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 추구하는 일본 한자, 체계적 한자 교육의 필요성
한일 간 다른 한자 474자
오랜만에 펜으로 메모를 하다가 문득 한일 간 ‘놈 자(者)’가 다르게 사용된다는 것을 떠 올리게 되었다. 한국에서 ‘놈 자(者)'자는 耂(늙을 노)에 白(흰 백) 자를 써서 총 9획인 반면, 일본 한자에서는 흰 백자 대신에 日(날 일)을 사용하여 총 8획이 된다. PC, 스마트폰의 자동 완성 기능에 익숙해져 획 수가 하나 다르다는 것을 잊고 지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자체의 교육용 한자 1,800자를 사용하는 반면, 일본은 획수를 줄인 신자체(新字体, 간략자체(簡略字體)) 2,136자를 상용한자(常用漢字)의 기준으로 정하고, 히라가나, 가타카나와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 474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와 다르다.
같은 한자 다른 뜻
일본에서 사용하는 상용한자란 ‘법령, 공용문서, 신문, 잡지, 방송 등 일반 사회생활에서 사용할 때, 공통성이 높은 한자를 모아 「알기 쉽고 소통하기 쉬운 문장을 효율적으로 표기하기 위한 한자」 사용의 기준이다’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획을 많이 간소화했다.
부수의 예를 들면, 우리나라 초두머리(풀초)는 4획(艹)이지만, 일본에서는 일자를 길게 한 획으로 그어 총 3획으로 줄였다. ‘花, 草, 茶, 荷, 苦’ 자 등이 이에 해당된다. 부수 책받침의 경우에도 우리는 3획(辶)인 반면 일본에서는 2획(辶)으로 줄였는데, 예로 ‘遠, 近, 週, 通, 運’ 자 등이 있다. 글자로 보면 일반 만(萬↔万), 배울 학(學↔学), 나라 국(國↔国), 그림 도(圖↔図) 등이 한일 간 획수가 다른 대표적 신자체 약자이다.
동일한 한자에 다른 의미(同字異義)로 사용하는 사례도 많다. 한국에서 '이성 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애인(愛人)'이 일본에서는 '불륜의 상대, 세컨드'를 뜻한다. 工夫(한국에서는 공부↔일본에서는 궁리, 고안), 大丈夫(대장부↔괜찮음), 去來(거래↔왕래), 生鮮(생선↔신선), 心中(심중↔정사(情死), 銅銭(동전↔엽전), 陸橋(육교↔고가도로) 등도 그 쓰임이 다르다.
한일 간 쓰임이 다른 한자어
한일 간 전혀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대중교통을 일본에서는 공공교통(公共交通, こうきょうこうつう), 차량에서 내리는 것(하차)은 降車(こうしゃ)라고 한다. 그래서 버스를 타면 ‘降車버튼’을 많이 볼 수 있다. 간접흡연은 수동흡연(受動喫煙, じゅどうきつえん), 초보자는 初心者(しょしんしゃ)라고 한다. 팔등신↔八頭身(はっとうしん), 동전↔硬貨(こうか), 졸업장↔卒業証書(しょうしょ), 외계인↔宇宙人(うちゅうじん), 회식↔飲み会(のみかい), 단독보도↔独自報道(独自報道), 기본요금↔初乗り運賃(はつのりうんちん), 교복↔制服(せいふく), 학점↔単位(たんい), 자연산↔天然物(てんねんもの), 육교↔歩道橋(ほどうきょう) 등도 우리와 다른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식 한자, 한자어
한자는 획수와 형성의 방법으로 무한히 글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일본에서 만든 한자는 고쿠지(国字, 또는 와세이칸지(和製漢字))라고 한다. 辻(つじ, 네거리), 峠(とうげ, 고개), 畑(はたけ, 밭)와 같은 옛날에 만들어졌던 것과, 서양 문명의 영향을 받아 근대에 만들어진 膵(すい, 消化器), 腺(セン, 샘), 瓩(キログラム, 킬로그램), 鞄(かばん, 가방) 등이 있다. 주로 음과 훈 중에 훈만 가진 것들이 많은데, 働く(はたらく, 일하다)와 같이 음과 훈을 가지는 것도 있고, 鋲(ビョウ, 압정), 鱇(コウ, 아귀) 등과 같이 음만 가지는 것도 있다.
일본이 2차 산업혁명을 했던 나라이다 보니 에도시대 이후에 생겨난 일본제 한자조어[和製漢語]도 많다. 예를 들면 科学(과학), 化学(화학), 分子(분자), 質量(질량), 時間(시간), 理論(이론), 文学(문학), 電話(전화), 美術(미술), 喜劇(희극), 悲劇(비극), 社会主義(사회주의), 共産主義(공산주의) 등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도 있는데 艍(거룻배 거), 垈(집터 대), 媤(시집 시), 畓(논 답), 娚(오라비 남), 乭(이름 돌), 耆(늙을 기), 倻(가야 야) 등이다.
일본은 학교에서 상용한자 교육
天仁의 고교 은사이신 김병기 선생님은 국어 교과서를 받는 첫날, 한글 옆에 병기되어 있는 괄호 안의 한자만 남기고 한글은 모두 지우도록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작업이 한자를 익히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번거로움과 노력 덕분에 비교적 많은 한자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어로 읽는 방법은 몰라도 무슨 뜻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고, 일본어 비전공자인 天仁이 일본어를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소학교 6년간 1,026자의 상용한자를, 중등과정에서 나머지 1,110자를 배우게 한다. 중학교 1학년이 되면 부수와 함께 뜻글자인 한자를 만드는 방법과 활용하는 방법을 6가지로 분류한 육서(六書)를 가르친다. 한자의 80% 이상이 형성 문자이며, 형성 문자는 의미를 나타내는 부수와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매우 체계적이다. 214개 부수의 뜻을 알게 되니 모르는 한자가 나오더라도 어떤 의미를 가진 글자인지를 유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체계적인 한자교육의 필요성
우리의 한글은 세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말로 인정받고 있다.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적는 것이 좋은 글이겠지만, 한글만으로는 전공 서적이나 논문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말의 70% 이상이 한자어(漢字語)이기 때문이다. 한글로만 쓰면 그 뜻을 알기 어렵다. 또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가 많기 때문에 한자를 함께 쓰지 않으면 의미를 구별할 수가 없다.
직장에서 대학교육까지 끝낸 젊은 이들이 보고서를 만들거나 서류를 주고받을 때 한자를 몰라서 고생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축의금, 조의금을 접수하는 젊은 이들에게 봉투에 적힌 한자 이름을 읽어 주어야 하는 시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교육 과정에서 한자가 사라졌다.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쓰는 한자(漢字)를 ‘한자(韓字)’라고 주장한다. “200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쓰는 한자(漢字)는 한국의 사상·정서를 고스란히 담아 한자화(韓字化)됐다”는 것이 그 이유다. 글로벌 정보화 시대, 한자 교육의 차이가 한일 간 노벨상 개수 차이의 한 가지 이유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라의 백년대계 중 가장 중요하고, 우선 시 해야 할 것은 교육이다. 일본의 신자체, 한자 병행 정책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본다.
주)한자를 만드는 조자(造字)원리, 육서(六書)
1. 象形(상형): 사물(事物)의 객관적인 윤곽이나 특징을 그대로 본따 그려서 만든 글자들. 해 모양{日}, 달 모양{月}, 나무 모양{木}, 사람 모양{人} 등.
2. 指事(지사): 무형(無形)의 추상적인 개념을 상징적인 부호(符號)로 표시하여 일종의 약속으로 사용한 글자들. 기준선 위라는 표시{上}, 아래라는 표시{下}, 나무의 밑 부분 표시{本}, 나무의 끝 부분 표시{末} 등.
3. 會意(회의): 두 개 이상의 상형자(象形字)나 지사자(指事字)를 합하여, 그 의미와 의미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글자.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林}, 사람의 말에 중요함은 믿음{信}, 하늘의 해와 달은 밝다{明}, 사람이 나무 밑에서 쉬다{休} 등.
4. 形聲(형성): 의미부분과 소리부분을 구분해서 결합하는 방식의 글자. 맑은 물의 의미에 소리 청{淸}, '옥 구슬'의 의미에 소리 민{珉} 등.
5. 轉注(전주): 본래의 의미에서 변화되어 달라지는 개념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 곧 서로의 의미를 설명, 해석해 주는 방법. '늙다'는 의미로 서로 통용되는 '老'와 '考{후에 과거부터 떠져 생각한다는 '상고하다'의 의미로 변화}', 음악{악}을 하면 즐겁고{락} 좋아한다{요}는 의미 변화의 '樂'<발음의 변화는 관계 없음> 등.
6. 假借(가차): 기본적으로 발음이 같은 개념을 빌려쓰거나 글자 모양을 빌리는 방법. '그을리다'는 의미의 발음과 연사(連詞)의 의미 발음을 통용하는 '然', 달러 화폐 모양 그대로 사용하는 '弗', 아시아의 음역 '亞細亞', 의젓하고 버젓한 모양의 의미 '堂堂' 등. (출처: 이야기 한자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