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행정 디지털 개혁이 한국 기업에는 기회가 되었으면
작년 5월 코로나 19 신규 확진자 현황 집계에서 도쿄도(東京都)의 데이터에 오류가 발견되어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가 직접 나서 정정하고 사과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도쿄도 관계자는 “확진자 현황을 수기로 작성하여 팩시밀리(팩스)로 보내거나, 단말기에 입력하였더라도 다시 팩스로 보고하는 보건소도 있다. 이는 각 지자체별로 집계 시스템이 통일되지 않은 것이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일일 변동내역의 집계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고 덧붙였다. 사무실에서도 팩스기(복합기)는 중요한 사무기기 중의 하나이다. 아직도 주문서를 팩스로 보내오는 거래선이 있기 때문이다. 팩스기를 통해 들어오는 광고지도 하루 십여 장이나 된다.
작년 4월 일본 정부는 전 국민에게 1인당 10만 엔(약 110만 원)의 코로나 재난 지원금을 현금을 지급하였는데, 통장에 입금되기까지 거의 두 달이나 걸렸다. 지자체에서 우편으로 보내온 신청서를 작성, 증빙서류를 첨부하여 우송하면, 지자체는 적법성을 확인하여 은행으로 송금해 준다. 모든 행정 절차가 수기로 처리돼 지원금 지급이 늦어지며, 일본 내에서 조차 아날로그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UN이 발표한 ‘2020 전자정부 진행상황 순위’에 따르면 덴마크에 이어 한국이 2위를 차지한 반면, 일본은 14위에 이름이 올라 있다.
만 엔권 지폐 몇 장을 늘 지갑에 넣고 다닌다. 크레디트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식당, 가게들이 많아 곤경에 처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비롯한 공공요금, 도쿄 시내의 병원의 치료비, 약값은 물론 식당의 밥값도 거의 현금으로 내야 한다. 일본 정부는 2020년 올림픽 때까지 전자화폐 사용률을 6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아직도 약 40%에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VISA 등의 크레디트 카드 사용내역도 일주일 뒤에나 알 수 있다. 누군가 내 카드를 몰래 사용하더라도 실시간으로 알 수가 없다. 도오고산(十五三, 십오삼)이라는 말이 있다. 급여소득자는 세금을 10할(100%) 다 내지만, 자영업자는 50%, 농업 종사자는 30%의 세금만 낸다는 뜻이다. 이는 낮은 전자화폐 사용률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일본에서 의료보험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려면 최소 한 달 전에 보험공단이 지정한 병원에 예약을 해야 한다.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은 검사를 희망하는 병원에 예약이 찼기 때문이 아니다. 의보공단에 ‘피보험자의 자격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 처리에 한 달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의 예약 절차는 이렇다. 공단에서 검진을 받으라는 우편물을 받으면 한 달 정도 여유를 두고 희망하는 병원에 검진을 예약한다. 그리고, 언제, 어느 병원에 건강검진을 예약했는지를 기록한 건강검진 신청서류를 작성하여 84엔 우표를 붙여 보험공단에 우송한다. 신청서를 접수한 보험공단은 예약된 병원에 피보험자의 자격을 확인해 주는데 이 절차에 약 1개월이 걸린다. 일본은 관공서의 전자결재, 전자민원의 도입이 상대적으로 늦어서, 인터넷 소득신고, 인터넷 인구조사 제도가 도입된 것도 최근이다.
병원에 갈 때는 플라스틱 의료보험증, 그 병원의 진찰권, 약 수첩 등 3 가지를 챙겨가야 한다. 진찰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달이 바뀌면 반드시 의료보험증을 가져가야 하고, 매번 요구하는 병원도 많다. 이유는 피보험자 자격이 있는지를 병원이 확인해야 하는 의무 때문이다. 보험증 없이 갑자기 병원에 갔던 적이 있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보험증 사본을 보여주며 보험처리를 부탁했지만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병원은 실물 보험증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 거절의 이유이다. 보험증을 가져가지 않으면 우선 실비를 내고, 나중에 증빙서류를 갖추어 환급 신청을 해야 한다. 그 행정처리에도 약 3개월이 걸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갑자기 병원에 갈 것을 대비하여 신분증명서 역할을 하는 운전면허증과 함께 플라스틱 보험증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또,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은 PC가 아닌 종이 카르테에 진료 사항을 적는다. 개인병원에 가면 2명 정도 되는 창구 직원이 빼곡히 꽂힌 서류꽂이에서 카르테부터 찾아낸다. 의사 선생님은 한자가 가지고 간 약 수첩을 보고 무슨 약을 복용 중인지 확인한다. 한국보다 비싼 보험료는 자동이체로 꼬박꼬박 챙겨 가면서 2021년이 되어도 관리 시스템은 1970년대 그대로다.
신칸센의 개찰구는 세계 최고를 기술 수준을 자랑한다. 신칸센, 특급열차 티켓은 승차권에 특급권을 별도로 발행하기 때문에 편도 2장이 기본이고, 한 번 갈아탄다면 편도 4장이 된다. 자동 개찰기는 티켓 4장까지 방향 관계없이 아무렇게 넣더라도 읽어 들일뿐 아니라 가지런히 정리해서 내준다. 이 뛰어난 가능의 개찰구는 일본의 자랑이다. 최근 스마트폰에서 프리페이드 정기권 카드와 연계시킨 후 예약하면 개찰기에서 스이카 등 정기권 카드를 터치하여 입장할 수 있는 앱 서비스도 나왔다. 그런데, 앱에서 예약을 했으니 개찰 없이 기차에 타면 될 터인데, 개찰기에 등록한 정기권 카드를 터치해야 하고, 친절한 개찰기는 좌석 배정표를 인쇄해 준다. 이렇게 대단한 기술을 들이다 보니 개찰기는 한 대 약 1억 5천만 원이나 하는 고가품이다. 한 역에도 출구별로 여러 십여 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수많은 전국 각 역의 설치비, 유지보수 비용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KTX는 개찰구 없이 잘도 유지되는데, 신칸센은 왜 디지털화보다는 비효율적인 자동 개찰기 개발에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일까.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552km의 신칸센 일반석 요금은 14,450엔으로 KTX 요금의 거의 2배나 된다. 신칸센 요금 등 일본의 교통비가 비싼 이유도 이런 비효율적인 아날로그적 사고, 정책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조선이 쇄국 정책을 펴던 19세기, 일본은 서구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메이지유신으로 영국에 이은 후발 산업혁명 국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국이 되지만 베트남 전쟁, 한국전쟁의 혜택을 받아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백여 년을 풍요롭게 살아왔다. 그러나, 2011년경부터 많은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국가 전략으로 계획하고 있었던데 비해, 20년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던 일본은 2015년에야 비로소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주)하기 시작하여, 기술 패권의 글로벌 경쟁에서 다소 밀려나 있다. 작년에 물러난 올림픽 장관의 국회 질의 답변 도중 “USB가 무엇인지 모른다”던 대답은 일본의 행정 디지털화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주; 일본재흥전략 2015: 미래에의 투자와 생산성 혁명(日本再興戦略, 改訂 2015: 未来への投資·生産性革命)
이 외에도 아날로그의 사례는 많다. 고급 맨션(아파트)에서도 도어록 대신 두툼한 열쇠를 사용하고, 선거의 기표 용지에도 이름을 직접 적어야 한다. 은행 창구 업무에는 도장이 필수이고, 남자 지갑에도 동전을 넣는 포켓이 붙어 있으며, 수량이 점점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도 인쇄된 연하장, 연하엽서를 20억 장이나 보낸다.
이런 일본에도 디지털로 변화하려는 바람이 일고 있다. 작년 9월 발족한 스가 내각의 고노 다로(河野太郎) 행정개혁 담당 장관은 “행정의 온라인화나 디지털화에 대해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로봇이나 AI에 맡길 것이다”며 행정의 디지털화를 강조했다. 행정처리의 날인 폐지에 대해서는 “도장을 찍지 않아도 된다면 종이로 인쇄할 필요가 없다. 수속이 온라인으로 완결된다면 세금, 보험료, 벌금도 온라인으로 지불이 가능해진다.”며 이제야 일본 정부의 행정개혁 현안이 수속의 온라인화, 디지털화가 최종 목적인 것이라 말한다. 나아가 ID 넘버를 사용해 소득을 파악하고 있는 영국의 예를 들면서 일본에서도 마이 넘버를 통해서 여러 가지 데이터를 파악해, 필요한 지원에 대해 행정 측면에서 연락하거나 지원금을 불입하는 ‘푸시형 행정’을 실현하겠다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에 뒤쳐지며 디지털 후진국이 된 일본. 뒤늦게 디지털 행정개혁에 뛰어드는 스가 내각은 IT 관련 부문에 투자를 늘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부 전략으로 진행 중인 산업 부문의 기술 디지털 혁신 결과로 어떤 변화가 생길까? 스가 내각의 강한 IT 투자 의지가 IT강국인 우리 기업에게도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