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체감을 인식하는 44개월 히마리에게 필요한 아빠
메모 노트를 정리하다 보니 '22.6.30에 적었던 일기가 눈에 띈다.
히마리의 성정체감에 대해 '아빠가 필요하다, 빨리 서울의 아빠와 합치는 것이 좋겠다' 적고 있다.
그런데 D-5, 막상 떠나보내려니 아쉽고, 또 아쉽다.
히마리와 함께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히마리가 하늘을 보며 "비행기다!"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울먹이듯 시무룩해졌다. 天仁네 동네에서는 하네다羽田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를 자주 볼 수 있다. 비행기 타고 얼마 전 휴가를 다녀 가신 아빠 생각이 난 것일까?
"히라미 짱, 왜? 비행기 타고 싶어? 비행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면 귀가 아파. 히마리 짱은 아직 3살이라 비행기를 타면 힘들어. 4살이나 5살이 되면 함께 비행기 타고 아빠 계신 서울에도 놀러 가자, 자 약속!"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더니 생글생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도서관에서는 즐겁게 그림책도 읽고, 닌자 걸음까지 걸으며 신나게 놀았다.
귀가 길, 아파트 입구까지 왔는데 4살, 7살쯤 되어 보이는 자매와 아빠가 즐겁게 얘기하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히마리가 대뜸 물었다.
"파파오지상은 친친(유아어, 남자 성기) 있어?"
돌발적인 질문에 깜짝 놀랐다. 순간적으로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응, 있지, 왜?”라고 답했는데 시무룩하니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공원 화장실 앞을 지나다가 "히마리는 친친이 없어 빨간색 화장실에 간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히마리도 이제 만 3살 8개월이니, 성정체감(Gender Identity), 남녀의 차이를 조금씩 인식해 가고 있는 모양이다. 히마리는 아빠와 함께 있는 또래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남자인 아빠의 존재를 떠 올렸던 것은 아닐까?
집에 돌아와서는 수박을 먹으며 씨 뱉기 게임도 하고 깔깔거리고 놀았는데, '파파 오지상'이 아니라, 아예 '파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정체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지만, 아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아내가 장난으로 "오지상과 오바상 중 누가 더 좋아?"라고 물으면 히마리는 0.1초도 되지 않아 "파파오지상"을 가리킨다. 요즘은 조금 더 컸는지 작전을 바꾸어 "두 사람 다 좋아"라고 답한다. 그렇지만, 속내는 늘 맛난 먹을 것을 챙겨주고 웃겨주는 오바상보다는 오히려 오지상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파파오지상이 남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히마리를 도와주는 엄마, 할머니, 도우미, 보육원 선생님뿐만 아니라 쌍둥이 동생들 조차 히마리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여자다.
안 되는 것은 무조건 오지상에게 들고 온다. 걷다가 지치고 힘들면 아내보다는 天仁에게 안아달라고 손을 뻗는다. 아빠가 8개월 만에 처음 귀국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히마리는 "또 다른 아빠가 온다"라고 말해 함께 있던 엄마도 의아해하며 웃었던 적도 있다. 히마리의 머릿속에는 파오지상은 남자이고, 강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는 것 같다.
"걱정하지 마, 늘 함께 있어주고, 지켜줄게"
다소 불안해 보이는 아이를 위해 자주 해 주던 말이다. 실수가 있더라도 늘 "다이죠~부(괜찮아, 大丈夫)", 안된다고 짜증을 내도 “한 번해서 안되면, 두 번하면 되고, 그래도 안되면 또 하면 돼"라고 격려해 주기도 한다. ‘파파오지상은 히마리를 지켜주는 수호신, 지치면 쉬어갈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대하면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것이 아이다.
본인들이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겠지만, 히마리 아빠, 엄마에게도 늘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학부 때 관심이 있어 아동심리학을 한 학기 수강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히마리가 성정체감을 인식하는 나이도 되었겠지만, 진짜 아빠가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다. 세 살, 네 살, 아이들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다. 언어능력이 발달하면서 사고능력이 확장되어 다양한 상상력과 학습능력이 길러진다. 히마리와 헤어지면 아쉽겠지만, 히마리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