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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Dec 15. 2021

진화를 계속하는 일본의 레토르트 식품

최초로 개발한 오츠카식품이 기술 독점하지 않아 시장 급속히 확대

1964년 오사카의 한 가루 카레 제조회사는 이미 일본의 국민 먹거리가 되어 있던 카레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개발 담당자의 눈에 띈 것이 미국의 패키지 전문지 ‘Modern Packaging’에 게재된 군용 진공 포장 소시지였다. 이 기술을 카레에 응용할 수는 없을까? 누구라도 간단히 물에 데워 맛있게 카레를 먹게 할 수는 없을까? 방부제, 보존료를 사용하지 않고 상온에서 장기 보존이 가능하다면 좋은 상품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최초의 레토르트 식품 봉 카레

그러나, 휴대용 진공 포장 소시지 기술은 미국의 군사 용이라 정보를 구하기 어려워 자체 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룹 내에 링거액을 만드는 회사가 있어 멸균에 관한 기술과 노하우는 있었지만 부드러운 봉투에 든 카레를 유리병에 든 약품처럼 가압 살균하는 것이 어려웠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카레를 만드는 전용 솥을 개발해 나갔다. 그런 실패와 연구를 거듭하여 4년 만인 1968년 세계 최초로 탄생한 레토르트 식품이 오츠카 식품(大塚食品)의 ‘봉 카레(BON CURRY)’다.


발매 초기에는 반투명 파우치 폐품의 유통 기한이 여름 2개월, 겨울 3개월로 짧았다. 그 정도라도 당시의 보존기간으로는 획기적이었지만, 보존료를 넣지 않았기에 전국적으로 전개하기는 불안해 판매지역을 오사카 지방에 한정했다. 그러나, 곧 보존성과 내구성을 향상한 알루미늄 파우치 개발에 성공하고 유통 기한을 2년으로 늘리면서 발매 다음 해부터는 전국적으로 판매가 가능하게 되었다.


개발 기술을 독점하지 않은 영단(英斷)


봉 카레가 발매 5년 만에 1억 개가 팔리는 대히트 상품이 되었지만, 오츠카 식품은 이기술을 독점하지 않았다. 힘들여 개발한 기술이지만 특허로 등록하지 않는다. 많은 회사가 이 기술을 사용하여 레토르트 식품을 만들고, 국민 모두가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그 영단(英斷)이 없었다면, 다채로운 레토르트 식품 문화의 탄생이 지금보다 훨씬 늦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진 등의 자연재해에 대비하여 늘 비상식을 준비해 두기도 하거니와 코로나 19로 집콕이 늘어난 일본의 식품업계에서는 최근 상온(常温)이 화두다. 식품 메이커들이 냉장고에서 보관하지 않고, 상온에서 장기 보존할 수 있는 상품 구색을 늘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니혼햄(日本ハム)의 ‘맛있는 레인지(あじわい レンジ)’이다.

트레이 레토르트 식품 개발


일반적인 레토르트 식품은 고온, 고압에 견딜 수 있는 유연한 무연신 폴리프로필렌 필름(CPP) 등의 플라스틱과 금속박을 다층으로 라미네이트 한 내열성 소재 팩에 음식물을 담는다. 그러나, ‘맛있는 레인지’는 팩이 아닌 트레이에 음식물을 담아, 음식물이 깨어지지 않고 풍미를 해치지 않도록 했다. 트레이에 음식을 담다 보니 팩을 사용할 때 다양한 음식 개발도 가능해졌다.  트레이에는 주름 같은 선을 넣어 강도를 높였고, 투명 뚜껑으로 내용물도 보이게 했다.


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니혼햄은 50억 엔을 들여 '레시(fresh) 신선 가열 제조법'으로 부르는 샤워 방식의 솥을 새로 개발했다. 일반적인 레토르트 식품이 고온의 물이 담긴 솥에 레토르트 팩을 넣어 고압에서 살균한다. 문제는 큰 가마의 위아래 온도가 달라 살균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샤워 방식이다. 트레이에 담기 레토르트 식품을 솥에 넣어 고온의 수증기로 살균함으로써 상하의 온도 차이를 없애고, 살균시간도 줄였다. 지난 8월 발매 후 벌써 1백만 개 이상 팔리고 있다니 대단하다.


일본의 연간 인스턴트식품 생산량은 35톤을 넘는다. 그중 카레가 전체의 약 45%를 차지한다. 파스타 소스(약 4만 톤), 조미료 등의 요리용 소스(약 3만 톤), 죽 등의 밥 류(약 2만 톤)이다. 그 외에도 마파두부, 덮밥류의 소스, 수산물, 식육 가공품 등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고 있다. 국민 1인당 소비량은 2.8kg로 180g들이 팩으로 환산하면 15 봉지에 상당한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도 1.3배 증가한 것으로 가정 소비 외에 호텔, 레스토랑, 음식점, 찻집, 열차식당 등의 외식 산업용이나, 학교, 공장, 병원 등의 집단급식용 등 수요가 늘고 있다.


레토르트 식품 연 8.1% 성장 예상


시장조사 전문회사 글로벌 인포메이션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레토르트 파우치 시장은 2020년 15억 달러로 2021년에서 2026년까지 매년(CAGR) 8.1%의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인스턴트식품의 시장 확대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다. 봉 카레가 탄생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간편함에 맛과 풍미를 더해가는 레토르트 기술은 지금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주)

1. ‘레토르트 식품(retort food)’은 조리·가공된 음식을 밀봉한 후 레토르트(retort)라 불리는 살균 솥에 넣어 고온(105∼120℃)·고압에서 가열, 살균해 공기와 빛을 차단한 밀봉상태에서 장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만든 가공식품을 말한다. 이는 내열성 플라스틱 필름이나 알루미늄 박을 적층 시켜 만든 레토르트 파우치 또는 성형된 용기를 사용한다. 카레, 죽, 스파게티, 미트볼 등 일반 가공식품은 물론 비상식품, 환자식, 도시락용으로도 널리 사용된다.


2. 시장조사 전문회사 글로벌 인포메이션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레토르트 파우치 시장은 2020년 15억 달러로 2021년에서 2026년까지 매년(CAGR) 8.1%의 CAGR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레토르트 파우치 세계 시장: 업계 동향, 시장점유율·규모·성장률·기회 및 예측, 2021년~2026년, IMARC Services Private Limited). 이유는 급속한 도시화, 가처분 소득의 증가, 바쁜 스케줄, 맞벌이와 1인 가정의 증가, 고령화 등을 들고 있다.


3. 카레는 일본의 국민 먹거리다. 일본 카레공업협동조합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일인당 연간 79번, 주 1회 이상 카레를 먹는다고 한다. 일본 카레는 인도 혼합 향신료인 마살라(Masala)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도를 식민 지배했던 영국인들은 인도의 혼합 향신료 마살라를 영국으로 가져갔는데 1800년대 초 영국의 한 회사가 카레 파우더를 상용화했다. 1800년대 중후반 카레 파우더가 일본 땅에 상륙하고, 1900년대에 일본 카레 레시피가 탄생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트레이 이기 때문에 팩에 비해 다양한 음식을 상품화할 수 있다. 내부 선은 강도를 높여주고, 투명 뚜껑은 내부 음식을 보여준다.



니혼햄은 5종류의 트레이 레토르트 상품을 출하했다.
니쿠쟈가(肉じゃが)는 얇게 썬 고기를 야채와 함께 기름에 볶은 후 감자, 물, 간장, 술, 미린, 조미료 등을 넣어 약한 불에 끓이는 일본의 대표적인 가정요리. ‘엄마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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