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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슬로우 Sep 04. 2021

[부록]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책읽는 주말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144 day


빨려들어가듯이 단숨이 읽어버린 마법같은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를 다 읽고 덮자마자 그의 대표작 '13계단'을 바로 주문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빅픽쳐'의 더글라스 케네디만큼이나 흡입력이 강했고, 광범위한 인문 과학적인 통찰이 소설 속에 녹아있어 단순히 픽션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인류의 진화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 줄기를 골조로, 제노사이드(대규모 집단학살)같은 전쟁의 참상을 작가가 생생히 묘사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심리학적이고 진화 생물학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바이러스 발생과 질병 치료에 특효가 될 신약개발 분야의 진보된 인공지능 기술,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설 초인류 출현의 임박함, 인류의 종말에 대한 징후, 특이점을 지나 호모 데우스가 지배할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공포, 우려를 총망라하여 이야기를 엮어내어, 픽션이라기보다 유발 하라리의 책 같은 인문교양서를 읽는 느낌도 있다. 최근 읽고 있는 스티븐 핑커나 켄 윌버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고 진화론, 생물학, 언어학, 심리학, 인류학, 인공지능 등 모두를 통섭적 소설로 흥미롭게 잘 엮었다.


 


recipe 221.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이 책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딱 우리의 현실이었다. 2011년에 소설이 쓰였는데, 마치 요즘 일어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사태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인간의 시신경을 모방한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 등, 이 모든 것이 현재 일어나리란 것을 이미 예견한 느낌이다. 그것으로 우려되는 새로운 종의 출현, 인류가 발전시킨 기술이 어떤 진화를 미래에 촉발할지, 그것에 대한 대처를 전세계를 대표한다는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는 한 인간)이 어떻게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할지에 대한 우려와 불안도 녹아있다.


소설이 쓰여질 시점에도 이 모든 현재 사태는 통찰있는 전문가라면 예견할 수 있었던 앞으로 닥칠 미래가 아니었을까.. 미소간의 냉전이 촉발한 핵무기의 위험도 지나, 21세기는 생화학전이라고 바이러스가 세계를 전쟁처럼 몰고가고 그럼으로써 바이오 제약에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돈이 오갈 것을 빌 게이츠같은 사람들, 이 소설을 쓴 작가도 아마 이미 알았을 것이다. 예전같지 않게 군용무기 장사가 시들해졌으므로, 이제는 약을 팔아야 돈이 되는.. 이렇게 세상을 큰그림 그리듯 그려 나가는 세계 상위 몇 프로의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 (음로론까지는 아니지만.. 하지만 그런 음모론이 아주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 함정..)   


그래서 이 책의 등장 인물들 배경이 모두 예사롭지 않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바이러스 학자'인 아버지 고카 세이지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면서, '제약학'을 공부하는 아들 고가 겐토에게 인류의 진화와 대학살, 종말을 막아낼 신약을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구원하라는 인류애적 미션을 남기고 간 이야기이다.


그 속에 '미군 용병'으로 고용된 예거가 전쟁에 가담하는 운명적 상황, 모든 작전을 지휘하는 권력자 '미국 대통령' 번즈를 중심으로한 백악관 회의, '인류학자' 피어스와 아프리카 콩고의 문명화되지 않은 '미개 부족' 피그미족과 그곳에서 유전자 변이로 탄생한 최초의 '인류의 진화된 종' 아키리와 에마, '인류의 종말에 대한 보고서'를 몇 가지 가설(소행성 충돌/지구 환경변동/핵전쟁/생물 병기 바이러스의 위협/인류의 진화)을 바탕으로 써낸 하이즈먼 리포트의 과학자 하이즈먼. 한일 간의 묵은 감정을 털어내듯 인류 대업을 위해 화합하는 '일본인' 겐토와 '한국인' 정훈 등. 인물들의 등장 배경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에 알맞게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어 있어 소설의 짜임새가 좋다.


초인류, 새로운 진화된 종으로 탄생한 '아키리'의 존재는, 사실 2021년에서 바라보자면 현재의 '인공지능'과 기술의 진화를 비유하는 것 같다. 신약 개발을 위해 초인류가 고안한 '기프트'라는 완벽한 프로그램도 딥러닝 알고리즘을 돌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의미하는 것일 거고, 그건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우리 회사에서 개발하는 인공지능 플랫폼 같은 것일 거다.     


한때는 인류의 종말을 위협했던 '핵', 그 핵을 감시한다는 명목을 빌미로 사실은 이권 쟁탈을 하기 위해 개입했던 '미국'의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도 이제 더이상 경제적 정치적 메리트가 없자 무책임하게 발빼고 말자, 비행기에 매달려서라도 지옥같은 나라에서 탈출하려다 추락하고마는 비극이 벌어지는.. 이 사태를 미국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탈레반과 IS는 또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인류는 진화해가는 과정 속에 미개할 때부터 종족간 전쟁을 통해 살아남은 종족이 진화해왔고, 무수히도 제노사이드(대학살)를 일으켜왔으며, 지금도 크게든 작게든 문명사회에서도 제노사이드는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책에는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새로운 인류 종을 말살하기 위해, 그가 속한 부족 전체를 바이러스 집단 종족으로 몰아 말살하고자 하는 '네매시스 작전(일종의 제노사이드)'을 놓고 미국 정부 측 작전에 개입된 사람들이 이것을 진행할지 말지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그 제노사이드가 실행되면, 초인류는 현생 인류에게 똑같이 종의 말살을 위한 제노사이드로 보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기에, 기에 기를 쓰고 제노사이드가 일어나는 상황을 막으려는 몇몇 사람들의 고투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런 큰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한 대의명분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그 어떤 제노사이드도 그 어떤 명분으로도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고,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자행했던 과거나 중국에서 일어난 난징대학살 또한 아직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듯이.. 전쟁을 일으켜왔던 인간의 본성이 현재는 자본주의로 그럴듯 하게 포장되기는 했어도, 아직도 고도로 발달한 최고의 종족이라는 '인간'이 가진 미개한 본성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초인류가 등장한다면, 그것이 유전자 변형에 의한 새로운 종족이든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낸 인공지능이든 그들은 과연 우리 인간보다 미개하지 않고, 도덕 관념 등이 높을까? 그들은, 앞서 읽었던 켄 윌버의 '통합명상'에서 처럼 인간의 의식의 구조-의식의 상태 등 인간의 모든 축의 발달 단계에서 가장 고도로 진화된 '슈퍼마인드'를 갖춘 존재일까? 지금으로선 가장 고차원인 '의식의 구조 상의 8단계'를 넘어선 진화 단계에 탄생할 존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오류를 모두 넘어설 수 있을까? 아마 현생의 '인간'의 단계에서는 예측 불가인 듯..  

  

문명과 미개함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지.. 모호해지면서 소설 속 콩고에서 자행되는 집단학살이나 전쟁통에서의 비인간적인 참상을 눈으로 읽고 있자니, 지금도 아프리카나 중동에서는 수많은 내전과 국지전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무수한데, 어디에도 보도되는 기사 한 줄 없이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소리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한쪽은 문명사회, 한쪽은 미개사회로 남아있는 이 지구 상에서.. 우리는 과연 진보한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올해 초 읽었던 '지리의 힘'에서 알게된 것 처럼, 세상은 지리의 힘의 이점을 가장 많이 가진 미국 중심으로 지금은 돌아가고 있고, 미국의 한 길거리에서 누가 총맞은 것은 기사화되도, 아프리카에서 매시간 수천이 죽어가는 기사는 어디어도 한 줄 없다는 것이... 참 씁쓸하기만 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역대급 산불과 홍수... 기후 위기로 인해 어쩐지 인류 종말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 같은 지금, '인류 멸망 보고서'라는 것에서 촉발되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현실처럼 느껴져 많은 생각이 들게한 며칠이다. 너무 흥미롭게 읽혔고, 너무 단숨에 읽어 치웠지만, 쉽게 소비하고 말 추리소설이 아니라 오래 기억할만한 소설일 것 같다.  

 


목표일: 144/365 days

리서치: 221/524 reci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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