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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May 04. 2021

지금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애매모호하게 표현하고, 완곡하게 거절하는 일본의 언어습관

# “2주 연속 우승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2週連続優勝できるように、頑張りたいと思います).” 

지난주 JLPGA 파나소닉 오픈 레이디스에서 우승한 우에다 모모코(上田桃子) 선수의 우승 소감 중 한 부분이다. 다음 시합에 대한 각오이니 “2주 연속해서 우승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해도 되겠지만 일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 세미나에서 사회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それでは始めたいと思います).", 

"시황에 대해 설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市況についてご説明させ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 

마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듯이 애매모호하게 표현한다. 일본 사람들은 “지금부터 세미나를 시작하겠습니다, 시황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단정적으로 의사를 전달하지 않는다.

인터뷰 영상 : https://www.instagram.com/p/COXWYp2FizY/?igshid=cv3eztf16mqb


완곡한 거절이 미덕인 사회

어떠한 제안을 했을 때 “검토해 보겠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는 대답을 들은 일본인이라면 그 말이 '거절'의 뜻임을 바로 알아차린다. 그러나, 간접적인 표현으로 거절하는 일본인의 언어 표현 습관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으로서는 언어가 가지는 자체의 의미로 받아들여서 긍정적인 해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다음 기회에(また別の機会に), 오늘은 좀(今日はちょっと), 사내에서 검토해 보겠다(社内で検討してみます)'는 등의 우회적 표현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한다.

  우에다 선수나 세미나를 주관하는 사회자처럼 ‘~했으면(~してほしい), ~라고 생각합니다만(~と思いますが), ~라고 합니다(~といわれています)’ 등의 양보형 표현도 관용적으로 사용한다. 또 ‘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行けないことでもないが),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分からないことでもないが)’ 등의 이중부정도 단골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자동차가 도착한 모양입니다(車が参ったようです)’는 식의 추량 표현((推量表現)도 자주 쓴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일본인

“출장 결과는 어때요”라고 물어보면 흔히 “그럭저럭, 그량 그랬어요(まあまあ)”라고 답한다. “하코네에 놀러 가 보셨지요? 어때요? 가 볼만 해요?”라고 물어보면 애매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가 본 적은 있어요. 좋았던 것 같은데~, 그렇지만 당신의 취향을 모르니, 당신도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이 말은 자신은 재미있고 좋아서 추천하고 싶지만, 자신은 그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겠다는 뉘앙스이다. 일본인은 ‘꽤, 상당히(なかなか), 왠지, 어쩐지(なんだか)’ 등의 애매한 표현과 ‘아마(多分), ~라 생각한다(~だと思), ~일지도(~かも), ~일 것이다(~であろう, 추측)’ 등의 확신하지도 않고 단정 짓지도 못하는 표현들을 자주 사용한다.


간접, 완곡, 생략의 애매모호한 표현

일본인들은 생략하거나 추량 표현(推量表現), 이중부정, 완곡 표현을 ‘상대방에 동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보다 함축성 있고 서정적인 표현으로 생각한다. 후지사키 히로야(藤崎博也) 등 일본의 학자들은 이러한 일본인들의 애매모호한 언어 표현을 간접, 완곡, 생략 등 3가지로 분류한다. 완곡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불명확하거나, 뒷말을 흐리듯 생략하기 때문에 해석을 위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오이라 말하면 하이라 답한다(オイ と言えば ハイ と答える)'는 관용구가 있는데, "아~하면, 어~하고 알아들으라"와 같은 뜻이다. 이 관용구에서 볼 수 있듯이 상대방이 당연히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알아들을 것이라 것을 전제로 한다.


85% 일본인의 어정쩡한 거절 표현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14.6%만 직접적인 거절의 표현을 사용한다. 그것도 가족, 연인 및 친한 친구 관계에게만 국한되고, 직장 동료 관계에서 조차 직접적인 거절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85.4%의 일본인은 직접적인 이유를 내세우기보다 얼버무린 변명을 하거나 적당한 거짓말을 하는 등의 기법을 써서 부드럽게 느껴지는 방법으로 거절하겠다는 뜻을 나타낸다. 의외로 가족 간이나 부부관계와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회피형 거절의 표현이 빈번히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사회문화적 요인과 과잉 배려

“분명하게 말로 표현하면 10의 내용은 10일뿐이지만, 말을 6이나 7로 절약하고 얼버무리면 15 또는 20의 의미도 될 수 있다.” 모리타 요시유키(森田良行) 와세다대학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러나, 가와모토 시게오(川本茂雄) 교수는 그러한 현상은 일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성격, 언어 표현 습관 등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 설명한다. 기노시타 고레오(木下是雄) 도쿄대 교수는 "일본이 섬나라 동족 사회이기 때문에 막연한 표현으로 상대방의 의향을 묻고, 상대가 결정하도록 하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심리학자 나카야마 오사무(中山治) 교수는 심리적 배경으로 과잉배려(過剰配慮)를 주장한다. 이러한 애매모호하며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言い切らない表現) 언어습관은 다른 사람의 기분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자신도 상처를 받거나 불쾌한 경험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뜻이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어야

언어에는 많은 문화적 배경도 함축되어 있다. 외국인에게 네이티브처럼 일본어를  숙달시키기 위해서는 언어뿐만 아니라 이러한 일본인의 문화, 언어습관도 함께 가르쳐야  것이다. 리고, 일본인들은 진정한 글로벌화를 위해 사고를 전환하고, 명확하게 의사전달을 하도록 언어 습관을 바꾸어 나가야  것이다.

 

주)와[和]는 사이좋게 밥(禾)을 나눠 먹는(口) 다는 한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메이와쿠(迷惑) 정신,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신경 써 주는 기쿠바리(氣配り), 동료에 대한 절대적 의리와 배려를 보이는 나카마(仲間) 정신, 분수를 알고 맡은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이치닌 마에(一人前) 등도 본질은 와[和]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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