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홍색 묻어날 래디시를 기다리며

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텃밭 이야기 (4)

by 완서담필


래디시 밑둥이 제법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마 열흘 남짓 지나면 흙 위로 선홍빛 무의 머리가 고개를 내밀 것이다. 몇 해 전 기억이 겹쳐 온다. 비 내리던 이른 아침, 손끝으로 만지면 갓 칠한 수채화 물감이 묻어날 듯 붉은 무가 흙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세상사 온갖 소리에 흔들리며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텃밭. 그 자리에는 수채화 같을 풍경이 조용히 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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