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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Oct 28. 2021

새빨간 거짓말은 왜 빨간색일까?

적(赤)’자에  ‘명백하다, 완전하다, 벌거벗다는 뜻도 있어

최근에 읽었던 요네하라 마리(米原万里)의 책 제목이 ‘噓つきアーニャの真っ赤な真実(한글판 제목 ‘프라하의 소녀시대’)’이었다. 일반적인 뜻으로 해석하면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이 된다. 새빨간 진실? 보통 새빨간 거짓말이라고는 하지만 진실이 새빨갛다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


우리처럼 일본어에서도 터무니없는, 명백한 거짓말을 ‘새빨간 거짓말(真っ赤なうそ, 맛카나 우소)’이라고 한다. 일본과 한국의 거짓말은 모두 빨간색이다. 우리말 새빨간 거짓말도 일본어에서 온 것일까? 많고 많은 색깔 중에 거짓말은 왜 빨간색일까? 영어는 어떨까? 영어에서 red는 열정, 분노를 나타내지만 거짓말에는 쓰지 않는 것 같다. a red-hot issue는 뜨거운 쟁점, red-hot anger 격노라는 의미로 쓰인다. 거짓말에는 흰색을 붙여 white lie,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뜻으로 쓴다.


일본어 어원을 찾아봤다. 크다, 많다는 뜻을 가진 산크리스트어 마카가 ‘摩訶’로 번역되었는데, ‘큰 거짓말’의 의미로 ‘마카나우소(摩訶な嘘)’가 사용되었다가 발음이 같은 맛카나우소(真っ赤な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발음이 비슷하며 ‘명백한, 밝은’ 뜻을 가진 ‘아키라카나(明らかな)’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같은 빨간색을 사용하는 ‘빨간 타인(赤の他人)’은 불교 용어가 어원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불교 용어로 부처님께 올리는 물을 아카(閼伽)’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파생되어 赤の他人도 '물처럼 차가운, 차가운 관계'라는 뜻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러한 설들은 모두 잘못 알려진 ‘새빨간 거짓말’이다.


결론은 한자 ‘적(赤)’자에 새빨갛다, 붉다는 뜻 이외에 ‘명백하다, 완전하다, 벌거벗다, 비다’라는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어 사전에서는 새빨간 거짓말을 뜻하는 맛카나 우소(真っ赤なうそ)를 ‘참과 거짓에 대해, 속임수가 안 통할 정도로 분명한 모양, 숨기는 것이 없는 모양, 거짓(偽り·詐り)이 없는 모양’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噓つきアーニャの真っ赤な真実’은 ‘새빨간 진실’이 아니라 ‘분명한, 명백한 진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관용적으로 쓰는 ‘적나라(赤裸裸)하다’의 ‘赤(적)’자도 같은 뜻이라 적나라하다는 ‘몸에 아무것도 입지 아니하고 발가벗다,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어 숨김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위 어원의 예로도 들었지만, 일본인들이 자주 쓰는 ‘빨간 타인(赤の他人)’도 같은 이유로 ‘전혀 모르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카하지(赤恥, あかはじ)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몹시 부끄러운 모양’이라는 뜻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정부가 발표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올림픽 이후 하루 2만 명 이상 나오던 확진자가 갑자기 하루 몇 백 명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봉쇄를 하지도 않았는데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확진자가 줄어든 이유는 10월 31일 선거에서 자민당이 이기기 위해 기시다(岸田) 수상 취임 이후 PCR 검사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도록 해 검사 수가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검사 수가 줄어들었으니 확진자 수도 당연히 줄어들었을 것이고, 이를 확진자가 줄어든 것처럼 조작하고 있으니 개인이 각자 알아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떠 돌고 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늘 근거로 통계 수치를 들면 모든 의원들이 모두 수긍하며 받아들였는데, 사실 그 통계 자체가 본인이 유리하도록 만든 엉터리 통계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통계였다”는 것이다. 미국 수학자 존 파울로스도 "현대인에게도 유리하게 조작하는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속는 문맹이 있다"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검사자 수를 줄여 국민들에게는 코로나가 거의 다 잡힌 것처럼 눈속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 확진자가 줄어든 것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새빨간 거짓말이 없는, 정의와 진실이 통하는 정직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적색의 빛의 파장은 610~780 나노미터 범위다. 일본 공업규격(JIS)에서는 색상 50R, 명도 3.5~5.5, 채도 9~13 범위의 색에 빨강이라는 색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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