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고산(七五三)은 우리나라의 돌 같은 행사
10월에 7살이 되는 히마리가 쌍둥이 동생들과 시치고산(七五三) 기념사진을 찍었다. 시치고산은 마치 우리나라의 돌잔치 같은 일본의 전통적인 행사다. 일본말 '시치'는 7, '고'는 5, '산'은 3을 의미하니 ‘시치고산’은 직역하면 '七五三(753)'이다. 어린 아이의 사망률이 높았던 옛날 일본에서는 7살까지는 '신의 아이(神の子)'라고 하였고, 죽더라도 다시 환생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여자 아이 7살과 3살, 남자아이 3살과 5살이 되는 해의 11월 15일에 신사나 절에서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감사하고 축하한다.
주재원이셨던 아빠를 따라 2년 동안 서울에서 한국 유치원에 다녔던 히마리는 아빠의 귀임 발령으로 일본으로 돌아와 올해 소학교 일 학년이 되었다. 입학 때는 꽤 드라마틱한 일이 있었다. 히마리가 다닐 소학교의 입학 예정자는 본래 35 명이었다. 일본 문부성에는 한 반의 학생 수가 35 명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 '한 명만 더 있었다면 18 명씩 2개 반이 될 텐데. 그러면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모두 다 좋아지게 되는데' 하면서 모두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입학 마감 하루 전날 한 명이 이사를 오면서 히마리는 1학년 2반이 되었다. 한 반에 18 명이면 선생님의 부담도 조금 줄어들 것이고, 아이들을 조금 더 봐주실 수 있으니 정말 잘된 일이다. 히마리는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여름 방학을 보냈다. 지난주에는 대절 관광버스를 타고 우에노 동물원으로 처음으로 가을 소풍도 다녀왔다. 히마리는 그런 학교 생활이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히마리가 소풍을 다녀오던 날, 天仁네 아파트에 인접해 있는 어린이집 앞에서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러 온 히마리를 우연히 만났다. 너무 반가워 아이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고, 과자를 사 주려고 히마리만 데리고 주변의 마트에 잠깐 들렀다. 동생들과 함께 먹도록 좋아하는 비스킷 등 과자 10여 개를 히마리가 직접 골랐는데, 과자 포장지에 인쇄된 바코드를 셀프 계산기에 갖다 대며 계산도 곧잘 한다.
마트를 나오며 “아리가토 고마이마스”라고 인사를 해서 깜짝 놀랐다. 이제 의젓한 소학교 학생이니 감사의 인사를 할 줄도 알아야겠지만, "아리가토”도 아니고 “고자이미스“까지 붙여 정중체로 말하니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유모차에 태워 도서관이랑 공원으로 놀러 다니던 3살 때, 당연한 것처럼 ”저것 사줘, 이것 사줘 “ 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히마리는 욕심이 없어서 과자를 사줘도 늘 하나만 집고, 음식을 먹을 때면 늘 함께 먹자며 권하는 착한 아이다. 욕심이 없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는 것은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닐 텐데 타고난 천성인 것 같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히마리는 만나면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쉴새가 없다. 가사에 4살 쌍둥이 동생까지 아이 3 명을 케어하면서 회사일을 병행하는 바쁜 엄마가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많지 않아서 더 그럴 것이다. 그런 점들을 잘 알고 있기에 히마리 이야기에는 늘 정성스럽게 귀 기울여 준다. 히마리는 오후 5시쯤 귀가한다. 학교 수업은 오전에 마치지만 엄마가 재택으로 회사일을 하시니 가쿠도[学童]라고 하는 '방과 후 교실'에서 숙제도 하고 놀다가 귀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더더욱 많지 않을 것이다. 히마리의 이야기는 주제도 다양하다. '둘째 동생이 야채를 많이 먹지 않아서 변비가 생겼고 결국 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가족의 이야기부터 ‘역 앞의 높은 미끄럼틀도 이제 탈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덧셈뿐만 아니라 새로 공부하고 있는 곱셈을 해 보이기도 하고, 요즘 외우고 있는 2단의 구구단을 들려주기도 한다. 본래 영리한 아이였지만, 요즘은 말도 훨씬 더 조리 있게 한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나니 더 그렇다. 역시 '교육의 힘'이 아닌가 한다. 조그마했던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훌쩍 컸다.
히마리는 학교에서 종이책과 더불어 전자책 태블릿으로 수업을 한다. 숙제는 주로 전자책으로 한다. 天仁은 아이들의 전자기기 사용을 반대한다. 그러나 찬반양론 속에 일본 문부성은 올해부터 소학교 1학년도 전자교과서를 사용하기로 결정하였고 시행 중이다. 사람의 뇌의 크기나 구조는 어린 시절에 대부분 형성되지만, 인지적·이성적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은 20대 중후반까지 계속 발달하고, 사회적 책임감이나 자기 통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두엽의 성숙은 25세 전후에 이뤄진다고 한다. 아직 뇌가 성숙되지 않은 6살 아이들에게 전자 교과서를 읽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인지, 메이저 전자기업들의 파워 탓인지 밀어붙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AI가 세상을 바꿔놓고 있고, 온난화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히마리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더 바뀌고, 아이들은 어떻게 적응해 나갈까? 히마리가 공부만 많이 하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