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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시장의 구제품과 빈티지

by 김성훈


동묘역 인근에 자리 잡은 황학동 시장은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시장이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시장을 걷다 보면, 오래된 골동품부터 최근 트렌드의 중고제품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그래서 ‘만물시장’이자 ‘서울풍물시장’, ‘도깨비시장’이라는 여러 가지로 불리며,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홍대거리’로 통할 정도로 활기 넘치는 장소다.


시장을 지나다 보면, 1960년대 복고풍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가 거리를 거닐기도 하고, 구제품과 빈티지 무대 의상을 찾는 연예인이 자주 찾는 단골 가게도 몇 군데 볼 수 있다. 고서점에 들러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옛날 책을 살펴보고, 가끔은 추억의 영화 DVD를 구하러 가기도 하는 황학동 시장은 세월의 흔적과 사람들의 추억이 교차하는 시장이다.


시장 골목골목에는 100년 전 물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골동품이 널려 있어, 이 자체만으로도 작은 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유난히 호화로운 장식품과 오래된 양주를 파는 가게 주인에게 “이 많은 물건들을 어떻게 구했느냐”라고 물으면, 가게 사장의 대답은, 어느 부잣집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평생 모아둔 귀중한 소품과 양주들이 트럭째 유품으로 나오고, 그 물건들은 가족에게는 큰 의미가 없어 한꺼번에 시장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살아생전에 정성을 쏟아가며 수집했던 물건들도, 주인이 세상을 떠나면 시장에 나와 많은 사람들의 눈요기거리가 되는 것이다.


유명 미술품 수집 애호가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평생 모아둔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은 유족들이 국가에 기증해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에 이건희 기념 미술관으로 건립되고 있다. 그중 몇 작품들은 세계적인 화가들의 그림으로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가치가 높아 국내외의 관심이 뜨겁다. 이렇게 평생 동안 정성으로 모은 소장품의 운명을 보면, 결국 나이가 들수록 ‘미니멀 라이프’로 여유롭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진 물건과 추억이 늘어나면 그 무게만큼 삶이 복잡하고 무거워지기도 한다.


이웃과 나누고 기부하며, 각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하는 삶도 의미 있어 보인다. 황학동 시장에서는, 이미 지나간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고, 외국인 관광객까지 섞여 그야말로 국제적인 시장의 모습으로 펼쳐진다. 프랑스의 생투앙 벼룩시장이나 태국의 짜뚜짝 주말시장처럼 명소로 자리 잡기를 생각하고 희망해 본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시계들과 공예품, 그리고 LP판들이 요즘 세대에게는 빈티지 감성을, 추억을 간직한 세대에게는 아련한 기억으로 이곳과 어우러진다.

‘황학동 시장’이라 불리기도 하고 ‘서울풍물시장’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시장을 다녀오면, 그저 오래된 물건을 구경하고 오는 것을 넘어, 인생과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씩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세월이 담긴 물건이라기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추억이다. 그렇게 세대가 어우러지고 감정을 나누는 시장 풍경 속에서, 구제품과 빈티지 물건들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이어간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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