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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Oct 28. 2022

소소한 일상 - 일기 221027

지하철에서 책 읽기, 겨울맞이, 그림책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새

#. 1

“다음 역은 가야바쵸(茅場町)입니다.” 다음 역에 내려야 한다. 그런데 읽고 있는 부분이 재미있어 일어나기가 싫다. 내리지 말고 이대로 책을 더 읽을까? 종점까지 가면 앉아서 책을 읽으며 되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종점인 나카메구로(中目黒)까지는 11개 역, 30분 정도 걸린다. 지금 6시 40분, 나카메구로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와도 업무에 지장이 없을 시간이다. 혹시 마음이 바뀌면 중간 역에서 되돌아오기로 하고 그대로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었다. 소음이 있지만, 의뢰로 집중이 잘된다. 책 읽기는 조용한 사무실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뇌의 황금시간대, 아침 이른 시간이라 노르아드레날린이 충만한 모양이다.


요코하마 등 수도권 외곽으로 나가는 도쿄 23구의 마지막 역인 나카메구로역은 플랫폼이 지상에 있어서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실 수 있어 좋다. 전에 살았던 고탄다(五反田)와도 한 역 떨어진 가까운 곳이라 자주 놀러 왔던 추억이 있다. 역 주변 메구로 강(目黒川) 강변은 봄이면 사쿠라가 멋들어지게 피고, 예쁜 카페와 음식점들이 많아 주말이면 늘 사람들로 붐빈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사무실로 되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남아있던 50여 페이지를 완독 했다. 코로나 이후 붐비는 지하철을 타는 것이 싫어서 일찍 집을 나서는데, 일찍 나오면 이런 여유를 부릴 수도 있어서 좋다.

나카메구로 역, 메구로 강 주변에는 이쁜 카페가 많다.(인터넷 사진)


#2.

짧은 트렌치코트와 목도리를 꺼냈다. 어제 귀가 길이 바람이 불고, 기온이 12℃로 꽤 추웠는데, 오늘 아침에는 9℃로 더 떨어졌다. 거리에는 외투뿐만 아니라 벌써 장갑까지 끼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인다. 한국에서 보면 흥감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에서는 영상 10℃만 되어도 춥게 느껴진다. 특히 겨울이 되면 나가노현(長野県), 군마현(群馬県) 등 관동지방의 북쪽은 눈이 많이 내리지만, 도쿄는 지형적 특성으로 건조한 바람이 많이 분다. 일본의 주택들은 집 안이 오히려 더 춥게 느껴진다. 이제야 일본의 TV에서도 이중창을 광고한다. 최근 짓는 아파트는 바닥에 난방 시설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온돌에 비할 바 못된다. 天仁네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라 거실 바닥에 가스 난방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지만, 금방 뜨거워졌다가 식어 버려 집안이 한국의 아파트 같은 온기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바닥이 따뜻하지 않으니 대부분 일본의 아파트에서는 방한 대책으로 바닥에 전기 카펫을 깔고, 에어컨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목조 건물인 개인주택은 더 춥다. 그래서, 대부분 고다츠(炬燵、숯불이나 전기 등의 열원(熱源) 위에 틀을 놓고 그 위로 이불을 덮게 된 난방 기구)를 사용한다. 그 외 등유, 전기스토브를 사용하기도 하고, 유단포(湯湯婆, 금속성 용기에 뜨거운 물을 넣어 발목에 놓고 잔다)로 몸을 데우기도 한다. 옛날 시골 주택에서는 이로리居炉裏(마룻바닥을 사각형으로 도려 파고 난방용·취사(炊事)용으로 불을 피우는 장치)를 사용하기도 했다.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샤워뿐만이 아니라 뜨거운 탕에서 몸을 데우는 것도 전통적인 방한 대책 중의 하나다.

전기 카펫 위의 고다츠. 녹색 덮개 안에는 잔기 히트가 있어 다리를 넣으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인터넷 사진)

#3.

니혼바시(日本橋) 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림책을 한 권 읽게 되었다. 도네 사토에(刀根 里衣)가 쓴 'なんにもできなかったとり(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새)'. 일본에서 보다 이태리에서 먼저 출간되었다고 한다. 한국어로도 출간되었다고 해서 호기심 반으로  읽게 되었다. 그런데, 반쪽은 그림인 49쪽의 책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본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인지, 어떤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뭘 해도 잘 안 되는 어설픈 새 한 마리. 그 새는 당시 무력감에 빠져 있던 작가 자신이었습니다. 작품을 손에 쥔 이탈리아 편집자가 페이지를 닫는 순간 출간을 결정했다는 감동 작.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결말에 마음이 떨립니다.”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광고 문구를 적어 놓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새가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잔뜩 기대를 갖고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결말에서는 마음이 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혹감과 슬픔이 밀려온다.


줄거리는 이렇다. ‘다른 새들과 달리 열매를 딸 수도 없고, 수영도 못 하고, 노래도 부르지 못하고, 하늘을 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서툰 새는 포기하지 않는다. 사다리로 나무에 올라 보기도 하고, 튜브로 수영을 해 보기도 하고, 그물로 물고기도 잡아보고, 풍선으로 하늘을 날아도 본다. 그러나 모두 실패한다. 그때, 시들어 가는 꽃을 만난다. 새로 태어날 예쁜 아기 꽃이 지낼 곳이 없음을 알고, 봄에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자신의 따뜻한 폼을 빌려 준다. 새는 겨우 내내 고통을 참아내며 꽃을 지켜 주고, 나무가 되었다.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구나. 이건 나도 할 수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새,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했더라도 누구에게나 삶은 가치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실패하기도 하고, 서툴기만 한 우리의 삶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림책 전문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4살 아이에게 추천하는 그림책이라고 한다. 읽고 나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왜 새로 남아 있으면서 어려움을 극복하지는 못했을까? 그림책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은 아닐 텐데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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