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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을 알게 해 준 인제의 중고자동차

자동차 점검, 수리뿐만 아니라 명의이전 서류까지 준비해 준 고마운 인제

by 리안천인

신년 휴가를 보내러 도쿄에 왔던 히마리 아빠가 한국에서 중고차를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없을지 물어본다. 언제까지 한국에 근무할지 모르니 신차를 사기는 부담스럽고, 중고차를 사고 싶은데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고 한다. 주재원인 天仁도 잘 알고 있다. 귀임하는 주재원이나 유학생들이 타던 자동차나 가구들을 물려받는 것은 흔한 일인데, 코로나 이후 신임 주재원 발령이 적다 보니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히마리는 물론이지만, 두 살짜리 쌍둥이가 서울에 합류하면 당연히 자동차가 필요할 것이다. 쌍둥이들의 육아 비용까지 생각하면 비싼 물가의 서울에서 생활비도 만만치 않을 터, 자동차를 싸게 구할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신차 업계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최근 현대, 기아 등 완성차 메이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허용되면서 시장은 활성화되고 있는 것 같지만, 싸게 구매할 만한 곳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뒤 일본이 3 연휴여서 부산에 다녀오게 되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친구들과 번개 모임도 했다. 고맙게도 친구 '인제仁濟‘가 광안리 본가까지 와서 픽업해 주었다. 인제는 참 정이 많고 듬직한 친구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으면 늘 나눠줄 선물을 챙겨 온다. 핸드폰 예비 배터리, 등산양말 등 그 선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받아서 고맙기도 하지만, 늘 친구들을 챙기고, 베푸는 그 마음이 정말 고맙다. 그래서 친구들은 진짜 손도 두툼한 인제를 '두둑손'이라고 부른다.


인제의 자동차를 타고 해운대로 가고 있는데 히마리가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天仁이 없는 주말, 아내와 놀다가 재미로 전화를 했단다. 인제도 히마리를 잘 알고 있다. 天仁이 초등학교 동기생 밴드에 히마리와의 인연을 소개했고, 간혹 히마리 동향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마리가 귀엽다고 친구들은 히마리를 동기회 마스코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인제는 히마리의 옷이며, 한국 과자를 두어 번 보내주기까지 했던 친구다. 마침 얼마 전에 옷을 선물 받았기에 히마리에게도 인사를 시켰더니 天仁에게 배웠던 한국말 "나도 사랑해"와 윙크로 인제 아저씨를 녹여 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니 잊고 있었던 히마리 아빠의 중고차 부탁이 생각났다. 그래서 말을 꺼냈더니 마침 인제가 마침 업무용으로 사용하던 승용차를 한 대 처분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원하는 후배가 있어 줄까 하고 있다고 해서 히마리 아빠에게 의견을 들어볼 테니 결정을 잠깐 보류해 달라고 부탁 아닌 강요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직접 은행에 가야 하는 일이 있어 집에서 7km 정도 떨어진 연산동으로 외출했다. 은행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인터넷에서 검색한 인제 자동차의 사진과 배기량, 연식 등의 정보를 히마리 아빠에게 전했다. 유아용 시트 3개를 장착하는데 문제는 없는지 히마리 아빠와 함께 알아보기로 했다. 내친김에 은행을 나와 길에 서서 인터넷으로 검색한 중고차 시장에 전화를 걸어 시세를 알아보고 히마리 아빠에게 미리 알려줬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멀리 중고차 매매 시장 간판이 보였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은행 일 때문에 잠깐 들른 부산 연산동, 중고차 매매 시장에서 유아용 시트를 장착할 수 있는지와 시세를 직접 확인할 수도 있었다. 히마리 아빠는 자동차를 사고 싶다고 했고, 인제도 그렇게 해 주겠다고 했다.


아무리 히마리 아빠에게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시세대로 값을 치르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인제는 히마리 가족에게 돈을 받고 팔지는 않겠다고 한다. 오히려 지방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던 것이라 정비를 소홀히 한 것을 걱정했다. 차량 대금으로 안전점검, 필요한 부폼교환, 범퍼 찌그러짐, 내부를 수리하자고 한다. 그래서 자동차를 정비공장에 맡겼다. 일본으로 돌아와 정보를 교환하다 보니 기본적인 수리뿐만 아니라 오디오, 내비게이션, 드라이브 레코드까지 새것으로 달아 버렸다. 히마리 아빠에게는 수리는 하겠지만 중고차이니 필요할 때마다 고쳐서 타라고 이미 말했는데도 수리비용이 매매대금을 초과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히라미 가족이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인제의 마음이 느껴졌다. 수리가 끝나자 그 어진 친구가 허허 웃으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수리해서 좋은 상태로 탔을 텐데 “라는 농담까지 했다.


또 하나 해결할 문제가 있었다. 히마리 아빠는 서울에 살기 때문에 부산에 있는 자동차를 서울로 운반해야 했다. 자동차를 탁송하는 업체에 맡기는 방법도 있지만, 히마리 아빠가 한국인 친구와 함께 KTX를 타고 부산으로 와서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인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침 서울에서 볼 일도 있고, 주말에 동기생 철웅哲雄이가 부산에 올 예정이니 둘이서 운전해서 서울에서 자동차를 전해 주겠다고 한다. 히마리 아빠는 너무 고맙다고, 교통비 등을 모두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인제는 그조차 사양했다. 꼼꼼한 인제는 외국인인 히마리 아빠의 사정을 고려해,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히마리 아빠가 직접 구청에서 자동차를 등록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서류까지 모두 준비해 주었다.


자동차를 전해 주던 날 히마리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산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오신 것만 해도 고맙고 죄송한데,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사용, 조작 방법까지 꼼꼼하게 설명을 들었습니다. 내일 구청에 들고만 가면 될 명의이전 서류도 다 만들어 오셨네요. 처음이라 걱정했었는데 너무 고맙습니다."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해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히마리 아빠조차 감동했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전해 왔다. 외국인에 대한 배려였을 수도 있지만, 두둑손 인제의 인성이 외교관보다도 더 빛나 보였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중고 자동차를 무상으로 주고받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큰 인연이다. 어떻게 자동차를 처분하려던 인제와 함께 있을 때 히마리가 전화를 해서 잊고 있었던 것을 리마인드 시켜줬을까? 은행 일을 보러 갔던 곳에 마침 중고 자동차 매매시장이 있었을까? 인연이 있으면 순리대로 일이 술술 풀려 나가는 모양이다.


후일담이지만, 인제와 함께 서울까지 운전했던 철웅이는 “외국인에게 홍삼 선물을 받기는 난생처음“이라며 웃었다. 히마리로 시작된 시절인연, 친구 인제와 함께 자동차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하마리 가족이 한국에서 예쁜 추억을 많이 만들기 바란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히마리에게 전해 달라는 선물로 배불뚝이가 되어 버린 天仁의 가방과 내용물.
가방 속은 초등 동기생 인제, 윤주의 선물, 天仁이 준비한 무지개 솜사탕 과자 등 히마리 선물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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