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홈 보급으로 디지털 도어록 넘어 스마트 도어록도 증가 전망
“현관문에 열쇠가 꽂혀 있네요. 문을 잠그고 열쇠는 카터 옆 박스에 넣어 두겠습니다.”
한국에서 조카가 놀러 와 긴자(銀座)에서 함께 샤부샤부를 먹고 있다가 510호 히마리 엄마의 문자를 받았다. 외출하면서 현관문에 열쇠만 꽂아 두고 잠그지도 않은 채 그냥 나온 모양이다. 디지털 도어록인 서울 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실수다.
갑자기 작년 여름의 에피소드가 생각난 것은 오늘이 ‘로크데이(Lock day)’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열쇠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로크데이(我が家のカギを見直すロックの日)’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잠그다, 자물쇠라는 뜻의 영어 발음 ‘로크(lock)’가 일본어 숫자 ‘6(로쿠)‘과 9(쿠)‘와 비슷하다 보니 6월 9일을 ‘로크데이’로 정한 모양이다. 로크데이에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관들까지 나서서 방범, 안전에 대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일본인들이 애용하는 열쇠는 고대 이집트 때부터 재산과 귀중품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열쇠는 점차 권력과 지배, 곳간 열쇠로 대변(代辯)되는 가정의 경제권과 부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열쇠가 요즘 일본에서도 영원한 사랑의 심벌이 되었다. 아이치현의 노마자키등대(野間埼灯台), 고베의 비너스 브리지, 쇼난의 에노시마(湘南の江の島) 등지에도 남산 서울타워처럼 연인들이 사랑의 징표로 자물쇠를 걸고 있다. 일본에서 연인끼리 열쇠를 공유한다는 것은 사랑이 한 단계 더 진전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때 열쇠는 사생활을 지키는 상징이며, 사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로 진전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실 세계로 되돌아오면 열쇠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일본인 지인에게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소감을 물었던 적이 있다. 한국드라마에서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많다'는 것과 함께, 현관문이 “삐리리“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잠기는 것을 매우 특이하게 느꼈다는 대답이었다. 두툼한 열쇠 뭉치를 들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본인들에게 디지털 도어록은 그만큼 생소한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 및 사무실의 디지털 도어록 보급율이 80%를 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 공동주택의 디지털 도어록 보급률은 30%대에 지나지 않는다. 天仁도 늘 집과 사무실 열쇠를 가지고 다닌다. 天仁네 아파트는 작년에 현관 출입구 보안 시스템을 교체했지만, 열쇠를 센서 부위에 갖다 대면 현관 입구 문이 열리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 고작이다. 입구 시스템을 교체한다기에 내심 한국처럼 지문인식이나 비밀번호 입력 방식으로 바뀌나 했더니 역시 열쇠를 벗어나지 못한다.
기능성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백화점 로프트(Loft)나 도큐핸즈(Tokyu Hands)에서 열쇠를 많이 꽂을 수 있는 콤팩트 키홀더는 여전히 인기 상품이다. 서울에서는 핸드폰이나 자동차 열쇠, 크레디트 카드 한 장이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일본은 다르다. 열쇠와 함께 현금,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 카드를 넣은 배불뚝이 지갑이 없으면 외출이 어렵다. 쿠팡재팬이 일본진출 2년 만에 철수한 것도 퀵커머스 시스템 구축에 따른 수익성 악화뿐만 아니라 디지털 전환이 쉽지 않은 일본의 사회 구조가 한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인구 대비 고령자가 가장 많은 나라 일본이다 보니 온라인으로 주문하기보다는 현금으로 편의점에서 직접 구매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아날로그 사회다.
6년 전 종주국인 우리나라 디지털 도어록 제품의 일본 도입을 검토하다가 비즈니스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던 적이 있다. 일본인들의 디지털 도어록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디지털 도어록을 싫어하는 이유는 지극히 아날로그적 사고 때문이었다. 지진 등 재해 발생 시 오작동을 일으켜 문을 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비밀번호가 누출되면 어떡하지? 배터리 수명이 다해 문을 열 수 없으면 어떻게 할까? 설치공사도 복잡하군! 등의 불필요해 보이는 기우(杞憂)를 잔뜩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업들도 디지털 도어록 채용을 주저했다. 열쇠도 잃어버릴 수가 있을 텐데, 일본인들은 몸에 열쇠를 지니고, 돌려서 잠그고 열어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열쇠는 폐쇄적인 섬나라 일본을 더욱 폐쇄적인 개인주의 사회로 만들었다. 옛날에는 서로의 사는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일본인 특유의 감정을 공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생활양식이 서구화되면서 어릴 때부터 개인의 방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독립하여 문을 걸어 잠그게 되면서 가족 간의 의사소통도 쉽지 않은 개인주의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웃과도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느 나라 군대도 병사에게는 개인의 방을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병사 개개인이 개인 방을 갖고 자물쇠를 잠그고 자기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되면 개인주의가 강해져, 군대처럼 많은 인원을 통제하는 조직에는 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일본에서도 열쇠 문화가 조금은 바뀔 모양이다. 급격한 고령화로 노동인구가 감소하면서 생산성과 삶의 질 향상은 일본의 큰 과제였다. 그런데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감염대책과 일상생활, 경제활동의 양립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5G의 힘으로 ICT·IoT와 연동해 ‘TV 리모컨처럼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는 스마트 홈*‘ 보급을 서두르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도어록 측면에서는 재택근무로 시장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스마트 홈에 편승하여 스마트 도어록 시장은 커질 전망이다.
아직 스마트 홈까지는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앱과 연동되는 스마트 도어록 제품도 늘어나고 있다. 도입이 늦다 보니 디지털 도어록을 뛰어넘고 보다 진화된 스마트 도어록으로 바로 점프했다. 광고를 보면 외부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집의 도어록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설명하지만, 역시 안전하다는 점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배터리가 없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도 비밀번호나 플라스틱 카드 등 다른 방법으로 문을 열 수 있음을 강조하며 아날로그 사고방식에 젖은 고객들을 안심시킨다. 지문인식 기능도 있는 도어록은 지문이 문드러져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에 지문을 복수로 등록해 둘 것도 팁으로 알려준다.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스마트 홈과 함께 드디어 일본에서도 열쇠가 필요 없는 생활이 가능해질 것 같다. 일본 스마트 도어록 시장의 성장이 디지털 도어록 종주국인 우리 기업들의 일본 진출에도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스마트홈이란 ‘IoT나 AI 등의 기술을 구사하여 다양한 가전, 설비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편리하고 쾌적하며 안심·안전한 생활을 실현하게 하는 주택‘으로 정의한다. 업계에서는 적외선 리모컨 설치로 집 외부에서도 가전제품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장점을 부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