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날로그가 필요한 일본
오랜만에 지하철 '지연증명서'를 받았다. 아침 8시 30분, 플랫폼에 들어섰을 때 지하철이 한 대 서 있었는데, 만원이라 탈 수가 없다. 마스크는 하고 있지만, 코로나가 걱정이다. 델타 변이는 비말이 아니더라도 공기 중을 맴돌아 스치기만 해도 감염될 있다고 하는데, 비집고 타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도쿄는 토요일에 714명, 일요일 518명 등 주말 치고는 확진자가 굉장히 많은 편이고, 대기업, 대학 등이 재택 중인데 이렇게 붐빌 리가 없다. 다음 열차는 조금 여유가 있어 탔더니 바로 출발하지 않는다. 안내 방송에서 나카메구로(中目黒) 역 선로에 누군가가 들어가서 상하행선 모두 지연되고 있단다. 결국 30분 이상 늦었다.
오랜만에 내리는 역에서 나눠주는 지연증명서를 받았는데 많이 달라졌다. 양식도 바뀌었고, 손으로 적거나, 스탬프를 찍던 방법도 바뀌었다. 상하 가로 난에는 날짜를, 좌우 세로 난에는 지연시간을 표시하도록 되어 있고, 개찰까지 되어있다. 뒷면에는 QR 코드가 인쇄되어 있어, 웹에서 승차했던 Tokyo Metro 노선을 찾아가면 지연 증명서를 내려받을 수도 있도록 했다.
마침 연락을 해온 일본어에 능한 한국의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시대가 언제인데, 아직도 ‘개찰’이라는 것이 있느냐”며 웃는다. 코로나 전에 거래선인 상사(商事)의 부서징과 함께 한국에 출장, 서울에서 KTX로 울산에 갔던 적이 있다. 기차에 타더니 제일 먼저 그가 개찰을 했느냐고 묻는다. KTX의 무개찰, 앱 예약 시스템을 설명했더니, 뉴욕 지사에도 4년 근무하셨던 분인데도 깜짝 놀란다. 일본인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신칸센도 최근 앱 예약은 가능하지만 IC 정기권 등과 연계해 사용해야 한다. 신칸센 개찰기를 지나야 하고, 터치할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웃기는 것은 정기권을 개찰기에 터치하면 좌석번호가 인쇄된 간이 승차권이 인쇄되어 나온다.
표에 구멍을 내는 것을 일본말로 뉴쿄(入鋏, にゅうきょう)라고 하는 모양이다. 동해남부선 완행열차에서 봤을 것도 같지만, 일본에서도 개찰을 해 본 일이 없었으니 생소한 단어다. 친구는 오히려 펀칭(punching)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한다. 일본에서는 외국어를 가타카나로 잘 쓰니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入鋏, ‘鋏, 집게 협’, 한국어로는 입협이라고 읽는다. 약재를 자르는 가위를 협도(鋏刀), 집개 벌레를 협충(鋏蟲)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잘 쓰지 않는 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