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주말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151 day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를 흥미롭게 읽고 작가에게 매료되어, 주문하게 된 '13계단'. 이 책은 가즈아키의 데뷔작이자 작가에게 첫 문학상을 안겨준 책으로, 흡입력있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제노사이드'와 마찬가지로 꽤 심도있는 사회적 이슈를 중심에 두고 극을 이끌어가기 때문에 추리의 묘미와 더불어 구성이 짜임새있다. 가즈아키는 '13계단'을 쓰기 위해 각종 법정 참고서 등 방대한 자료들을 철두철미하게 조사하여 작품에 극도의 현실감을 부여하였다고 하며, '사형 제도'의 모순과 범죄 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비난하며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누가 범인인지를 파헤치며 따라가다보니, '사형 제도'에 대해 의미있게 고민해보게 된 소설. 이야기 전개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작가 인터뷰를 보니, 다카노 가즈아키는 원래 영화를 공부했고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가, 소설로 전업을 하게 되었다고.
recipe 229.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
사형제 찬반이 논술고사의 주제로 나온다면 좀 곰곰히 생각해볼 텐데 평소에 그럴 기회가 없어서, 평소 막연히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는 있었는데 잔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날 때면 항상 분노가 치민다. 오늘도 어찌나 끔찍하던지.. 1m나 되는 일본도를 가지고 이혼소송 중이던 아내를 살해한 남자 기사를 보고 경악을 했다. 한강 몸통살인처럼 뉘우침없는 사람에게 '저놈은 사형이 답이다'라는 댓글들이 가장 많다. '저 사람도 우리랑 똑같은 인간이니까 온정으로 봐줘야한다. 무기징역 정도만 살리자'라는 글은 거의 잘 없다.
인면수심의 극악한 사람에게는 사형이 당연한 것 같지만, 사회적인 환경이 촉발한 요인과 유전자적 결함이 동시발생하여 사이코패스로 발현될 경우라던가, 인간 본성의 어떤 우발적인 순간적 충동에 의한 사건이었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에 처해지는 경우, 그리고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누군가는 사형을 당하고, 누군가는 풀려나기도 하고 있기 때문에.. 공평한 사형이란 것은 없을 수 있고, 과연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복수'가 아니라 '정의'라는 이름으로 과연 남의 목숨을 처단할 수 있을까? 그것도 너무도 이성적인 법적 절차에 따라서? 참 고민하게 된다.
사형수에게 최종적으로 법무 장관의 싸인을 받고 사형 집행 명령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결재 단계가 총 13단계인 것으로,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모순과 허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소설은 교도관으로 근무하는 '난고'가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 두차례 사형을 집행하면서 두 명을 '살인'(난고는 자신이 한 업무처리가 살인이었다고 말한다)하게 되는 경험을 하며, 사형제에 대해 내면적으로 고뇌를 겪는 것이 중심이다.
사형수는 집행 명령이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고, 그 당일날이 오기 전까지는 하루하루가 살얼음이다. 그들을 잡아가는 저승사자들이 대개 오전 9시에 사형수를 잡아가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그 시간에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저벅저벅 자기 독방 앞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면.. 죽음에 대한 서서히 조여오는 공포에 오줌을 지리거나 정신을 잃고 만다. 누군가를 무참히 살인한 자들이지만 그들도, 자기 앞에 닥친 죽음의 처형은 너무나도 공포스럽다는 것이다..
난고가 처음 집행에 참가하게 된 사형은 미성년 소녀들을 무참히 강간하고 살해한 사람으로, 그는 사형을 받아 마땅할 자였다고 난고는 자신의 법적 명령에 대한 이행이 합당했다고 합리화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난고를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아니야, 제발 살려줘. 살려줘"를 외치는 자의 모습에 상당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그 공무적인 사형집행 업무에 대해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는 기관의 내규에 따라, 가족에게도 자신이 겪은 일의 혼란을 털어놓지 못한채 혼자서 끙끙앓으면서 그 후로 아내와도 사이가 서먹해진다.
난고의 두 번째 사형의 주인공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고 어렵게 꾸리게 된 가정을 위해 돈을 갚아야했던 한 남자가 가족동반자살을 고민하다 결국 강도를 저지르고 일가족을 살해하게 된 경우로, 그는 자신이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깊게 뉘우치고 종교에도 귀의를 하였으며, 첫번째 사형에 처했던 남자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사형 집행의 순간도 아주 의연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난고'는 살해당한 가족 중에 살아남은 딸로부터 '그의 사형을 원치 않는다. 내가 그렇게 불우하게 자라고 어려운 환경에 처했다면 나도 그와 같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를 용서했고, 그를 사형시키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있었다는 것을 듣고, 고뇌하게 된다. 살해당한 가족도 용서한 자를 사회 정의라는 이름으로 법적인 처형 절차를 행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를 생각하게 된다.
사형이라는 형벌 체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나는 범죄자에 대한 보복으로 보는 응보형 사상, 또 하나는 범죄자를 개화하여 사회적 위협을 제거한다는 목적형 사상이다. 대다수의 구미 국가에서는 응보형 사상을, 일본은 목적형 사상에 편중되어 있다고 본다. '난고'는 이로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딜레마를 느낀다. 그 엄한 '관리행형'은 표면상으로는 교육형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수형자를 단속하는, 그야말로 분열된 처우 방침인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사회질서를 위해 정당한 일을 맡은 것이었다고 직무를 합리화하려고 해도, 실제 사형을 집행한 후 겪은 심리적 외상은 너무나 켰다. 매일밤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었고, 종교에 매달리며 마음의 평안을 찾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비겁해보였다. 모든 인간이 한 짓이다. 잔학한 범행도, 이를 범한 자에 대한 처형도. 죄와 벌은 모든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이 한 짓에 대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결론을 내고..
급기야 아내와 이혼에 대한 합의를 하고 아이가 대학갈 때 까지만 이혼을 미루게 된 그에게.. 어느날 누명을 쓰고 있는 사형수를 살리는 일에 동참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온다. 자신의 과거를 씻어줄 일이라고 생각한 '난고'는 그 일에 자신이 가석방내보낸 '준이치'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준이치'는 상해 치사로 고의없는 살인을 하게 되었고 2년 형을 받고 막 석방이 된 청년으로, '난고'는 그의 갱생을 돕는 것 또한 자신의 직업적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둘은 한 노부부가 당한 참혹한 손도끼 살인사건을 파헤치며, 진범으로부터 누명을 뒤집어쓴 '사카키바라 료'를 사형 집행에서 구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준이치'는 사실 자신이 정말로 갱생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계속 의문이다. 자신이 받은 2년의 형량에 따른 죄값만으로도 치를 건 다 치뤘다고 생각하며, 상대가 죽은 것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없다. 상대가 시비를 먼저 걸어왔고, 그를 향해 정당방위를 하다가 그가 넘어지면서 어처구니없게 죽게 된 경우이다. 하지만 상대측 '교스케'의 아버지는 피같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괴로움에 준이치가 석방된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지어 잘못도 없는 '준이치'의 부모는 '교스케' 부모에게 어마어마한 보상 합의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고 단칸방같은 곳으로 이사를 해야헸으며, 동생은 고등학교도 자퇴해야만 했었다.
…..
결국, 노부부의 살인 사건의 전모을 '난고'와 '준이치'가 밝혀내는데, '난고'는 그로 인해 피치못하게 진범을 살인하게 되고, 그 사건을 의뢰한 독지가는 사실 알고보니 준이치에게 누명을 씌워 사형을 처하고자 했던 '교스케'의 아버지였음이 밝혀지게 된다. 모든 것을 해결한 '난고'는 마음이 홀가분하다. 사형집행으로 인한 살인이 아닌 진짜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그로 인해 누명을 쓴 사형수 '료'를 구해낼 수 있었음에 모든 것이 안도가 된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의 편지가 '준이치'로부터 '난고'에게 도착하는데... 이것만은 스포로... 남겨두고자 한다. 그로써 나카미나코 군이라는 마을에서 서로 엮이고 엮인 관계로 일어났던 그 모든 살인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진다.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던 소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나는 애초에 사형제를 반대하는 의견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는데, 준이치의 여자친구 '유리'는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교스케'가 죽임을 당했음에도, 또 그를 위해 응징에 나섰던 '준이치'가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으며, 자실시도를 수도 없이 했다는 것. 상대를 사형이라는 제도나 복수라는 보복으로 응징할 수는 있지만, 한번 무참히 고통을 당한 자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응징형이든 교육형이든 인간이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의미를 갖기가 쉽지 않다. 반면, 사형에 처할 뻔한 억울한 사람을 구해낸 것은 그 무엇보다 세상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형제 찬반에서 지지해야할 쪽이 무엇인지는.. 어쩌면 답이 나온 것 같다..
다카노 가즈아키처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사회적 추리소설을 쓰고 있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도 주문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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