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야속도 하지, 벚꽃이 활짝 피었는데 주말까지 3일이나 연이어 비가 내린다. 일요일에는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서 히마리와 도서관에 다녀왔다. 히마리가 서울로 떠나기 전에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히마리도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히마리는 몸까지 기대며 한시도 天仁의 손을 놓지 않고, 꼭 잡는다. 늘 손이 차가워 손으로 데워 주는데 오늘은 온기가 느껴져 좋다. 天仁의 무릎은 히마리의 전용 의자가 된 지 오래인데, 요즘 들어 히마리의 스킨십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바닥에 떨어진 벚꽃의 꽃잎을 밟으며 도착한 도서관의 키즈룸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림책 읽어주기 행사 참가자도 히마리 혼자였다.
“다른 친구들은 오지 않나요?”
혼자인 것이 어색한지 히마리가 그림책 읽어주기 선생님께 물어본다.
“그러네요. 비가 내리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네요. 히마리 짱 혼자지만 선생님과 함께 재미있게 읽어요”
시간이 되자 히마리 한 명을 위해 선생님 두 분이 그림책을 읽어 준다. 마치 키즈룸과 그림책 읽어주기 공연을 전세 낸 것 같다. 일 인 관객인 히마리는 질문도 해 가면서 선생님과 호흡도 잘 맞추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히마리가 요즘 부쩍 더 많이 자란 것을 느낀다.
그림책 읽어 주기가 끝나자 히마리는 책장에서 책을 빼내 읽기도 하고, 소파에 올라갔다가 뛰어내리기도 하면서 혼자서 조용한 도서관을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재미나 보이는 책을 꺼내 와서는 天仁에게 읽어 달라고 하기도 한다. 주말이면 늘 아이들로 붐비는 곳인데, 조용한 것도 나쁘지는 않다. 잠시 후 갓 돌이 지났다는 아이가 오자, 히마리가 유아용 그림책을 코너에 달려가더니 그림책을 꺼내 와서 읽어 준다. 아이는 재미있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가만히 앉아 히마리가 읽어주는 그림책에 집중한다.
“히마리 짱이라고 했니? 아기에게 책 읽어줘서 고마워. 몇 살이니? 대단하다, 벌써 글자도 잘 읽는구나?” 아기 엄마가 우리 애는 언제나 이렇게 클까 부러운 듯이 물어본다.
히마리는 친화력이 정말 뛰어난 아이다. 특히,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늘 뭔가 나누어 주려고 하고, 놀아 주려고 한다. 당장 한국말은 서툴러도 서울의 유치원 친구들과도 잘 지낼 것이다. 그 사이 또 다른 아이가 엄마와 함께 들어왔다. 11시 30분에 집으로 출발하기로 했는데 히마리에게 돌아갈 생각은 점점 없어진다. 귀가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아 히마리 엄마에게는 늦겠다고 미리 문자를 보냈다.
시계의 긴 바늘이 6에 오면 집에 가기로 했는데, 6이 7로, 9로 바뀌더니 결국 예정보다 25분이나 늦게 신발을 신었다.
“히마리 짱, 이제 한국에 가면 오랫동안 오지 못할 테니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 가자”
“누구한테 인사해? “
“ 그림책들과 사서 선생님께. '그림책들아, 도서관아 고마워, 사서 선생님도 고마워요. 더 커서 다시 올게요’라고 인사하면 어떨까? 책이나 키즈룸도 히마리의 따뜻한 마음을 다 느낄 수 있단다.”
“응. 알았어”
히마리가 또렷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인사를 했다. 히마리의 목소리에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 흐뭇하다. 괜히 코끝이 찡해 온다.
귀가 후 오후 6시까지 히마리가 놀다 간 뒤에는 히마리의 텐트와 장난감을 정리했다. 텐트는 이삿짐에 넣기 편하도록 분해하여 포장했다. 텐트는 동생들 케어 때문에 엄마와 많은 시간 함께 하지 못해 섭섭해하는 히마리를 위해 준비했던 것이다. 처음 텐트를 조립하고, ‘히마리의 방’이라는 문패를 달아 주었을 때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던 히마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히마리네에 주려고도 했는데 히마리 엄마가 집이 좁다고 天仁네에 두기를 원해 계속 天仁네에 두게 되었다.
문패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히마리 만의 공간’이라는 의미로 달아주었다. 그 텐트 안에서 그림책도 읽어주고, 함께 읽기도 하고, 게임을 하고, 히마리가 좋아하는 숨바꼭질도 했다. 동생들과 함께 놀러 오면 동생들과는 차원이 다른 언니라는 점을 부각해 주기 위해서 동생들 모르게 몰래 텐트 안에서 간식을 먹게 했던 히마리와의 비밀스러운 추억도 많다. 1년 반 동안 텐트에서도 즐겁게 잘 놀았다.
조금씩 늘어난 히마리의 장난감과 옷가지도 모두 챙겼다. 젠가, 레고 블록, 그림 퍼즐, 영어 알파벳 맞춰 넣기 키트, 냉장고에 붙이는 영어 알파벳과 숫자 자석, 기린 숫자 맞추기 퍼즐 등 부피가 크지 않은 것은 모두 가져가도록 박스에 담았다. 갑자기 외출할 때를 대비해 天仁네에 준비 두었던 겨울용 베스트, 후드 파카, 칫솔과 치약 등도 모두 챙겨 넣었다.
짐을 다 챙기고 나니 공허함이 몰려온다. 이젠 진짜 떠나는구나.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어둠이 내린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벌써 공원 곳곳에서 함께 손잡고 산책하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히마리의 모습이 보인다. 회자정리會者定離지만 거자필반去者必返이다.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다시 만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다음 주에 히마리가 떠나고 나면 주말에는 그동안 다니지 못했던 산행이라도 한 번 다녀와야겠다. 지금쯤 다카오산高尾山에는 벚꽃이랑 제비꽃이랑 석곡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