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타마치, 인정 넘치는 서민들의 거리
1603년 에도막부가 열리면서 에도(江戸, 지금의 동경)의 좀 높은 지대인 에도성의 남서쪽과 북쪽(야마노테, 山の手)은 주택가로 개발하고, 낮은 습지(시타마치, 下町) 지역은 오랜 전국시대가 끝나 할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을 동원해 간척사업을 벌이며 일반 서민과 상공업자들을 살게 했다.
그래서, 에도막부 초기에는 야마노테는 무가 가문、상류층이 소유한 저택(武家屋敷, ぶけやしき) 지역, 시타마치는 상인, 장인 등 하류층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18세기 초 에도의 인구가 1백만 명이 넘게 되자, 무가 가문도 시타마치 살게 되기도 하고, 상인, 장인들도 야마노테에 살게 되는 등 지역 구분이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
동경의 경우, 시타마치는 아사쿠사(浅草)・시타야(下谷)・간다(神田)・니혼바시(日本橋)・교바시(京橋)・혼죠(本所)・후카가와(深川) 등을 가리킨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에도코(江戸子)’라고 하는데, 시타마치 에도꼬라고 하면 먼저 ‘인정이 많다’는 생각이 떠 오른다. 시타마치 사람들은 상대적인 열등감보다는 자신들이 수백 년간 이어온 동경의 옛 모습을 잘 지켜오고 있다는 긍지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이 시타마치 기타센쥬(北千住)에서 50년 된 이나리즈시(稲荷ずし, 유부초밥) 집, ‘마츠무라(松むら)’도 만났다. 이나리즈시는 일본 사람들의 소울푸드라 할 만큼 친숙한 음식이다. 에도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달콤, 새콤한 전통의 맛이 주류지만, 요즘은 레시피도 좀 더 개성 있게 만든 것들도 간혹 있다. 그러나, 이 집의 이나리즈시는 당근, 연근, 다시마 맛이 곁들여진, 아주 심플하면서도 정통을 추구하는 맛이다. 조미한 간장으로 박을 졸여 속으로 사용한 간뾰마끼(かんぴょう巻き、박김밥)는 더 맛나다.
그런데, 마츠무라는 맛도 맛이지만 에도코의 인정에 더 끌리게 하는 곳이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 테이블도 하나밖에 없는데, 먹고 가겠다고 했더니, 오싱코(오이절임, 무절임)와 미소시루를 무료로 내주신다. 감동이다. 딸, 사위가 함께 거들어 주신다는데, 불황을 모르고 여기까지 오셨단다. 이렇듯 인정스럽고, 가격이 싸니 단골이 많을 수밖에 없겠다. 50년 역사에 한국 손님은 天仁이 처음이라며 모두 한국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늘 지하철에서나 아파트 단지에서도 잘 웃지 않고, 인정머리 없는 일본 사람들이라고 욕하곤 하는데, 이곳은 훈훈한 정이 듬뿍 느껴지는 곳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두어 달 걷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기분 좋게 사람 사는 곳인 듯한 기타센쥬(北千住) 아라카와(荒川) 강변과 시타마치(下町) 6킬로를 걸었다. 마트, 백화점, 인터넷 등 대형 쇼핑몰에 자리를 내어 주고도 면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전대리점, 잡화점의 애환도 보았고, 그 속에서 함께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가슴에 가득 담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