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이었던 외식시장을 이제 여성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하라다 히카(原田ひ香)의 소설 란치자케(ランチ酒, 낮술)를 읽었다.
‘술과 어울릴까?’ 주인공 요코(犬森祥子)가 점심을 고르는 기준이다. 점심과 함께하는 낮술은 밤새 힘들게 사람을 돌보고 있는 돌봄이 요코에게 주어진 최고의 호사다. 요코는 이혼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로 딸 아카리(明里)를 데리고 나오지 못한 자책감에 방황한다. 밤새 다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돌봐 주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픔과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달그락하는 소리와 함께 카운터 위에 유리잔이 놓였다. 자그마한 술잔에 '너무 많이 따라서' 가득 담긴 소주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서 투명하고 네모난 얼음이 반짝반짝 빛난다. 아아, 요코는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탄식을 내뱉었다. 고구마의 향이 강하고 묵직한 소주다. 오늘 같은 날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맛있는 음식을 몸속에 가득 채워 넣고 싶다.
낮술과 함께 맛난 점심은 지친 요코의 탈출구이자, 살아가는 힘이다. 요코는 음식으로 자신을 달래고, 음식과 어울리는 낮술로 풍미를 즐기며 피로를 풀고 잠이 든다. 아이를 데리고 오려면 돈을 더 모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이혼한 지 얼마 않은 요코는 아직까지도 혼란스럽고 혼자 집에 가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녀도 점점 좋아져 간다. 소설 란치자케(ランチ酒, 낮술)에는 매번 맛난 요릿집이 등장하지만 그녀가 홀로서기를 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소고기 덮밥집, 생선구이, 바쿠테, 오므라이스 집 등 16곳 식당의 맛난 요리들과 낮술로 쇼코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고독한 미식가(孤独の グルメ)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井之頭五郎)는 수입 잡화상을 경영하고 있다. 그는 란치자케의 요코와는 달리 술은 마시지 못한다. 거래선을 방문했다가 지치고, 배가 고프면 주변의 식당을 찾아, 혼자서 배불리 먹고 행복해한다. 말도 하지도 않고, 오로지 먹는데 집중한다. TV 드라마에서는 호쾌한 배경 음악과 함께 배우 마츠시게 유가타(松重豊)의 속마음을 들려주는 내레이션으로 먹는 행복감을 전해준다. 그는 늘 신중하게 식당을 선택하고, 메뉴가 많은 식당에서도 냉정하게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찾아낸다. 고로가 찾는 식당은 가격도 적당하고, 혼자서도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니이가타(新潟) ‘산마루의 찻집 구라(峠のお茶屋蔵)’에서 전설이라 불리는 일본식 곰탕[煮込み]과 가마솥밥을 먹고 나서 고로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작은 솥 안에 일본의 사계절이 스며 있고, 역사, 자연, 우주가 있다”라고까지 말한다.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들렀던 이자카야(선술집) 스미레에서 그냥 나오기는 미안한 마음에 고등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그런데 "마치 위(胃)에 새로운 역사를 새기는 것 같다. 샌드위치 혁명! 처음 온 집이지만 늘 다니던 곳과 같은 느낌이다. 할머니 집처럼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만 하면 바로 나온다."라고 생각한다. 고로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노라면 ‘医食同源’, 병의 치료와 식사는 인간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그 근원은 같다는 말이 떠 오른다.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인들에게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용기와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두 권의 책에서도 일본의 외식, 음식문화의 한 면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식문화 연구가 아코 마리(阿古真理)는 외식의 목적을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한다. 하나는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데이트부터 송년회, 정치 밀담까지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자리로 식당이 사용되어 왔다. 또 하나는 식욕을 채우기 위한 일상적인 식사로서 외식이다. 그 속에 일부의 사람이 목적으로 하고 있던 것이, 요리 그 자체를 즐기는 외식, 이른바 ‘음식’이다.
지난 50년간 일본의 외식시장은 점차 커졌다. 외식이 급격히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오사카 엑스포가 열린 1970년으로 일본에서는 외식 원년으로 불린다. 이후 패밀리 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각지에 들어서면서 기업들이 주도하는 외식 산업이 생겨났다. 대량생산에 따른 저 비용화로 문턱이 낮은 외식업체가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외식 시장을 점점 여성들이 주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외식문화는 본래 남성들이 하루 끼니를 해결하거나 남성들끼리 즐기는 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근대 이후에 조금씩 지위가 오른 여성들이 외식에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버블기에는 오야지 갸루(オヤジギャル, 때로 아저씨 같은 언동을 즐기며 또 그런 행동이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젊은 여성)로 불렸던 젊은 직장 여성들이 남성의 성역이었던 선술집, 밥집(縄のれんのみせ, 나와노렌노미세)에 드나들면서 화제를 모았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 세계적으로 여성이 참여하면 그 현상이 주목을 끌고 유행하게 된다.
여성들을 외식에 참여시킨 최초의 계기는 백화점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산층이 두꺼워지면서 직장인과 그 가족들도 주말에 레저를 즐기는 느낌으로 백화점에 갔다가 식당에서 점심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주부들은 백화점 내 레스토랑과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외식계에 데뷔하게 된 것이다. 젊은 여성들의 외식이 활발해진 것도 1970년대부터이다.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결혼하기 전에 청춘시대를 즐기려는 여성들도 늘었다. 이때 애독하던 잡지 anan과 nonno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던 여성들을 일컫는 ‘안논족(アンノン族)’이라는 유행어도 생겨났다. 특히, nonno는 일식 요리사와 주인을 소개하기도 하며 교토풍의 도시락(京風弁当)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드디어 음식업계가 '사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80~1990년대에는 직장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여성들의 외식 참여도 더욱 늘어났다. 여성들은 잡지 Hanako에 소개된 가게에 줄을 섰다. 이 잡지를 들고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Hanako族 족으로 불렸다. 그리고 프랑스 요리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기호의 변화나 지방의 과다 섭취가 문제 됨에 따라 신선한 재료를 살려서, 소량이며 건강식인 새 요리를 지향하는 누벨 퀴진이 인기를 끌었다. 여성지는 새로 생긴 프랑스 식당에서 누벨 퀴진을 만드는 요리사들을 스타로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누벨·퀴진의 영향을 받은 누오바·쿠치나의 요리를 배운 요리사들이 귀국하여 버블 전성기의 이태리 요리 붐으로 연결되었다.
경제력을 가진 여성들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망에 눈을 떠 유행을 주도하는 위치가 된 것이다. 고급 프랑스 요리는 부유층, 미식가, 접대를 하거나 받는 남자들도 먹었겠지만, 자기 지갑을 열어 자신을 위해 요리를 먹는 여성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인기가 높아졌다. 여성 자신도 식당의 주역이 되었지만, 교제를 위해 남성이 여성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외식 산업에서 여성의 역할은 두 배로 커진다.
코로나로 외식업계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식당에서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투명 아크릴 판으로 옆자리와 분리시키고 있어, 혼자 먹기에 능숙해진 사람들을 더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은 단순히 먹는 곳이 아니라 ‘커뮤니티, 소통의 장소’이다. 집 부근의 소바, 우동 집만 하더라도 한 끼 식사만 하는 곳이 아니라, 소바와 함께 맥주도 한 잔 마시면서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일본도 지난주부터 식당의 영업시간 제한을 해제하여 본격적인 위드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다. 외식이 안전한 먹거리로 풍미를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