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텃밭 이야기 (17)
‘밥을 하다’보다는 ‘밥을 안치다’라는 말이 더 마음에 남는다. 이유를 설명하려 하면 말이 엉킨다. 설명보다 먼저 오는 감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모른다.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유년기, 전자자라 불리던 보온밥통을 지나 전기밥솥이 흔해진 뒤에도 한동안 우리 집 밥은 솥밥이었다. 냄비에 안친 밥이 익어가는 소리. 그 사이로 번지던 감자밥 냄새. 나는 그 냄새로 잠을 깼다.
감자밥을 먹는 나만의 작법도 있었다. 삶은 감자를 흰쌀밥에 올려 숟가락으로 눌러 으깨 먹었다. 고추장을 조금 섞어 비비면 목이 약간 메이는 퍽퍽한 질감이 입안에서 천천히 풀어졌다. 그 버릇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요즘은 밥과 섞기보다 따로 먹는다. 고추장 대신 소금을 아주 조금 찍는다.
감자조림은 상에 오를 때마다 모양이 달랐다. 거의 다 풀어져 스튜처럼 흐트러진 날도 있었고, 모서리가 살아 있는 채로 사각사각 씹히던 날도 있었다. 가끔은 채 썰은 마른 오징어나 문어가 섞여 있었다.
가늘게 채 썬 감자를 기름에 볶아낸 감자볶음도 빼놓을 수 없다. 소금만으로 간을 한 담백한 맛. 밥 위에 듬뿍 올려 젓가락으로 함께 먹으면 다른 반찬은 손이 가지 않았다.
감자 하면 결국 감자전이다. 기억은 늘 같은 장면으로 돌아간다. 8월 초, 해변, 파라솔 그늘. 막 부쳐낸 감자전이 손에 들려 있고, 작은 양념간장 접시가 옆에 놓여 있다. 바닷물에서 올라온 몸은 약간 식어 있고, 배는 적당히 고프다. 따뜻하고 쫀득한 감자전을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른함이 밀려온다. 다 먹고 나면, 이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덧 지금은 혈당을 신경 써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감자를 멀리하기는 쉽지 않다. 어제도 감자조림을 했다. 정해진 양을 넘지 않겠다고 마음속에 선을 하나 그어두고서.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텃밭을 들여다봤다. 여기저기 솜털 돋은 감자싹들이 올라와 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잎의 솜털이 카메라를 통하면 또렷해진다.
올해도 아마 하지 전후에 감자를 캐게 될 것이다. 그 감자로 조림을 해볼 생각이다.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오븐 레인지 덕분에 군감자를 만드는 일도 한결 수월해진 시대. 넓적하게 썬 고구마와 함께 구워 먹는 군감자도, 그것대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