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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Aug 22. 2021

코로나로 표면화된 일본의 혼밥 문화와 결식아동 문제

 초중 아동 7 명 중 1 명이 결식, 외식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

#1. 어디에서 먹어 볼까? 오늘은 사무실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본사 옆 생선구이집의 긴 줄 뒤에 섰다. 어느 식당이 좋은지를 잘 모르겠거든 긴 줄 뒤에 서면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는 선배의 조언을 따랐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식당은 맛이 있던지, 값이 싸든 지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4명 테이블에 앉았는데, 알고 보니 4명 모두가 각각 혼자 온 손님들이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밥을 먹고 있는 옆 테이블도 사정은 마찬가지, 전혀 모르는 4명이 합석한 것 같다. 도쿄 지사에 부임 후 처음 혼자 먹게 되는 점심, 모르는 아가씨와 마주 앉아 혹시라도 실례가 될까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후다닥 밥만 먹고 나왔다. 그리고, 인원이 많지 않은 지사(支社)의 특성상, 혼자서 밥을 먹을 일도 점점 늘어갔고, 혼밥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2.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이었던 K 씨는 매일 오후 1시가 지난 시간에 혼자서도 어색함이 없이 당당하게 밥을 먹었다. 원고 송고 마감시간이 오후 1시였기 때문이다. 사무실 부근에 있는 순두부 집에 자주 갔는데, 매우 친절하게 밑반찬을 더 챙겨주기에 한국의 넉넉한 인심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 혼자서는 점심을 잘 먹지 않는 한국의 식사문화를 알게 되었고, K 씨에게 특별히 친절을 베풀었던 이유에 측은지심도 있었음을 알게 되어 웃었다고 한다. K 씨의 사정을 알지 못했던 식당에서는 “도대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길래 친구나 동료도 없는지, 매일 늦은 시간에 혼자 밥을 먹으러 오는지 정말 안타깝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3. 니혼바시(日本橋)의 사무실가는 낮 12시가 되면 비닐봉지를 든 남녀 직장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도시락 전문점이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사무실이나 주변의 공원에서 먹으려고 움직이는 모습이다. 여성들이 공원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도 도쿄에서는 전혀 이상한 광경이 아니다. 사무실에서는 자기 자리나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마르하 니치로 홀딩스의 ‘직장인의 점심 실태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직장인의 36%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남자의 62%, 여자의 49%가 ‘혼밥’을 한다고 한다. 정말 이해하기 어렵지만, 점심을 먹을 때 먼저 먹겠다든지, 먹어 보라든지, 점심은 먹었는지 등의 인사는 하지 않는다. 일본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혼자만의 자유 시간이고, 점심을 먹는 장소는 free space이다.


#4. 서울 본사의 영업통인 본부장은 외근을 나가지 않고 사무실에 남아있는 영업부서 직원들이 있으면 늘 불만이었다. 특히 간부들이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먹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왜 거래처와 함께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점심시간에 고객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저녁에는 식사를 대접하지만, 점심을 함께 먹는 경우는 3%로 극히 적다. 저녁에는 바로 귀가하고, 점심시간을 비즈니스 타임으로 활용하는 美州(미주)와는 사뭇 다른 비즈니스 문화다.

음식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언제 밥이라도 한번 먹자’는 의례적인 인사를 자주 나누기도 하고,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느냐’고 걱정을 하기도 하고, ‘밥을 사겠다’고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한국어 ‘식구(食口)’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즉 '가족'을 뜻한다. ‘생계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 또는 공동체의 의미로 회사의 구성원들을 ‘가족’이라고도 한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동반자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회사를 뜻하는 영어 ‘company’에도 회사라는 조직 형태뿐만 아니라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함께'라는 뜻의 'com'과 라틴어로 빵이라는 뜻의 'pan', 먹는다는 뜻의 ion’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Company'는 먹고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란 의미가 된다. ‘음식’의 중요한 본질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데 있다.

孤食(고식)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일본


일본인들은 어떨까. 일본의 민속학이나 문화 인류학에서는 축제 때 신들께 음식물을 공양하는 것을 神(신)과의 교류, 조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飮福(음복) 연회, 나오라이(直会)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화로(火鉢)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각자 앉을자리가 정해져 있어 그날 있었던 즐거웠던 일, 아쉬웠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단란한 자리였다. 지금도 거래 관계에서 부부, 가족이 만나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정도 관계가 되면 상대방을 아주 신뢰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에서도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꼭 살기 위한 목적만이 아닌, 가족,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소통의 場(장)이다. 그러나, 핵가족화, 독신자 증가, 개인주의의 진전,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식사의 개념이 바뀌었다. 물리적, 시간적 이유로 혼밥이 늘어나며, 많은 직장인들에게 점심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영양분을 섭취한다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함께 먹는다는 共食(공식)에 반대되는 고독한 식사라는 뜻의 孤食(고식)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본의 아이들 7명 중 1명이 결식 아동


코로나 팬데믹은 식사의 개념을 바꾸며 孤食(고식)의 문제도 가속화시키고 있다. 비말 감염을 높인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사람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는 일이 줄어들었다. 점심시간에도 많은 식당에서는  테이크 아웃 도시락을 판매한다.  이제 ‘외식은 생명과 관련된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렸다. 코로나 이전부터 있었던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취약성, ‘빈곤’의 문제도 표면화되었다. 문부과학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급식이 아니면 밥을 먹기 어려운 결식 초중학생이 137만 명, 전체 대상 아동수의 14.7%에 이른다.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아이들 7명 중 1명이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코로나로 양극화 가속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직장을 잃은 어른,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대학생들에까지 영향이 확대되고 있다. 기부로 운영되는 어린이 식당 수는 2018년 2,286 개소에서 현재 5천여 곳으로 늘어났다. 무료로 급식하는 성인식당도 늘어나고 있다. 성인 식당을 운영 중인 요리 연구가 에다모토 나호미(枝元なほみ) 씨는 코로나 마스크 배포에 800억 엔이나 쓰고, 올림픽으로 천문학적인 손해를 보는 정부가 “왜 밥을 먹지 못하는 국민들은 지원하지 않느냐”라고 분개한다. 코로나 이후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양극화는 식사뿐만 아니라 거주, 생필품을 포함한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누구나 5엔으로  먹을 있는 식당

교토대학 후지하라(藤原辰史) 교수는 孤食(고식)과 共食(공식)의 중간 단계인 ‘인연식당(御縁食堂)’을  대안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모양은 쇼핑몰의 푸드코트나 싱가포르 호커스센터, 포장마차촌 같은 형태로 만들고,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을 돈벌이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주체로 대접하자는 취지다. 御縁食堂과 일본어 발음이 같은 고엔식당(五円食堂)으로 음식값은 5엔으로 하되, 여력이 되면 더 내도록 한다. 원하는 만큼 음식을  제공하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한다. 해외에서 온 관광객도 편히 쉬면서 밥을 먹으며 정보를 공유하며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장소로 만들자는 것이다. 거리에 쉴 수 있는 벤치가 적고, 무상으로 물을 제공하는 곳이 없는 교토,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아이디어다.

함께 밥 먹기 운동 전개하는 일본

 

일본 내각부의 조사에 의하면,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비율은 아침 25.5%, 저녁 8.8%라고 한다. 급기야 일본의 농림수산성과 각 지자체들은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밥 먹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족, 친구 등과 함께 식사를 하면,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강조한다. 함께 먹으면 즐겁게 소통할 수 있고, 식사 예절이나 요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며,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기도 쉽다, 식사의 목적이 영양을 섭취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장임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코로나는 종식되겠지만, 최소한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식사 시간이 하루빨리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소통의 場(장)이 되돌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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