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생활하면서 맺어지는 평균적인 인간관계는 약 250명 정도라고 한다. 대기업 CEO들은 그 열 배가 넘는 2,500명 이상의 네트워크를 가진다고 하지만, 결국 은퇴 후가 되면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25명에서 50명 남짓이라 한다. 그중에서도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
이 이야기를 나는 회사에서 리더십 과정을 들을 때 처음 들었다. 당시에는 단순한 통계쯤으로 들렸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실감이 난다.
직장에 다닐 때는 매일 수십 통의 전화가 오갔다. 업무, 프로젝트, 회의, 보고 등 하루 종일 전화는 이어졌다. 하지만 은퇴 후엔 상황이 달라졌다. 스마트폰 속 수백 개의 연락처 중 실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요즘은 전화보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소통하는 시대다. 단체 채팅방이 새로운 모임 공간이 되었고, 우리 가족도 단톡방을 통해 일상을 나눈다. 어쩌다 전화벨이 울리면, 잠시 멈추고 ‘누구지?’ 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며칠 전 탁자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큰아들의 번호였다. 순간 ‘이태원 건물에 또 무슨 고장이 생겼나, 무슨 일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대부분의 전화는 받아보면 보험, 광고, 스팸이지만, 내게 오는 전화 중 유독 긴장되는 번호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큰아들, 또 하나는 둘째 며느리의 번호다. 우리 가족은 여덟 대의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한다. 큰아들 내외, 둘째 아들 내외, 손자 손녀 둘, 그리고 우리 부부. 그중에서 이 두 사람의 전화는 거의가 건물의 문제와 관련된 일이다. 전기나 수도, 방수, 설비 고장 등등 십중팔구 수리를 해야 한다는 연락이 온다.
처음엔 아들들이 “아버지, 그냥 전문가에게 맡기세요”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내가 자재를 구입해서 직접 방수 공사를 하고 누수 문제를 잡아내는 모습을 보더니 이제는 조금은 믿어주는 눈치다.
둘째 며느리의 전화가 오면 자연스럽게 묻는다. “이번엔 서초동 어디가 고장 났어?”
이젠 그런 대화 속에서도 웃음이 섞인다. 내 손길이 아직 쓸모 있다는 게, 가족이 내 기술을 믿어준다는 게 은근히 기쁘다.
내가 보유한 서초동, 이태원 두 곳의 건물 관리는 늘 예기치 않은 일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관계’를 배운다. 현장 기술자들과의 신뢰, 세입자와의 약속, 가족과의 협력. 이런 관계가 잘 맞물려야 일이 순조롭게 돌아간다.
세상은 AI와 네트워크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지만, 결국 건물의 유지보수도, 삶의 문제 해결도, 사람의 손과 관계의 신뢰가 핵심이다.
지난여름엔 큰아들 부부가 세를 주던 아파트에 들어가기로 하면서 20여 년 만에 리모델링을 하게 됐다. 44평 아파트 인테리어공사를 위해 업체의 견적은 1억에서 많게는 2억 2천만 원.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는 직접 했을 때의 공사비를 계산기로 두드려보았다.
“이건 내가 직접 하면 5천~7천이면 되겠는데?”
아내는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나를 믿고 허락을 했다. 자재를 직접 구입하고, 인부를 순서대로 불러 일을 진행했다. 무더운 8월 중순 더위와 함께한 보름이었다. 인테리어 공사는 마침내 끝났고, 총비용은 1,800만 원. 업체 견적 대비 1억 원가량을 절감했다. 친구들이 놀라며 “이제 인테리어 회사를 차려야겠네”라며 웃었다.
나는 대답했다. “땀은 돈을 아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제 세상은 초연결의 시대다. 내가 알고 있는 250명이 또 다른 250명과 연결된다면, 단 세 단계만 거쳐도 네트위크는 핵분열이 되어 세상 어느 곳과도 닿을 수 있다.
이제 개인이나 기업의 경쟁력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누구와 연결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네트워크’이며,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제 연락처 숫자보다 서로 신뢰로 이어진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긴다. AI 시대라 해도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며, 따뜻한 마음과 신뢰의 온도다.
사람과의 관계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서로의 도움과 신뢰, 공감 속에서 성장하고 행복을 느낀다.
좋은 인간관계는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주고,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된다.
결국 관계는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큰 자산이자,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원천이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관계를 통해 배우고,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삶, 그것이 바로 은퇴 후 내가 꿈꾸는 멋진 인생의 2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