 참여한 의견이라도 이야기해.

나는 그제야 짜인 대답을 했다.

"의미 있는 워크숍이었고, 지속성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어쩌고 저쩌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답변을 겨우 마친 후에야 그 친구는 싱긋 웃으며 "Finally, The End!"를 외쳤고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래 6시까지 예정되어 있는 워크숍이었지만 설마 진짜 6시에 끝나겠냐는 모종의 희망이 산산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얄짤없는 프랑스인 같으니.. 끝까지 자기주장을 절대 꺾지 않았다)


학창 시절 사고 친 친구가 화장실을 청소하듯 나는 나의 잘못을 사죄하듯 워크숍 뒷정리까지 도맡아 하며 부끄러운 얼룩이 지워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날 밤도, 그 다다음 날 밤도, 나의 부드러운 안전지대에서는 나는 전혀 편안하지 않았고, 애꿎은 이불만 숱하게 걷어찼다.


며칠 뒤, 회사 도서관 신규 도서 코너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질문하는가》
누군가 나를 위해 주문을 해둔 것인가,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잽싸게 이 책을 집었다.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질문하는가》는 말 그대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방식에 대한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정답’을 찾기보다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나는 이 책 첫 챕터에서 알려주는 5 WHY의 기법을 활용해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왜 질문을 못 했을까. 아니면 입 밖으로 꺼내는 용기가 없었던 걸까?
혹시 누군가 내 의견에 반대할까 봐, 괜히 분위기를 어지럽힐까 봐,
혹은 바보처럼 보일까 봐 눈치만 본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왜 그토록 눈치를 보는 걸까.
무엇이 그렇게 불편했던 걸까? 정말 나는 그 주제에 관심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관심을 가질 여유와 의지가 없었던 걸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질문을 했어야 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ㅠ)

사실 이 책에 질문하는 법, 생각하는 법 등을 기대하고 이 책을 골랐지만 나는 질문에 대한 방법보다는 질문하는 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더 많은 메시지가 있다고 느꼈다. 제목에 '똑똑한'이 들어간 이유는 저자가 멘사클럽 출신이기 때문으로, 똑똑한 사람이 질문하는 법이 특출 나게 소개되어 있거나 하진 않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내게 도움이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답은 확실하게 'YES'다. 어쨌든 덕분에 나 스스로에게 더욱 많은 질문과 의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이 모여 나의 변화를 만들어 갈 거라고 생각한다.

불혹을 넘긴 지금도 이불을 걷어차는 밤은 계속되겠지만, 어쩌면 그 수많은 이불킥 덕분에 내 삶도 구름 속에 공기 같은 지속성장에 조금씩 다다르고 있는 거라 믿는다.



외부로 향하는 발산형 질문은 지식을 얻게 하지만, 내부로 향하는 수렴형 질문은 지혜에 가닿게 도와준다.
깨달음을 주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진정한 지식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한 대답에서 배우는 것보다 어리석은 질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이소룡-
질문이 있다는 것은 그 일이나 생각에 의문을 가진다는 뜻
멘토와 꼰대의 차이는 종이 한 장입니다. 아랫사람이 어른에게 요청할 때 그에 대해 답을 주면 멘토. 그런 요청이 없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필요할 것 같아 먼저 이야기하면 꼰대.
대화의 주인은 흐름을 이끄는 사람, 적절한 질문으로 대화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사람이 진정한 대화 마스터
공감을 얻으려면 따뜻한 감성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칭찬거리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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