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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Feb 05. 2021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루벤스전의 추억

일본 국민의 높은 문화 수준과 수준급 소장품

일본의 국립서양미술관은 노후 시설 정비를 위해 휴관 중이다. 작년 초 코로나 사태로 임시 휴관한 이후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상설전도 아주 볼만하고, 좋은 컬렉션으로 특별전도 자주 여는 곳인데 아쉽다. 특히 이 곳은 天仁의 고교 친구들과의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년 전 이맘때, 도쿄를 방문했던 고교 동기생 4명, '투박하이(박 씨 2명, 하 씨와 이 씨 각 1명)'가 오후 비행기로 귀국하기 전 아침 일찍 우에노(上野) 공원을 산책하고, 뭉크전을 관람할 계획이었다. 우에노 공원은 1873년 오픈한 일본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다. 국립서양미술관뿐만 아니라 도쿄국립박물관, 국립과학박물관, 도쿄예술대학, 도쿄도(東京都) 미술관, 우에노 모리미술관, 국제 어린이도서관 등 각양각색의 문화시설이 몰려 있다. 투박하이는 도쿄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뭉크전을 관람하기로 했었다.

천여 명이 줄 서는 도쿄도 미술관


그런데, 뭉크전 관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개관 시간인 아침 9시 반에 맞춰 도쿄도미술관에 도착했는데, 이미 천여 명이 건물을 돌아가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입장에만 최소한 세 시간은 걸릴 것 같다. 차선책으로 비교적 줄이 짧은 국립서양미술관(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의 루벤스전을 관람하기로 했다. 장점이 많은 선진국인데도 제국주의 역사를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다고 늘 일본을 깔보기는 하지만, 시민들의 높은 문화 수준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뭉크전을 보기 위해 천 여명씩 줄을 서는 일본인들이나, 수준 높은 국립서양미술관을 가진 일본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수준급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서양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에밀 앙투안 부르델의 ‘활 쏘는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조각품 백여 점을 비롯하여 모네 작품 11점, 르누아르 작품 3점, 고갱 작품 3점 등의 회화를 소장하여 인상파를 넘어 중세 이후 서양미술사를 관통하고 있다.


이 작품들이 전시되기까지는 가와사키조선의 초대 사장이었던 마츠카타 고지로 씨(松方幸次郎)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한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원작을 보여주기 위해 1920년대에 서양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대량 수집한다. 그러나 세계공황으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며, 결국 작품들이 프랑스 정부에 귀속되게 된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미술품을 반환받기 위해 노력하다가 1959년 전시를 한다는 조건으로 작품 370점을 되돌려 받아 이 미술관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제 회화, 조각, 소묘, 판화, 공예 분야 등의 소장 작품 수는 6천여 점이 되었다.

미술품과 함께 빛나는 르 코르뷔지에의 미술관 건물


국립서양미술관에는 회화와 조각만큼 귀중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술관의 건축물이다. 이 미술관의 설계자는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다. 이 건물은 생전에 그가 완공한 유일한 미술관이자 일본에 있는 단 하나의 르 코르뷔지에 작품이다. 프랑스 문화부와 르 코르뷔지에 재단의 노력으로 이 미술관은 2016년 다른 르 선생님이 작품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도 훌륭한 예술품이 되어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특징은 기둥, 골조와 벽의 분리,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이라 한다. 1층 19세기 홀에서 2층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아니라 비스듬히 오르는 지그재그 슬로프로 되어있다. '계단은 층을 단절시키고, 경사로는 연결한다'는 것이 르 선생님의 지론이었다고 한다. 역시, 1층에서 슬로프를 따라 오르며 전시홀을 바라보면, 보는 위치에 따라 작품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건물 내 툭 트인 넓은 공간들도 큰 작품을 더 아름답고, 웅장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채광을 위한 창을 많이 만든 것도 특징이다. 지금의 눈으로 이 건물을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이런 웅장하고, 친환경적인 현대식 건물을 60년 전인 1959년에 지었다고 생각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국립서양미술관은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물도 볼거리 중 하나다.  


가정적으로 느껴졌던 유럽의 화가 루벤스


루벤스전은 모두 7장으로 나누어 대작 100여 점을 전시해 감동을 주었다. 특이했던 것은 그가 유럽의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종교적인 작품보다는 아이, 가족들을 많이 그렸다는 것이다. 특히, 제1장에 걸린 5살 난 딸 클라라 초상은 눈물이 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안타깝게도 그 예쁜 딸이 열두 살에 죽었다지만, 머리카락과 눈빛, 입술, 사랑스러운 클라라의 얼굴에서 아버지 루벤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 루벤스의 여인들은 모두 풍만하다. 그 풍만함은 오늘날 루베 네스크(Rubenesque)라는 단어를 탄생시켜 넉넉하고 풍부함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2장 과거의 전통 장에서는 고대 조각품, 16세기 작품의 모사품을, 3장 종교화와 바로크에서는 종교가 주제, 4장 신화의 힘 1은 헤라클레스와  남성 누드, 5장 신화의 힘 2 에서는 비너스와 여자 누드 작품을 배치했다. 감동이었다.

일본도 곧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내년 초 까지는 미술관이 휴관이라 어쩔 수 없지만,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왕래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술관이 다시 개장하면 친구들과 여유 있게 작품의 숲을 산책하고 싶다.

좌 : 루벤스전 포스트, 우 : 클라라. 자신을 그리는 아빠를 바라보는 5살의 딸 클라라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십자가를 올림. 안트베르펜 성모 대성당, 벨기에

일본에서 만화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림. 주인공 네로는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안트베르펜 성모 대성당에 걸린 루벤스의 두 그림을 보는 게 소원이지만 비싼 관람료 때문에 보지 못한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크리스마스 전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난 네로는 크리스마스 날 문이 열린 대성당에 들어가 두 그림을 보고는 성당 안에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만다.

왼쪽부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 자화상(스무살의 젊은 학자), 모피를 두른 엘렌 푸르망
아내 헬레나 푸르망과 아들 페테르 파울과 루벤스의 초상,  마르세유에 도착하는 마리 드 메디치

마르세유에 도착하는 마리 드 메디치

남편 앙리 4세가 광적인 가톨릭 신자에 의해 암살당하자 9살의 루이 13세가 즉위하고 마리 드 메디치가 섭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루이 13세가 커 가면서 아들과 권력투쟁을 하게 되고, 마리는 그녀의 위대함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루벤스에게 앙리 4세와의 영광스러운 일생을 그려 달라고 주문한다. 이에 루벤스는 단순한 사실을 신화와 연계시키며 명작들을 남기게 되는데, ‘마리 드 메디치의 교육’으로 시작된 명작은 21편의 연작으로 이어진다.

‘마르세유에 도착하는 마리 드 메디치’는 마리가 왕비가 되기 위해 마루세유 항구에 도착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푸른 망토를 걸친 프랑스가 마리를 환대하지만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도도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문의 여신 파마가 나팔을 불며 마리의 도착을 알리고, 마리가 무사히 바다를 건너올 수 있도록 도와준 포세이돈과 바다의 요정들도 나타난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사실을, 신화와 연계시켜 신들까지 그녀를 환영하고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표현한 것이다.

거울 속의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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