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문화, 글로벌화 진전으로 가로 쓰기가 늘어날 전망
일본의 출판물은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세로로 내려쓰는 우종서(右縦書, 이하 ‘세로 쓰기’)가 대부분이다. 신문, 주간지 등의 잡지류는 물론이고, 소설, 에세이 등의 문학 작품, 만화도 세로 쓰기를 한다. 학교 교과서는 국어(일본어)를 제외하고 가로 쓰기로 바뀌었지만, 아이들이 읽는 많은 책들도 세로 쓰기로 발간되고 있다. 수식을 많이 사용하는 경제학, 수학 등 전문 도서는 가로 쓰기인 경우도 있지만, 경제평론, 경영학 참고도서는 세로 쓰기가 보통이다. 어느 작가는 PC로 작업하는 원고는 가로 쓰기로 만드는데, 책은 세로 쓰기로 출간된다며 이상한 일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세로 쓰기가 많다 보니 책의 제본도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세로 右綴(우철)이 많다.
이처럼 일본에 세로 쓰기가 많은 것은 기본적으로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자는 한글처럼 가로 쓰기와 세로 쓰기가 모두 가능하다. 제지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중국에서는 죽간(竹簡)이라고 하는 대나무 판에 세로 쓰기로 글자를 썼다. 한 손으로 가로로 길게 잡으면 죽간이 안정되지 않아 글자를 쉽게 쓸 수 없을 것이니 세로로 적었고, 일본어도 한자의 적는 방법을 따라 하다 보니 세로로 쓰게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 일본어의 히라가나는 상단에서 획이 시작되어 하단 가운데서 끝나는 글자가 많다. 따라서 가로 쓰기보다는 세로 쓰기가 편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바꾸기 싫어하는 국민성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가로 쓰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개화 이후이다. 1788년에 막부의 공인 하에 네덜란드어를 소개한 오오츠키 겐자와(大槻玄沢)의 ‘란가쿠카이사(蘭学階梯)’가 처음으로 가로 쓰기를 하여 일반 대중들에게도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가로 쓰기를 사용한 것은 역시 외국어 사전이었다. 일본 최초의 외국어 사전에서는 알파벳은 가로 쓰기를, 일본어는 세로 쓰기를 하여 책을 돌려가면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885년 포켓 삽화 독일사전(袖珍挿図独和辞書)이 가로 쓰기를 하면서부터 사전은 가로 쓰기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문자를 써 나가는 방식에 맞추어 결정되는 것이 제본의 방향이다. 우리가 글을 읽는 것은 공간적인 배치를 시간적인 순서로 변환한 것, 글자 방향이라는 것은 시간을 공간으로 변환해 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세로 쓰기는 행(문자)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 나가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기는 방향이 오른쪽에서 오른쪽으로 철하는 것이 읽기 쉽고, 가로 쓰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문자를 읽으므로 페이지를 넘기는 방향이 왼쪽에서 왼쪽으로 철하는 것이 일기 편하다. 그래서, 독자가 본문을 읽을 시선의 흐름, 글을 읽을 방향을 고려하여 세로 쓰기로 발간하는 책은 우철, 가로 쓰기는 좌철을 한다.
이 논리는 문자와 언어 외에도 해당된다. 예를 들면, 악보와 음악, 만화, 병풍도 그렇다. 일본 병풍의 사계절 그림은 오른쪽부터 춘하추동이 시작된다. 미술 전시회에서 그림을 전시할 때도 順路(순로)를 오른쪽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칸막이로 구성되는 만화도 세로 쓰기 우철이다. 말풍선 등의 문장이 가로 쓰기라고 하더라도 일본에서 만화는 오른쪽 상단에서 왼쪽으로 흐르도록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세로 쓰기로 처리하고 오른쪽 철을 한다.
글쓰기의 방향이 중요한 것 중 또 하나는 간판이다. 물론 간판의 내용이 한눈에 잘 들어오게 하려면 로고, 일러스트 색상의 적절하게 조합하는 것이 좋겠으나, 글자의 방향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일본의 경우 건물의 정면 입구에 간판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건물 측면에 길게 간판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는 어쩔 수 없이 세로 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큰 글자로 적혀 있는 간판의 세로 쓰기는 운전 중이나 멀리서 보더라도 눈에 잘 띈다고 한다. 반면, 가로 쓰기 간판은 멈춰 서서 찬찬히 그 내용을 읽어보는 경우에 적합하기 때문에 정보량이 많거나,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싣고 싶은 경우에 적합하다.
초중고 대부분의 교과서는 가로 쓰기로 바뀌었지만, 국어(일본어) 교과서는 세로 쓰기를 유지하고 있다. 과도한 세로 쓰기의 고집이 일본의 행정 디지털화를 지연시킨 원인 중위 하나나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글자를 적는 방향에 따라 어느 것이 더 가독성이 높은가에 연구도 이루어 지고는 있지만, 명확하게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인 지인들 의견을 들어보면, 결국 친숙함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신문, 잡지에 익숙한 중장년층과 노인들은 세로 쓰기를 빨리 해독하고, 인터넷과 모바일 사용이 많은 일본 젊은이들은 가로 쓰기가 더 친숙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모든 웹이 가로 쓰기를 하고 있고, 한국의 웹툰이 일본의 만화 시장을 파고드는 등 급격한 글로벌화가 진전되는 것을 고려하면 일본에서도 가로 쓰기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