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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May 18. 2023

추가 주문할 때마다 하이볼 잔이 커지는 주점 호마레

못키리란? 일본 식당의 덤 문화, 음식 인심

오랜만에 일본 친구와 주점에서 하이볼을 마셨다. 새콤달콤한 레몬 맛의 하이볼은 편한 친구와 떠들면서 마시기에 아주 좋은 술이다. 고소한 닭꼬치 야키토리焼き鳥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500㎖ 한 잔을 마시고 추가로 주문했더니 맥주잔 죠키 jug가 750㎖ 메가 사이즈로 커져서 나왔다. 또 한잔을 주문하면 잔은 기가 1천㎖의 기가 사이즈로 커지고, 그다음부터는 계속 1천㎖ 기가 사이즈로 내준다. 물론 잔의 크기에 관계없이 가격은 540(한화 약 5천 원) 엔으로 같다. 도쿄 핫쵸보리八丁堀에 있는 규슈요리 전문 선술집九州酒場 호마레 ほまれ의 ‘바이바이 하이볼倍々ハイボール’ 서비스 이야기다. 도쿄에서 1.100km 떨어진 규슈요리를 맛볼 수 있어서 좋지만 술도 덤으로 주는 것 같아 지갑이 얇은 직장인들로 늘 붐빈다.

잔이 넘치게 따르는 못키리

덤으로 더 주는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일본술 오사케를 마실 때의 못키리モッキリ 다. 주점에서 일본술 오사케를 잔술로 주문하면 잔 아래에 접시나 쌀되 같은 마스나 접시를 놓고 잔이 넘치도록 부어준다. 이를 일본말로는 못키리 또는 모리키리盛り切り, 모리코보시盛りこぼし라고 한다. 지금은 주로 편백나무로 만들지만 옛날에는 삼나무로 만든 마스로 일본술 오사케를 마셨다. 그런데, 용량이 180㎖인 이치고一合 마스에 술을 가득 따라서 들면 쏟아지기 때문에 당연히 가득 채우기 어렵다. 그래서 손님에게 손해가 되지 않도록 생겨 난 것이 넘치도록 따르는 못키리, 덤의 문화다. 또, 일본 전국의 양조장이 1,400여 개, 생산되는 오사케가 1만 종류가 넘자, 자신들이 술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술을 맛보게 하고, 어필하는 마음에서 넘치도록 술을 따르는 못키리 문화가 정착되었고, 일본인들의 인심이 되었다.


마스에 오사케를 담아 내주는 가게도 있다. 이는 마스자케升酒라고 한다. 편백나무 마스는 향도 좋아 天仁도 마스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마스로 술을 마실 때는 네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잡고, 불편하지만 모서리가 아닌 평평한 곳에서 마시는 것이 매너다. 모서리에는 소금을 올려놓고 술을 마신 뒤 소금을 핥아먹기도 한다. 재미로 하는 것 같지만, 오사케에 단맛, 감칠맛, 쓴맛, 신맛은 풍부하지만 유일하게 부족한 짠맛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음식 인정 후한 도쿄의 시타마치


된장국 하나를 리필해도 추가 요금을 받는 야속한 일본이지만 도쿄 시내 서민들의 동네 시타마치下町에는 음식 인심이 좋은 식당들도 더러는 있다. 도쿄 시내 고뎀마초小伝馬町, 바코로쵸馬喰町, 닛포리日暮里 등 섬유도매상들이 모여 있던 동네가 그런 곳이다. 2천 년대에 들어오면서 대형쇼핑몰, 인터넷으로 섬유제품 유통채널이 바뀌면서 섬유도매상은 쇠퇴하며 사라지고 이제 대부분 사무실가로 변했다. 그렇지만 인심 좋은 식당들은 아직도 몇몇 남아있다. 天仁네 사무실과 그리 멀지 않아 종종 들리는 스시토미寿司富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최근 100엔이 올라 값이 950엔이 되었지만 런치 스시덮밥ちらし寿司은 손님이 원하면 같은 가격에 양을 거의 배로 준다. 점심시간이 되면 직장인들이 몰려 늘 줄을 서야 한다.


쵸쥬안長寿庵도 인심 좋은 소바집이다. 국물 요리가 많지 않은 일본에서 간혹 해장을 위해 찾는다. 따뜻한 소바를 주문하면 따로 부탁을 하지 않아도 그릇이 넘치도록 소바와 국물은 담아 준다. 하시야 はしや돈카츠 가게는 550엔 받는 치킨카츠를 시켜도 밥을 원하는 만큼 리필해 준다. 일흔은 넘었을 것 같은 주인장께 여쭤 봤더니 “젊었을 때 많이 먹지 못했던 아쉬움이 가슴에 남아 손님들이 맛있게 많이 먹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일본도 전후 한국전쟁 덕에 급성장하여 지금은 물자가 넘쳐 나지만 70대 정도의 전쟁 후 세대가 어렸을 때는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는 것은 선행, 공덕을 쌓는 것이다.


관련글 : 사와, 츄하이, 그리고 하이볼 https://brunch.co.kr/@thesklee/45




* 규슈요리 전문 선술집九州酒場 호마레 ほまれ는 도쿄 지하철 메트로 히비야선日比谷線 핫쵸보리역八丁堀駅 A5번 출구 도보 1분 거리에 있다. 도쿄에서 규슈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곱창전골을 닮은 규슈의 명물 모츠나베 もつ鍋, 흑돼지 철판구이 만두, 신선한 회가 맛나다. 예산 인당 5천엔(한화 약 5만 원).

 

핫쵸보리역은 도쿄디즈니랜드에서 도쿄 시내로 들어올 때 게이요선京葉線에서 도쿄 지하철로 갈아타는 환승역이라 요즘은 우리나라에서 오신 관광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산토리 가쿠 하이볼'은 산토리사가 2009년, 넘쳐나는 위스키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출시했다가 히트시킨 상품. 품명의 '가쿠角'는 위스키 병이 사각형이라 붙여졌다.
못키리를 마실 때는 유리잔에 입을 대고 넘치지 않도록 조금 마신 뒤 잔을 들어 마신다. 그 후 접시, 마스에 담긴 술을 잔에 따라 마신다.  
스시토미寿司富도의 스시덮밥ちらし寿司 런치. 많이 달라고 하면 같은 가격으로 그릇에 넘치도록 담아준다.


2014년부터 산토리사의 위스키 가쿠角 광고 모델을 맡고 있는 '이가와 하루카井川遥' 씨는 인기 있는 일본의 배우다. 한국인 3세로, 한국 이름은 조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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