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프로골퍼가 강한 이유
지난 주말의 LPGA US오픈에서는 마지막 날 선두로 시작했던 일본의 시부노 히나코(渋野日向子) 프로가 일본 국민들의 열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승을 놓쳤다. 그는 작년 일본 여자 프로골퍼로는 역사상 처음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일본 선수도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일본의 희망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히구치 히사코(樋口久子) 프로의 LPGA 메이저 대회 우승 이후 43년 만의 최종일 선두로 나서면서 온 일본이 떠들썩했던데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결과다. 시청률 4.5%를 기록하며 밤새워 시부노를 응원했던 일본은 한국의 김아림 프로가 역전 우승하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사실 시부노가 우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올해 초반 국내외 대회에서 컷오프 하며 부진했던 시부노가 US 오픈 직전에 슬럼프에서 벗어났기도 했거니와, 이번 대회에서도 3일간 계속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6월 개최 예정이던 US오픈이 12월로 연기된 것 시부노에게 우승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 아니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였다. 정말 강하지 않으면 메이저 대회에서 나흘 내내 선두를 유지하며 우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시부노는 왜 열렬한 일본 국민들의 응원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1위를 지키지 못했을까?
한국 선수들은 다소 뒤처져 있는 성적이어서 치고 올라 와 주었으면 바람과 함께, 미안한 말이지만 시부노만 우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밤새워 생중계를 보았다. 그가 처음부터 싫었던 것이 아니라 작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 이후 일 년 내내 일본 매스컴들이 워낙 떠들어 대어 오히려 시부노에 거부감이 생긴 것이다. 물론, 42년 만의 메이저 국제대회 우승이 한 걸음 앞에 다가왔으니 호들갑을 떨 만도 하지만, 일본 언론은 스타를 만들어 내고, 해도 해도 너무 우려먹는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부노가 1위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흐리고 추운 날씨라 다른 프로들이 터틀넥에 털모자, 귀마개, 장갑뿐만 아니라 다운재킷까지 준비하며 경기에 임했던데 비해, 시부노는 얇은 맨투맨 셔츠에 비옷 같은 바지, 바람막이가 전부였다. 추위를 타지 않는 체질인가 했는데, 곧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번 홀에서 관계자인 누군가가 장갑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추위를 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추위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허둥대기 일쑤였다. 2번 홀에서 세컨드샷이 나무를 맞추며 보기를 범한 이후 계속 미스샷이 나왔다. 3일째까지 74%로 전체 출전 선수 중 2위였던 파온율은 44%로 떨어졌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클럽 선택이 애매했다. 너무 후회된다. 추워서 제대로 스윙을 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스폰스와의 계약이 있어서 모자, 의류 등을 함부로 바꿀 수 없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만 열어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는 기상정보인데 방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유를 불문하고 선수 본인의 책임이다.
‘스마일 신데렐라’로 불리며 늘 웃는 모습으로 일본 팬들의 사랑을 받던 그는 18번 롱퍼팅 버디 때를 제외하고는 늘 화난 듯한 얼굴이었다. 2번 홀의 보기 이후 이미 자제력을 잃은 듯 보였다. 세컨드샷이 에이밍에서 벗어나자 디봇을 발로 차기도 하고, 퍼팅이 들어가지 않자 무릎과 발로 퍼터에 화풀이를 하는 듯한 모습이 TV 화면으로 흘러나왔다. 추위에 생각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으니, 화가 났을 것이고, 화가 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으니 현명한 매니지먼트를 할 수도, 좋은 샷이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는 된다. 22살의 어린 선수가 과도한 매스컴의 관심과 어렵게 맞이한 최종일 경기가 악천후로 하루 더 연기되자, 그 압박감이 얼마나 컸을까. 그러나, 우승한 김아림 프로나, 최종일 3타를 줄이며 공동 2위에 오르면서 이번 주에 72명만 초대되는 LPGA 최종전에 출전하게 된 고진영 프로는 사뭇 마음 가짐부터 다르다. 김아림은 경기가 끝난 후 우승 인터뷰에서 “전날 아쉬운 경기를 했기 때문에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친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내 플레이가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고, 에너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고진영도 “하루가 순연되는 바람에 피곤했던 체력이 보강되어 마지막 날 오히려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올해 JLPGA 투어 챔피언쉽에서 우승하며 메이저 대회에서만 2승을 올린 하라 에리카(原英莉花) 프로는 마지막 날 경기 전 인터뷰에서 재미난 꿈 이야기를 했다. "어젯밤 꿈에 가미사마(神様, 신)께서 욕조에 앉아 계셨다. 우승컵도 안겨주셨다"는 것이다. 그가 우승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 그는 마지막 날 이븐파의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나흘간 선두를 지키며 10언더파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프로 토너먼트를 관전하다 보면 종종 운의 중요성도 생각하게 된다. 좋은 구질의 타구가 몇 센티미터가 짧아 벙커에 빠지며 나쁜 성적을 내기도 하고, 어려운 롱 퍼팅이 홀린 듯 홀컵에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신께서 툭 밀어주신 것 같다, 운칠기삼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타이거 우즈, 박세리, 이오순 프로 등 월클 레전드 선수들을 보면 단지 운으로 그리 대단한 성적을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10여 년 전에 일본 모 출판사의 요청으로 이오순 프로와 함께 ‘한국 여자 프로 왜 강한가?’라는 주제로 기획 조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한국 여자 프로들이 강한 이유를 멘털, 집중력, 바느질에 능한 섬세한 손 감각, 부모의 교육열, 농경문화에서 비롯된 특유의 감각, 아버지들의 바짓바람,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가족들, 온돌문화 등 다양한 이유를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 당시 JLPGA 상금랭킹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고가 미호(古閑美保) 프로가 좋은 답을 주었다. "한국 프로들이 왜 잘하느냐고요? 한국 선수들은 연습장에 가장 빨리 나오고, 가장 늦게까지 연습합니다. 성적도 좋지 않으면서 일찍 돌아가는 일본 선수들도 이를 배워야 합니다.” 타고난 조건이나 문화보다도 엄청난 연습량이 한국 선수들이 골프에 강한 이유라는 것이었다. 박세리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퍼팅 연습에 매달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멘털, 신체적 기능, 매니지먼트, 기술 등이 골프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자를 당할 자는 없다. 한국 선수들의 멘털, 기술은 물론, 매니지먼트 능력 ㅁ또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번 주에는 LPGA 최종전인 메이저 경기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이 열린다. 출전 자격이 주어진 72명 중 우리나라 선수는 전년도 우승자 김세영, 세계 랭킹 1위 고진영, 박인비 프로 등 10명이나 된다.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이 빈틈없는 준비와 현명한 경기 운영으로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바란다. 그리고, 소망하는 목표를 달성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