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각자내기는 러일전쟁 참전 병사들의 헤이타이간죠(兵隊勘定)가 원조
고급 브랜드 자전거를 판매하던 집 부근의 자전거 가게가 이사 갔다. 해외의 고급 브랜드 자전거만 취급하던 조그만 가게였는데, 자전거에 관심이 많다 보니 간혹 들리던 곳이었다. 그런데,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를 무료로 넣을 수 있도록 해주던 그 가게가 이사를 가고 난 후, 집 부근에 무료로 자전거에 공기를 넣을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쿄에는 서울처럼 도로나 공공장소에 설치해 둔 무료 공기 주입기도 없다. 자전거 수천 대를 보관할 수 있는 지하철 역의 대형 보관소에서는 공기 주입 펌프에 열쇠를 매달아 관리하고 있어 그곳을 이용하지 않는 天仁은 사용하기 어렵다. 브랜드 자전거 점포는 자기 집에서 구매하지 않은 자전거에 공기 주입을 하려면 50엔(한화 약 550원)을 내라고 적어 놓았다. 자전거 보유대수 약 7천만 대, 국민 두 명당 한 대 꼴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라인데, 무료로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할 곳을 찾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주 오래전 도쿄에 출장을 왔을 때의 일이다. 시장조사차 시내를 돌아다니다 백화점에 들렀는데 어느 매장에 정수기와 간이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일본은 무료로 정수기를 설치해 둔 곳이 거의 없는데,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물을 마시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직원이 달려왔다. “이 정수기는 매장의 고객용이니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은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물 문화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물을 마시는 것은 인간의 기본 권리인데 매몰찬 이야기에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다. “그래? 몰랐네. 우리 가게 고객용이라고 써 붙여 놓지 그랬어요? 이미 마신 물을 뱉을 수도 없고 어쩌지?” 냉소 섞인 답을 돌려줬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독극물 사린가스를 살포해 승객과 승무원 등 13명이 사망, 5,510명이 중경상을 입은 '지하철 사린 사건'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도쿄 시내에서 무료로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은 공원의 수돗물 외에는 없다.
전에 회사 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빌딩에 있던 식당에서의 일이다. 음식 맛도 그리 나쁘지 않아 바쁘거나 궂은 날씨 때 간혹 이용하던 곳인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주문했던 카레우동이 나왔는데, 카레가 조금 부족한 듯하여 종업원에게 카레를 조금만 더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는데, 잠시 후 우동 그릇 한가득 카레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유료 카레를 가져왔다는 것인데, 옆에서 지켜본 다른 손님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먹는 둥 마는 둥 우동을 먹고 나오는데, 더 황당한 것은 주인의 태도였다. 추가로 주문한 것이니 카레 값을 내라는 것이다. 하루 이틀 다니던 곳도 아닌데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그 집은 380엔을 더 받고 天仁과 몇 사람의 손님을 잃었다.
한국의 문화를 전혀 몰랐던 일본인 친구의 이야기이다. 미국 주재원 시절 LA의 한국식당에 들러 음식을 주문했는데, 주문한 요리는 나오지 않고 작은 접시에 담긴 반찬을 잔뜩 내주더란다. 깜짝 놀라 “잘못된 것 같다.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더니 기본으로 나오는 ‘밑반찬’이라던 것이다. 가정에서도 밑반찬 문화가 없고, 단무지 하나도 유료인 일본인의 상식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후 그 친구는 당연히 열렬한 한국의 팬이 되었고, 지금은 한국과 무역도 하고 있다.
일본 문화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일본에 살다 보면 모든 것이 과하게 ‘유료화’되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특히 물 인심, 음식 인심 후한 한국에서 살던 사람들은 더더욱 일본 사람들이 속이 좁고, 쩨쩨하다고 느낀다. 일본도 시골이나, 주변 지인들의 인심은 그렇지 않은데, 일본은 왜 이렇게 상업적으로 되었을까? 그 이유는 급격한 외식의 상업화, 개인주의와 와리캉[割り勘] 문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사람 사는 곳, 그렇다고 인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집 부근 天仁의 단골 소바집 니시노안(西野庵)은 밑반찬 오싱코(お新香)를 접시에 넘치도록 담아 내주고, 집에 가서 먹으라며 작은 김치 통에 가득 담아 주기도 한다. 집 부근의 마트에서 ‘홋카이도 감자, 봉지에 담을 수 있는 만큼 담아 가기’ 행사 때는 점장이 더 이상 담기지 않는데도 감자를 몇 개나 쇼핑 바구니에 덤으로 넣어 주기도 한다. 기타센주(北千住)의 시타마치 마츠무라(松むら)에서는 테이크 아웃 박 김밥(かんぴょう巻き)을 좁은 테이블에서 먹고 가겠다고 했더니 오싱코와 된장국을 무료로 내 주기도 한다.
와리캉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회사의 연말 송년회 때에는 선배는 많이 부담하고, 제일 막내는 식비를 내지 않도록 선후배의 비율을 조정하기도 한다. 돈카츠 전문점 ‘카츠토시(かつ敏)’는 양배추와 된장국을 무료로 리필해 준다. 일반적인 가게에서 100~200엔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서비스다. 100엔 정도의 공깃밥을 무료로 제공하는 라면집은 손님들로 늘 붐빈다.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비용은 상품, 서비스의 대가이다. 서비스를 받는 만큼 값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본의 상점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식당에서는 반찬을 무료로 리필해 주고, 공중 화장실, 인터넷 신문이 모두 무료인 한국의 문화를 오래 경험하다 보니 일본의 유료 문화가 더욱더 인정 없고, 매몰차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 경영자들은 윤리경영을 먼저 생각하고, 특히 서민들이 먹는 음식만큼은 너무 계산적으로 따지지 말고, 인정도 함께 서비스해 주었으면 좋겠다. 일본 정부도 정치적인 논리로 정책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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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더치페이(Dutch pay)에 해당하는 ‘와리캉’이란 와리마에 간죠(割りまえ勘定)의 줄인 말이다. 와리마에(割前)란 ‘몫, 배당액’이란 뜻이고, 간죠(勘定)란 ‘계산, 셈’이란 의미이니, ‘자기 몫만큼 각자내기’라는 뜻이 된다. 이 와리캉이 ‘헤이타이간죠(兵隊勘定, 헤이타이(兵隊)=군대)’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슬픈 얘기이지만 러일전쟁 때 ‘내일 전쟁터에서 죽을지도 살지도 모르는데, 같은 병사들끼리 꾸어 주거나 꾸는 것 없이 균등하게 부담하자’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