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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Feb 25. 2023

나가노의 마리코 짱이 보내온 선물

종로3가역에서 만나 이어온 특별한 인연

반가운 선물이 도착했다. 나가노長野에서 마리코真梨子 짱이 보낸 것이다. 박스가 작지도 않은데 천연 사과주스 1리터짜리 두 병, 사과 잼 두 병, 사과 10개로 꽉 채웠다. 역시 마리코 짱은 손이 크다. 보통 일본에서는 이웃들과 작은 쿠키 하나 정도는 잘 주고받는다. 그런데도 마리코 짱은 지금은 제철이 아니지만 사과 철이 되면 또, 많이 보내 주겠다고 한다. 마리코 짱은 이제 막 30대에 접어드는 새댁인데 마음 씀씀이에서 마치 한국의 누님, 큰 언니 같은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나가노는 아오모리현青森県, 이와테현岩手県과 함께 일본의 사과 명산지 중의 한 곳이다. 비가 적고, 낮과 밤의 온도 차가 클수록 맛있는 사과가 생산된다고 하는데, 나가노가 그런 조건에 잘 맞는 곳이다.  먼저 주스를 한 잔 마셔본다. 역시 맛있다. 그리 달지 않고 깊은 맛이다. 天仁네도 주스는 꽤 좋은 품질의 자연산을 사서 마시고 있지만, 마리코 짱의 따뜻한 정이 더해져서 그런지 아주 맛나다. 놀러 온 히마리에게도 먹였더니 맛있다며 몇 번이나 더 달라고 한다. 잼도 아주 맛나다. 보통 잼은 겔 상태인데, 사과를 슬라이스 상태 그대로 숙성시켰다. 달콤, 상큼한 맛이 식빵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나가노에서는 사과 3형제로 불리는 아키바라, 시나노스위트, 시나노골드를 모두 생산하는데 차게 해서 먹었더니 사과 역시 맛이 다르다.


마리코 짱이 나가노 산 사과, 사과주스, 사과잼을 한 박스 보내왔다.


마리코 짱과의 인연은 2016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토요일, 삼각산에 오르기 위해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플랫폼에 서 있었다. 바로 옆에 아가씨 두 사람이 열차가 들어오기 전 지도를 보며 소곤소곤 확인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본말을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행선지를 확인해 주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자매가 미야자키宮崎에서 관광하러 왔고, 김치 담그기 체험장에 가는 중이라고  한다. 미야자키는 도쿄에서 1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먼 곳이지만 업무상 天仁도 자주 출장을 가던 곳이어서 더 반가웠다. 지하철을 타고 더 얘기를 나누었는데 말이며 행동이 아주 정스러워 라인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내와 함께 4명이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게 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들 같은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두 어 달이 지난 뒤 국제 우편으로 소포가 도착했다. 일본에서 마리코 짱이 보내온 것이었다. 정성스럽게 직접 적은 손편지와 함께 天仁이 좋아하는 증류 소주, 핸드크림, 커피, 일본 달력까지 들어 있었다. 일본과의 인연이 오래되었지만,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으로부터 이렇게 정성스럽고, 통 큰 선물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런 사실은 당시 일기처럼 적고 있었던 카 스토리에 사진과 함께 남겨 두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LG의 광고 카피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록해 두지 않았더라면 그냥 기억 속에만 남았을 추억을 카스토리의 기록으로 6년이 지난 지금 마리코 짱과 함께 추억하고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마리코 짱이 서울에 보내 주었던 선물과 블로그의 기록


오랜만에 마리코 짱의 연락을 받은 며칠 후 선친 기일이라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부산에 다녀오게 되었다. TV에서 한국 소식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는 마리코 짱에게 뭔가 한국산 선물을 전하고 싶었다. 미야자키 동향의 남편 직장 때문에 나가노로 이사하여 지금은 영어 회화 강사로 일하고 있고, 예쁜 딸도 태어나 7개월이 되었다고 한다. 부산 빙문은 오후 2시에 김해공항에 내려, 광안리 본가에 갔다가 다음 날 아침 8시 비행기로 일본에 돌아오는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손님들도 집에 오시니 시간이 없어 어디에 들리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집 부근의 마트에서 한국산 김치, 김, 매운 참치 통조림, 호박엿, 솜사탕, 맛동산 등의 과자를 사서 돌아왔다.


그런데 일본으로 돌아와서 마리코 짱에게 한국 음식을 보내려고 포장을 마치고, 주소를 확인하던 중에 마리코 짱이 미야자키 친정에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 출장 겸 두어 달 친정에 머물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 줄 알았으면 양을 좀 더 많이 사 왔을 텐데, 이미 택배를 보내려고 들고 나온 상황이다. 서울에서 함께 만났던 마리코 짱 동생 유리 짱도 결혼에서 미야자키에 살고 있다는데 함께 챙기지 못해 아쉽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이틀 뒤 마리코 짱에게 택배를 잘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 사진과 함께 가족들과 잘 나눠 먹겠다는 문자도 보내왔다. 그리고, 다음 날 시댁 조카에게 준 솜사탕과 김, 친정어머니께 드린 김치 등과 함께 가족사진도 보내왔다. 역시 마리코 짱은 정이 많은 사람이다. 많지 않은 음식을 가족들과 조금씩 나누는 것을 보니 더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어찌하랴, 또 기회를 만들면 되겠지 하고 위안했다. 이젠 코로나도 한풀 꺾이는 모양이니, 5월에는 온천도 할 겸 나가노에 놀러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내도 天仁도 마리코 짱은 물론 예쁜 아기 아사히朝陽 짱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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