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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평 Jul 22. 2020

폴짝, 뛰어!  

그러나 꼭 지금이 아니어도...괜찮아  

요즘 내 기분이 어떠냐면, 왜 그런 때 있지 않나. 


어릴 때 동네 놀이터에서 애들이랑 정신없이 놀다가 해가 지고 저녁때가 됐어. 

엄마들이 찾아와서 애들 손을 잡아끌며 집으로 가자고, 애들은 안 간다고 더 논다고 

그렇게 한창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다들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런데 나만 날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같이 가자고 손을 잡아 끄는 이가 없어서 

텅 빈 놀이터에,  해가 져서 어둡기까지 한 놀이터에 혼자 남게 됐을 때, 

그날 그때의 기분. 

울음이 막 터질 것 같은데 울지는 못하겠고 씩씩하게 집으로 혼자 가면 되는데 

갑자기 방향 감각이 고장 나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무섭고 외롭고 서러운 기분.  


요즘 기분이 그렇다. 


같은 업계의 일을 하는 절친한 친구는 요즘 일이 많아 바빠 죽겠다며 전화로 하소연을 한다. 

며칠째 잠을 못 잤다며, 오늘부터 주말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일들을 꼽아가며 

그런데 또 일이 들어왔다며 거절을 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며 묻는다. 


'너라면 어쩔래?' 

-나라면 일하지, 근데 너 상황이면..니가 알아서 해. 할 만하면 하고, 이런 기회 흔치 않으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답을 돌려주고 말았다. 

친구는 피곤해도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한지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고, 

자신감이 뿜뿜 전화기 너머로 폭발할 것 같았다. 

 

역시 같은 업계의 일을 하는 선배이자 절친한 언니는 그간 마음고생을 하더니 

(내 기준으로는) 나쁘지 않은 조건에 자리를 얻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그간의 고생을 알기에 다행이다 싶고, 잘된 일이다 싶었고, 축하도 했다. 앞으로 더 잘 되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온전히 그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라, 나는 괴롭다. 

이 나이가 되면 어떤 일에도 쿨하고 나이스하게 웃어질 줄 알았는데 

나는 쿨내, 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 걸 닥쳐보니 알겠다. 


다들 비슷하게 바닥인 상황에서 하나둘 차고 올라가는데 나는 그 바닥에서 차오르기는커녕 

더 아래로 아래로 땅굴을 파고 있다. 

내가 앉은자리는 진흙뻘이었나 싶을 만큼 발버둥 칠수록 더 수렁으로 빠지는 그런. 

이렇게 되면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내가 잘못 살았나? 

그동안 내가 해 온 선택에 뒤통수 맞는 것 같은 이 상황은 내 능력의 문제인지 내 운의 문제인지 뭔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를 탓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내가 뭘 잘못한 건지..정말이지 모르겠다. 


나 사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한심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충고 같은 걸 주변에서 들려준다. 


나는 듣는다. 

고집스럽게 입술을 앙 다물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버릇은 나이를 먹어서도 변하지 않는다. 

말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딱 하루를 앓았다.   


이제 와서 어쩌겠나. 방향을 틀 수는 없다. 

나를 두고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큰 모험이 어디 있겠나. 

8년을 해도 안 되는 일에 매달려왔는데 더 매달려보겠다는 다짐, 말이다. 


누가 그랬다. 심연과 산정은 하나라고. 

그리고 또 누가 그랬다. 누구나 인생에 '그랑 플리에'의 순간이 있다고. 

나도 그 시기를 건너가고 있는 거라고, 나를 다독이며 다시 그릇을 닦는다. 




덧붙이자면 지금 이 기분은, 절대 배가 아파서는 아니고  

나는 조금 아니 조금보다는 많이, 불안하고 두려워서 그런 거다.   

행여 이 글이 푸념으로 읽힐까, 두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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