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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슬로우 Apr 04. 2020

[부록] 산책하는 어느 작가의 오후

집에서 책읽기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28 day


주말 아침이면 늦잠을 자기도 하지만 요즘은 일어나자마자 박차고 걸으러 길을 나선다. 가까운 숲 자락길을 산책하고 돌아오면 햇빛 샤워를 한껏 하고 온 덕분에 기분도 좋아진다. 걷는 것은 신체를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 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잠시 쉬게 해준다. 걸으며 느껴지는 갖가지 감각과 감정, 걸으면서 떠오르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가끔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걸어가면서 만나는 푸릇한 풍경들 덕분에 나의 생각들은 떠올랐다 지워지고 묻히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땐 머릿속이 좀 가벼워진다.      



recipe 44. 로베르트 발저 '산책'

내가 산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작가는 어떻게 산책을 묘사할까 궁금해서 이 책을 샀다. 처음엔 무심코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샌가 완전히 홀릭되어 빠져 버린 책. 정말 보물 같은 책이다.. 그동안 그의 이름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그의 '산책'이란 작품은 읽을수록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는 민음사의 '쏜살' 문고판을 좋아하는데 얇아서 쏜살처럼 금방 읽히기도 하고 여러 번 되읽기도 너무 좋다.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 형식의 소설인 이 책은 그가 아침에 산책을 나서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직업이 작가이다 보니 골방에서 글만 쓰다 산책을 나서는 길이 얼마나 설레는지 마치 그는 행복한 모험을 떠나는 듯 처음 묘사가 되어있다. 거기서부터 나의 마음은 동하기 시작하는데, 이 책은 단순히 산책길에서 느끼는 감성을 그린 서정적인 글이 다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만연체의 주절주절하는 그의 글이 잘 읽히지 않았지만 갈수록 마음에 비수를 꽂는 듯 정확하게 세상을 관조하고 통찰해내는 그만의 남다른 시선에 완전히 푹 빠져 버렸다. 산책길 마지막에는 여운까지 남아 책을 놓기가 너무 싫었다. 때로 행복이라 생각한 것이 고통이기도 하니까.. 자신의 갖가지 생각과 감정을 제 3자 입장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이 책의 시점 구성이 어쩌면 걷기 명상의 과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명상하러 앉으면 나도 모르게 들어왔다 사라지는 오만 생각과 망상들이 이 책에선 이야기로 펼쳐지고, 어느 순간 그것을 알아차림하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글 도중에 작가가 스스로를 내려놓는 과정이 보인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과 유머가 가득 뒤섞여 있어 산책을 하는 것이 이렇게도 전위적일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때론 초현실적이기도 해서 카프카의 '소송'을 읽으며 느꼈던 묘미를 느낄 수도 있었다. 오랜만에 너무 좋은 단편을 만나 기분이 뿌듯했다.   


      

recipe 45. 페터 한트케 '어느 작가의 오후'

이 소설은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어느 작가가 떠나는 오후의 산책길을 묘사하고 있는데 실제로 페터 한트케는 로베르트 발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발저의 '산책'을 너무 인상 깊게 읽었어서인지 이 책은 좀 심심하게 느껴졌다. 작년 노벨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는 '관객모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학교 졸업하고서였나 대학로에서 연극으로 '관객모독'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충격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일방적으로 극을 전달하는 연극이 아니라 배우들이 관객과 소통을 하는데 그 방식이 모독적인 것이다. 하지만 너무 통쾌해서 속이 시원했고 재밌어서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전위적이고 포스트모던한 면에서 로베르트 발저와 괘를 같이 한다.




목표일: 28/365 days

리서치: 45/524 reci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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