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바 가게 이름에 '庵' 자가 많은 이유
자루소바의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깔끔, 고소하다. 따뜻한 우동은 면의 두께가 적당하고, 가쓰오부시 국물(*일본에서는 ‘쯔유(汁)’라고 한다.)이 짜지도 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맛 또한 아주 깊다. 또 오게 될 것 같다. 연세 지긋한 주인장께서 부족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시길래 와사비를 조금 더 달라고 했더니, 와사비뿐만 아니라 썬 대파까지 한 접시 담아 왔다. 오싱꼬(무 절임)도 더 내주고, 커피도 주신다. 예전에 된장국이 조금 모자라 조금 더 달라고 했더니 50엔을 내라던 심바시(新橋)의 식당과는 사뭇 다른 인정이다. 손님들도 각자의 사와를 마시며 식사를 하고 있지만,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의 대화에 끼어들기도 하며 다들 즐거워하고 있다. 요즘의 일본, 그것도 동경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인정이 넘치니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동네 사랑방이 된 것이리라.
어느 주말, 늦은 점심시간에 두 번째
들렀다가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게의 역사는 70여 년. 장모님이 개업하셨는데, 사장님은 73세, 부인은 69세, 장모님께서 딸만 둘이라 데릴사위로 들어오셨단다. 13년 전에 이 가게 건물을 지어 주변에서 이사했고, 장모님도 자식들도 바로 옆에 살고 계신단다. 젊은 시절 상품 개발에 힘썼던 덕분에 비교적 메뉴도 많고, 꽤 인기도 있단다. 추천 메뉴를 여쭈었더니, 자루소바, 벤께이소바, 카레우동, 히야시바까시 등이 특히 인기가 있단다. 맛도 있지만 늘 밝은 표정의 두 분에게서 정이 느껴진다.
세 번째 들렀다가
소바를 먹고 나오는 가게 입구에서 사장님의 장모님을 만났다. 조금 전에 주방에 계셨더랬는데, 선물 들어온 것이 있어 옆 블록에 있는 손자 집에 갖다 주고 오시는 길이란다. 잘 먹었다며 인사하며 무릎은 괜찮으신지 안부를 여쭈었더니 이것저것 가정사까지 알려 주신다. 큰 딸을 16살에 낳았고, 올해 85세. 가게를 맡은 큰 딸에게는 외손녀만 둘, 차녀는 아들, 딸 두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장남이 의사란다. 자식, 손주들이 주변에 모여 살아 자주 만날 수 있고, 일도 하실 수 있으니 참 복이 많은 분이다.
한참 동안 서서 말씀을 하시더니
누까쯔께(*쌀겨에 담은 장아찌 같은 맡반찬)를 좀 줄 테니 가져가라 신다. 그러고 보니 가게 바로 옆 옆 건물이 할머니 댁이다. 두어 번 거절하다가 따라 들어갔더니 플라스틱 통에 한 가득 담아 주신다. 감동이다. 요즘, 서울에서나 동경에서 느껴보기 쉽지 않은 인정이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달콤 상큼한 맛 또한 일품이다.
코로나가 좀 수그러 들면, 빈 그릇에 한국 음식이라도 가득 담아 카레우동을 먹으러 가야겠다.
소바 이야기 1)
중국 쓰촨 성(四川省)이 원조라는 소바는 스시, 뗀뿌라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어느 지하철 역 부근이나 소바 가게가 없는 곳이 없고, 서서 먹는(다찌구이, 立食い) 가게도 성행할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다. 옛 부터 일본에서는 명절, 히나마츠리(雛祭り), 단오에도 조상들께 소바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또, 기념할 일이 있을 때 소바를 먹었는데, 이사를 하면 힛꼬시소바(引越しそば, 이사 소바)를 주변에 대접하고, 새 해도 소바를 먹으며 맞이하곤 한다(도시꼬시소바, 年越し蕎麦).
소바 이야기 2)
유명한 소바집에는 암자를 뜻하는 ‘庵’ 자가 붙고, 오래된 사찰 주변에는 맛 난 소바집이 많다. 왜 그럴까? 에도시대 중기, 아사쿠사의 쇼오인(称往院) 경내에 ‘도꼬안(道光庵)’ 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주지 스님이 신슈(信州) 출신의 소바 명인으로, 참배객에게 대접하는 소바가 너무 맛있다 보니 소바가 먹고 싶은 참배객으로 늘 붐볐다고 한다. 그런데, 소바 때문에 찾아오는 참배객들이 너무 늘어나 행에 방해가 되다 보니 급기야 소바 대접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바가 아쉬운 고객들을 위해 절 주변에 소바 전문점들이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도꼬안의 맛과 인기를 이용하고자 가게 이름 뒤에 ‘庵’ 자를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