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래시계, 지난 세월과 남은 인생을 계산해 본다

by 김성훈


나는 글을 쓸 때면 책상 위에 모래시계를 올려놓곤 한다.

그 안에서 고운 모래가 무심히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비장해지기도 한다.

모래시계 속에서 흘러내리는 것은 단지 모래알만이 아니다. 그것은 내 남은 인생이며, 한 움큼씩 쏟아져 사라지는 소중한 시간이다.

모래시계의 윗부분은 아직 흘러갈 미래의 시간이고, 아래쪽에 쌓인 모래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간이다.

이 단순한 구조 속에 인생의 본질이 담겨 있다.

누구도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래의 속도를 늦출 수 없듯, 우리 또한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가끔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생각에 잠긴다.

“만약 내 인생의 모래시계를 뒤집을 수 있다면 어떨까?”

“다시 한번, 그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불가능한 상상을 통해 지금 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모래시계를 뒤집듯 시간을 계산해 본다면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나는 예순 중반의 나이를 살고 있다.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85세라 하니, 대략 20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20년, 말로 하면 짧지만, 숫자로는 결코 적지 않은 세월이다.

그렇다면 이 20년이란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 내 나이에서 20을 빼면 45다.

즉, 지금부터 앞으로의 20년은 내가 마흔다섯 살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이다.

나는 그 나이 때에 중국 사업팀장을 맡으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두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던 시기였다.

MBA 과정을 시작했고, 기술사 시험에 연달아 떨어졌다가 끝내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었다.

회사에서는 대형 프로젝트의 현장소장을 맡아 열심히 일하며 성과를 냈었고, 그 와중에도 공부를 이어가며 나 자신을 갈고닦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 치열했고, 힘든 순간보다 기회와 성장의 순간이 훨씬 많았다.

그 시절을 다시 한번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그만큼의 시간이 지금 내게 남아 있다면,

이제는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더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지나온 20년과 앞으로의 20년

마흔다섯 이후의 나는 나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을 한 번씩 거울 속에서 확인했다.

머리카락은 조금씩 얇아지고, 피부는 탄력을 잃고, 계단을 오를 때면 무릎이 시큰거렸다.

그러나 육체의 노화와는 별개로 마음속의 성장과 깨달음은 깊어졌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었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다. 스무 살부터 마흔다섯까지는 기초와 정체성을 세우는 시간이었다면, 그 이후의 20년은 경험과 지혜를 쌓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20년은 그 모든 것을 누리고 나누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노년의 시간은 ‘소일거리’가 아니다

요즘 친구들과 만나면 “노년의 소일거리”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낚시, 여행, 텃밭, 혹은 봉사활동…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은퇴 후의 인생을 그린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남은 20년은 ‘소일(消日)’의 시간이 아니라 ‘창조(創造)’의 시간인 것이다.

단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꽃 피울 수 있는 시간이다.

이제는 사회에 쫓기며 허둥대던 초년생의 시절이 아니다. 삶의 흐름을 아는 지혜와 여유, 그리고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때다.

이 시간을 단순히 ‘소일’로 흘려보내기엔 너무도 아깝다.



모래시계 나이, 남은 시간을 새롭게 바라보자

한 번 계산해 보자. 85세를 기준으로, 당신의 나이에서 그것을 빼라.

그 숫자를 다시 당신의 나이에서 한 번 더 빼보라.

그 결과가 바로 당신의 ‘모래시계 나이’다.

예를 들어, 나처럼 예순다섯이라면

85에서 65를 빼면 20, 다시 65에서 20을 빼면 45다.

즉, 모래시계를 뒤집듯이 45세부터 지금까지의 세월만큼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요즘은 건강관리를 잘하고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80세 넘어까지는 왕성하게 생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허비할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빚어낼 것인가?

인생은 아직 늦지 않았다.

남은 모래가 절반쯤 남았을 때, 그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다시 채워 넣는 사람만이 진정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쓸 수 있다.


젊음이란 나이가 아니라 태도다

우리는 흔히 젊음을 나이로 정의하지만, 진짜 젊음은 마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열정, 호기심, 도전, 그리고 성장의 의지를 잃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늙지 않는다.

젊음은 나이를 세는 숫자가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마음의 방향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시간이다.

흘러가는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남은 시간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임을.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살아보자

지금도 내 책상 위의 모래시계는 묵묵히 모래를 흘리고 있다.

그 속에는 지나간 나의 청춘이, 오늘의 나의 하루가,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함께 섞여 있다.

모래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내 마음 한편에서 다짐이 생긴다.

“흘러가는 시간을 탓하지 말고,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자.”

모래시계 속 모래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매 순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을 사랑하는 법이고, 시간을 존중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다.

“시간은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내야 할 이야기의 재료다.

모래시계를 뒤집을 수는 없지만, 그 안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는 언제나 우리의 몫인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만족과 욕심' 과유불급(過猶不及) 인생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