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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May 20. 2020

장례도 못 치르게 하는 일본, 코로나

인도주의적 배려 없는 일본의 외국인 입국 거부 방침

토요일 밤 9시경

부산에 계신 장인께서 쓰러지셔서 급히 대학병원으로 모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응급실에서는 심근경색으로 응급 스텐트 시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담당의는 관련 수치가 정상의 일천 배가 넘는 상황에서 오셨는데, 살아 계신 것만 해도 매우 다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고령이시라 시술 후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두라고 한다고 한다. 마음 졸이며 연락을 기다렸는데,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급한 고비는 넘기 셨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내일 날이 밝으면 빨리 움직여 볼 생각으로 우선 귀국 비행 편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2시간 거리의 동경-부산 이동에 3일씩이나

최근 코로나 사태로 한국행 비행기는 동경의 나리타(成田) 공항과 오사카 간사이(関西) 공항 두 곳에서만 운항한다는 정보를 들었는데, 부산행은 아예 비행 편이 없다. 인천공항을 둘러 부산으로 갈 수밖에 없겠다. 인천행은 항공사별로 한 편씩은 뜨고, 좌석에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탑승 안내문에는 한국에 입국하면 14일간 격리가 된다는 정보가 나와있다. 코로나 감염자가 아닌 경우, 혹시 부모님이 위독하실 경우에 적용되는 예외는 없을까, 주일본 한국대사관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기타 공익적·인도적 목적(본인 및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또는 형제자매(2촌)의 장례식 참석)’에 따라 2주간의 자가격리 면제서를 발급해 준다는 안내가 있고, 상세 사항을 문의하라는 24시간 문의 가능한 전화번호가 나와있다.  


한국, 부모님 장례식 참석 때는 자가격리 면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를 받은 영사관의 당직자는 재택근무 중인 자가격리 면제 전문 당직 직원이 전화를 주도록 하겠다고 한다. 담당 직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영사님이었음) 天仁의 재류자격 등 기초 정보를 물어보더니 아주 상세하게 발급 절차를 안내해 준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 대책으로 영주권자, 일본인의 배우자가 아니면 체류 비자를 갖고 있더라도 다시 입국할 수 없음을 먼저 확인해 준다. 그리고, 자가격리 면제서를 발급받으면 한국 도착 후 우선적으로 PCR 검사를 받고, 음성일 경우 1박 2일만 격리된다며,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상세히 알려준다. 가족관계 증명서도 필요한데 영사관에서 발급받을 수 있지만, 일요일이라 영사관이 휴무이니 월요일에 출발할 수밖에 없겠다며 안타까워해 주기도 한다. 여권을 새로 만들기 위해 영사관에 들렀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직원들이 참 친절하다고 느꼈지만,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주말의 한 밤중에 해외에 체류 중인 자국민을 이렇게 친절하게 도와주는 나라가 또 있을까? 수백 명이 죽어가는 코로나 사태에도 주말이면 규정대로 쉬기 때문에 PCR 검사 수가 확 떨어진다는 일본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역동성이다.


한국, 중국 등 73개국 출발 외국인은 일본 입국 금지  

일요일 아침 출입국관리청에 전화를 해 보니 역시 휴무라 당직자와도 통화가 되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나리타공항의 출입국관리소에 전화를 했다. 天仁의 체류자격 등을 물어보며 20여 분이나 자체 의논을 하더니 체류 비자를 갖고 있더라도 재입국이 불가하다고 한다. 한국 대사관에서는 직계존비속 장례식에 참석할 경우 자가격리 면제 조치를 취해 주는데, 그런 예외조항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본청의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예외 조항이 없다고 한다. 월요일 아침에 본청에 문의해 보자고 한다. 월요일 아침, 출입국재류관리청 심사과 직원들도 한참을 의논하더니 법무성의 지침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법무성에서도 아베 총리실의 코로나 대책본부의 방침으로 결정된 사항이라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단다. 웃으며 개인적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이 규제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단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온다.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가

결론은 생활 터전이 있는 일본으로 재입국을 포기하고 아버님을 뵈러 갈지, 말지를 판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는 좀 더 탄력적으로 대처해야 할 터인데, 일본 정부가 원망스럽다. 일본 사람들은 정말이지 인정머리가 없다. 인도주의적 예외 규정은 생각할 수도 없는 제국주의적 이미지가 보인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일본인들의 민 낯을 또 보고 있다. 요코하마항의 크루즈선 집단감염 사고도 긴급한 현실을 무시한 채, 오로지 미즈기와 정책(水際政策, *바이러스가 일본 땅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공항, 부두에서 부터 원천을 차단한다는 정책)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인재가 아니었던가. 다행인지, 내일 일본 정부가 경기침체를 고려해 비즈니스 관련 출입국부터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것을 검토 발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버님은 증세가 조금 호전되었다가 다시 쇼크가 온 모양이다. 조금 더 힘을 내셔서 쉽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황까지 잘 견디어 주시기를 기도드릴 뿐이다.

(Revised: 이 글을 포스팅했던 다음 날 아침, 아버님은 영면하셨다. 아내는 주일본영사관의 적극적인 협조와 정부의 인도주의적 지원으로 출상 일에라도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언제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天仁은 너무나 인정 많으시고, 챙겨 주시던 아버님께 지울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르며, 동경에서 마음으로만 편안히 잘 가시라고 정성껏 배웅해 드렸다. 일본 정부는 5월 25일 긴급사태를 전면 해제했지만, 재택근무 유지, 여행 자제를 계속하갰다고 발표하며,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의 출입국 금지 해제에 대해서는 어떤 방침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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