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본법인에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점심때가 되어 점심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일본인 직원 한 명이 소리 소문도 없이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순간,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불쾌하기까지 했다. 뭐야, 먼저 먹는다든지, 점심은 어떻게 하느냐는 인사도 없이 혼자서 밥을 먹는다고? 아무리 점심시간이 개인의 휴식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사무실에 달랑 4명밖에 없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일본 명문대학 출신의 엘리트이고 인성도 괜찮아 보이는 동료인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나중에 보니 다른 일본인 직원도, 다른 회사도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일본에 부임하기 전 일본의 사회, 문화에 대해 나름 책도 읽고, 어느 정도 일본에 대해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문화적 충격이 컸다. 콩 한쪽도 나눠 먹고, 점심시간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부서 사람을 만나도 “식사는 하셨는지” 안부를 묻는 우리네 사고방식으로는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보였다.
이후 일본의 식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비즈니스 엘리트가 알아 두어야 할 교양으로서의 일본음식 ビジネスエリート が知っておきたい 教養としての日本食’이라는 책도 읽게 되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이 책을 감수한 식문화사 연구가 나가야마 히사오永山久夫 씨는 ‘잘 먹겠습니다 いただきます’는 일본의 문화로 그에 해당하는 외국어는 없다고 설파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인가,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귀에 박히도록 듣고 사용하던 말이다. 선친은 늘 ”이 음식을 맛나게 먹을 수 있도록 농사를 지어 주신 분, 요리를 하신 어머니 감사한 마을을 잊지 말고, 밥 한 톨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고 가르치셨다. 그래서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면 늘 ”잘 먹겠습니다 “라고 인사한 뒤 식사를 시작했고, 다 먹은 후에는 ”잘 먹었습니다 “라는 감사도 잊지 않았다. 군에서도 침이 튀도록 "감사히 먹겠습니다."를 외쳐댔다. 한국에 간 유치원생 히마리가 가장 먼저 익힌 한국말도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본은 ‘마음心’과 ‘와和’로 대표되는 나라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한다는 매우 좋은 사상이다.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이란 자기만의 마음이 아니라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마음心이 들어간 말도 많다. 마음을 합해서心を合わせ, 배려心配り, 마음씨心様,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心意気, 마음껏心一杯, 마음가짐心得, 기억心覚え 등 40여 개나 된다. 문제는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는 것이다. 폐쇄적인 섬나라 일본 사람들은 우리의 ‘정’에 해당하는 ‘마음’도 오직 일본에만 있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와和도 일본을 대표하는 독특한 말로, ‘대립하지 않으며, 집단으로 한 덩어리가 된 상태, 사이좋게 서로 협력하려는 자세’라고 풀이한다. 우리를 대표하는 단어가 한식韓食, 한복韓服 등의 ‘韓’ 자인 것처럼 일본에서는 와和 자가 많이 사용된다. 일본 음식은 와쇼쿠和食, 일본 전통과자는 와가시和菓子, 일본식 방은 외시츠和室, 한우처럼 일본 소고기는 와규和牛라고 한다. 일본日本이란 국호를 사용하기 전에는 야마토大和라고 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와和는 어떤 일에 참여함에 있어서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마음’ 가짐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식사를 권하지 않는 것과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이 또한 일본에만 있는 정신이라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협동, 조화의 정신은 우리에게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 공동으로 농사일을 하기 위하여 두레를 조직하였다. 농촌에서는 모내기를 시작하고, 김매기를 할 때부터 두레를 나타내는 기를 세우고, 농악에 맞추어 가며 흥겹게 일했다. 이웃끼리 일손을 빌려 서로 일을 돕는 품앗이도 있다. 이웃이 우리 집의 일을 도와주면, 다음에 이웃의 일을 도와주는 방법이었다.
식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면 내수 영업 시절이 떠 오른다. 직원들이 사무실에 있으면 사업본부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영업 담당자들이 어떻게 시장을 비워 놓고 사무실에서 페이퍼 워킹만 하고 있느냐"며 빨리 현장으로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직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가기라도 가면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고객들과 함께 하지 않고 무슨 일이냐“고 난리가 났다. 개인시간인 점심시간을 영업에 활용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비즈니스맨에게 있어서 점심은 단지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장, 비즈니스의 연장선이었다. 코로나로 더 위축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일본에서는 비즈니스로 점심을 함께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것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식욕을 채우고, 만족감을 얻는 것 이외에도 심신의 안정,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의의도 있다.
‘마음心’과 ‘와和’를 강조하는 나라에서 왜 유독 식사에 대한 안부 인사는 건네지 않게 되었을까? 가문이나 조직문화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식사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나라 문화이니 눈에 그슬리더라도 그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는 없지만, 아무튼 매우 씁쓸한 일이다. 일본은 어제부로 코로나를 감염법 상 독감 수준인 제5류로 분류를 변경하며 사실상 3년 만에 종식을 선언했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일박으로 잠깐씩 부산 본가에는 다녀오기 했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출장을 다녀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한국, 서울에 한 번 다녀오고 싶다.
일본에 살다 보면, 밥 한 끼에 서로에 대한 안부와 걱정과 감사 인사를 건네던 우리의 소중한 마음들이 늘 그립다.
“작가님, 점심은 드셨나요?”
“아가야,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냐?”
“친구야,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이 얼나마 정겨운 말인가.
P.S 그런데, 회식이나 식사 접대 자리에 가면 호스트가 많이 드시라고 권하기는 한다.
・많이 드십시오 どんどん召し上がってください。
・식기 전에 드십시오. どうぞ、冷めないうちに召し上がり下さい。
・(철판요리 등) 뜨거울 때 드십시오. お熱いうちに召し上がり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