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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Nov 27. 2021

히마리 짱과 시절 인연(時節因緣)

히마리(陽葵) 짱과의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

코로나 19가 한창이라 한 시간쯤 늦게 출근하던 지난 3월, 엘리베이터에서 등원하는 아이를 만났다. 늘 밝게 웃는 얼굴로 엘리베이터 안의 안전봉을 잡고 까불까불 몸을 흔들며 天仁을 올려다보는 아이가 얼마나 귀엽던지. 그 뒤로도 거의 매일 만나게 되면서, 자세를 낮추어 아이의 눈높이에서 인사도 나누었다. 아이 엄마에게 이름도 물었다. 히마리(陽葵), 참 예쁜 이름이다. 태양처럼 밝고, 적극적으로, 해바라기처럼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뜻이다. 아이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히마리 짱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늘 웃는 밝은 모습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네요.”


비 내리는 주말 오후, 마트에 다녀오다가 아파트 단지에서 히마리 짱을 만났다. 아이도 天仁네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엄마에게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한다. 셀카를 찍었는데 아이가 너무 귀엽고, 예쁜 포즈를 취해 준다. 그 사진은 최초의 기록이 되었고, 인연의 시작이었다. 서서 잠깐 이야기도 나누었다. 히마리 짱 아빠와 天仁네가 서로 엇갈리게 도쿄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아빠는 알아보면 알만한 업계의 분인 것 같아 이름도 물어보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코로나 19가 엄중한 상황이고, 곧 돌이 되는 쌍둥이 여동생 돌봄 문제 때문에 서울의 아빠와 합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세 살 히마리 짱에게는 아빠가 매우 필요한 시기 일터인데 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天仁네 현관 앞에서 엄마와 마트를 다녀오는 히마리 짱을 다시 만났다. 마침 전에 읽었던 “한국 부동산 관련 특집기사가 생각나 확인해 보니, 마침 히마리 짱 아빠 회사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더라, 정말 대단한 우연”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러던 중 히마리 짱이 天仁네에 들어가더니 놀다가 가겠다고 한다. “히마리 놀고 싶어. 놀고 싶어(ひまり、遊びたい、あそびたい)”. 天仁은 좋다고 했더니 히마리 짱 엄마도 할 수 없이 “죄송합니다만, 10분 정도만 부탁드립니다.”라고 한다. 마침 한국식 김밥을 준비 중이었는데, 아이가 너무 맛있게 잘 먹는다. 물론 30분도 더 놀다 갔다. 히마리 짱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때는 장난감도 많이 없었지만 히마리 짱은 天仁네에 놀러 오면 편하고, 재미있어한다. 엄마가 한 돌이 되지 않은 쌍둥이 동생들을 더 신경 써야 하이 당연히 챙겨줄 수 없을 것이라 함께 놀아 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天仁네에 놀러 오면 돌아갈 때까지 늘 눈을 떼지 않고, 함께 놀아 주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평일에는 일찍 자야 하니 쉽지 않지만, 요즘은 주말이면 꼭 놀러 온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아파트에 살면서 서로 교류를 하기가 쉽지 않다. 세 살 아이를 외국인의 집에 혼자 놀러 보내기는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인연이 이어진 것은 오픈 마인드를 가진 히마리 짱 엄마 덕분이기도 하다.


天仁네에 히마리 짱이 갖고 놀 장난감도 조금씩 늘어나는 만큼, 정도 점점 깊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화점을 지나다 예쁜 옷이 보이기라도 하면 히마리 짱 생각이 나 하나씩 사주게 되었다. 과자집에 들르면 이치카에게 줄 쿠키도 하나 더 사게 된다. 한국인, 일본인 친구에게 히마리 짱의 이야길 들려줬더니 대단하다는 한편, 언젠가 귀국하게 될 터인데 정이 너무 깊어지면 헤어짐이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히마리 짱과의 만남은 시절 인연(時節因緣)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히마리 짱과의 만남은 시절 인연(時節因緣)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 연이 닿아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고, 갖고 싶어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만날 수도 없고, 손에 넣을 수도 없다. 큰 틀에서 보면 ‘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生者必滅 去者必返 會者定離)’, 작게 보면, 작은 상황들이 이어진 것이다. 결혼 12년 만에 태어나 3살 아이로 天仁을 만나게 된 점, 코로나 19로 주말 외출 자제, 아빠의 한국 주재, 엄마의 일과 육아 등이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히마리 짱은 세 살 나이 답지 않게 나눌 줄 알고, 인정 있고, 암기력, 색채 감각 등이 매우 뛰어난 아이다. 정식으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세 살 아이가 히라가나를 읽을 줄 안다. 목욕탕에 붙여 둔 일본어 오십음도(五十音図)로 혼자서 다 익힌 모양이다. 참 뛰어난 아이다. 최근 요네하라 마리(米原万里) 씨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天仁도 닮고 싶은 최고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天仁은 그녀가 프라하에서 자유로운 토론식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큰 작가, 최고의 통역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 한다. 교육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예쁜 히마리 짱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자유롭고, 잠재력을 발산할 수 있는 환경의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름처럼 밝고, 건강하고, 적극적인 글로벌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기원한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

법상 스님은 ‘시절 인연’이라는 시에서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 품 안에, 내 손안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 생각하면 재물이나 인간관계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섭섭해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밝은 성격의 히마리 짱은 늘 즐거움을 준다. 자주 생각이 나고, 보고 싶고, 만나면 좋다. 미리 헤어짐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감정에 충실하면 되지 않을까?


멀어짐은 너무너무 아쉽지만,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히마리 짱이 서울의 아빠와 함께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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