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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May 26. 2023

일본에서는 버스 정차 전에 미리 일어서면 반칙입니다.

자동차보다 사람이 먼저인 일본의 자동차 운전 문화

마트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자동차가 인도로 걸어가는 天仁을 발견하고 멈추어 섰다. 자동차까지 거리가 꽤 있어 보여서 운전자에게 먼저 가시라는 표시를 했는데도 자동차는 미동도 않고 기다린다. 천천히 걸어가면 운전자에게 피해를 줄 것만 같아, 괜히 天仁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럴 때는 자동차가 먼저 가줬으면 좋겠는데, 일본의 운전자들은 언제나 보행자가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일본의 시내버스에서는 버스가 정거장에 정차하기 전에 일어서면 안 된다. 곧바로 “위험하니 정차할 때까지 자리에 앉으시라”는 운전기사의 방송이 흘러나온다. 버스가 빨리 달리지도 않고, 손잡이를 잡고 있어서 안전한데도 버스가 움직일 때는 일어서면 안 된다. 붐벼서 서 있는 승객이 있을 때는 "손잡이를 꼭 잡고 있으시라"는 안내 방송이 자주 나온다. 신호 정지 또는 정차했다가 출발할 때, 우회전이나 좌회전할 때도 어김없이 “손잡이를 잘 잡으라”는 방송으로 미리 알려준다.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갈 때, 다른 버스가 정류장에 먼저 정차하고 있으면 뒤에 온 버스는 앞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뒤에 멈추어 서서 기다린다. 버스는 정해진 장소에 정차한 뒤에야 문을 열어 손님을 내리고 타게 한다. 버스의 정차 위치가 앞뒤로 달라져 승객들이 앞뒤로 우우 달려가는 일은 절대 없다. 시내버스뿐만 아니라 고속버스, 공항에 가는 리무진버스도 상황은 똑같다.


전철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차가 역에 완전히 멈추어서야 내릴 승객들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선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미리 문 앞으로 이동해 서 있어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너무 느긋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승객이 적은 낮시간에는 타는 승객과 부딪힐 정도로 늦게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는 문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전철이 정차하면 열차 밖으로 내린다.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 바다를 가르듯 내릴 사람들의 통로를 만들어 주고, 내릴 사람이 모두 내린 다음 다시 열차에 오른다. 붐빌 때는 백팩을 가슴 앞으로 메어서 뒷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택시는 생각보다 목적지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과속도 하지 않을뿐더러 지나가도 될 것 같은 예비 신호에도 안전하게 멈추어 선다. 택시이든 승용차이든 교차로에서 정지선을 지나쳐 정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자동차는 정지선  1m 전쯤에 멈추어 선다. 차가 밀려도 교차로에서 꼬리물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이라도 무조건 일시 정지한다.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보행자가 안전하게 건널목을 건너기를 기다린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 보다 ‘시간이 매우 지체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보행자의 입장이 ㄷ히면 매우 ‘안전’하다. 일본인들은 운전자도 보행자도 법규를 잘 지킨다.


처음 일본에 부임했을 때 운전 방향이 반대인 일본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도로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꽤 운전을 하다가 왔는데도, 꽤 많은 지적을 받았고, 중요한 것도 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왜 백밀러를 눈으로만 보고 고개는 돌리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의 운전학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못했던 신선한 가르침이었다. 백밀러를 볼 때 고개를 잠깐 조금만 돌리면 사각지역이 확연히 줄어든다. 그 외에는 부끄럽지만 당연한 법규인데도 天仁이 간과하여 지키지 않은 것들이었다. ‘규정속도를 준수하라,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이라도 무조건 일시정지를 하라, 차선을 자주 변경하지 마라’. 天仁도 곧바로 일본의 운전 습관에 적응하며 기본적인 교통법규도 무조건 지키게 되었다.


일본 사람들의 운전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경우에도 ‘보행자가 우선’이다. 한국에 자주 여행도 가고,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 지인들은 한국의 자동차 문화를 “사람보다는 자동차가 먼저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天仁 생각도 그렇다. 조금 확대하면 일본의 운전습관은 '느긋느긋'하고 우리는 '빨리빨리'다. 어떻게 일본 사람들은 이렇듯 교통법규를 잘 지키게 되었을까?


1950년대 후반 일본에는 ‘교통전쟁’이라는 말이 있었다. 한 해 자동차 사고 사망자 수가 청일전쟁에서 사망한 일본인 사망자 수 1만 7천 명에 육박하자 전쟁상태라고 비유하여 생긴 말이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3E 대책'을 추진하며 그야말로 교통사고와 전쟁을 치렀다. 3E란 '교육 Education, 법규 Enforcement, 기술 Engineenring‘을 뜻한다. 특히,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안전교육을 더 강화하고, 신호등을 정비, 보강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하며 1975년을 피크로 자동차사고 사망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리스펙트 38'이라는 운동도 한다. 이는 도로교통법 제38조의 '보행자 우선' 규정을 많이 알리고, 지키기 위한 프로젝트다. 횡단보도 50m 전 도로 바닥에 그려져 있는 다이아몬드◇ 표시가 나오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20m 전에 설치된 두 번째  다이아몬드◇ 에서는 감속하라는 등의 8가지 행동지침도 전파하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 운전 관련법규는 매우 엄격하고, 벌금도 많다. 벌점 누적제도도 있어서 벌점이 6점을 넘으면 3개월간 운전면허가 정지된다. 일시정지, 신호무시는 범칙금 기본 7천엔(한화 약 7만 원)에 벌점 2점을 받는다. 일시정지를 3번 위반하면 운전면허가 3개월간 정지된다. 일반 승용차가 규정속도를 넘는 과속을 하면 범칙금이 기본 9천엔(한화 약 9만 원)이고, 30km를 초과하면 범칙금 10만 엔(한화 약 1백만 원) 또는 6개월 이하 징역형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해도 범칙금 1만 8천 엔에 벌점 3점, 두 번 적발되면 면허가 3개월 정지된다. 음주 운전 시에는 3년 간 면허가 취소되고, 음주 사망사고는 7년, 뺑소니는 10년으로 기간이 늘어난다.


오래전에 들었던 우스개가 생각난다. ‘신호대기를 하고 있던 일반 승용차, 택시, 경찰차 중 신호가 바뀌면 어떤 차가 가장 먼저 출발할까?’라는 질문의 답은 ‘동시에 튀어 나간다’였다. 그 나라의 자동차 운전문화는 교통정책, 다른 교통기관의 발달여부, 도로 여건, 교통 혼잡도, 제반법규, 국민성, 자동차 대수의 증가속도, 교육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형성될 것이다. OECD 주요 국가 중 최저 수준이라던 우리나라의 교통사고율도 최근 운전습관과 함께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듣고 있다. 일본인들의 운전습관이 좋은 것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강력한 법규와 단속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자동차보다 사람이 먼저다.


도쿄東京의 시내버스는 우리나라의 마을버스 같은 개념이다. 지방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고속버스, 광역버스는 신주쿠新宿, 도쿄역 등 일부 지역까지만 들어와서 교통 체증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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